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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 ] (knowledge, theory of)

마르크스 사상에서 실증주의와 헤겔주의, 사회과학과 역사철학, 과학적 마르크스주의와 비판적(인간주의적 또는 역사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유물론과 변증법 등등 사이의 긴장이 마르크스 자신의 저서에 담긴 양면적 가치와 모순된 경향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를 바탕으로 마르크스주의 내의 이러한 이중성을 초월하고, 부분적으로는 이를 설명할 수도 있는 인식론 속에 포함되는 내용(a)과, 인식론 자체(b)에 대한 관점을 재구성하는 것은 가능하다.
(a) 마르크스에게는 두 가지의 인식론적 주제가 두드러진다. (α) 객관성에 대한 강조, 즉 그들의 인식에 의해 형성된 자연의 독립적인 실재와 사회라는 상대적으로 독립된 실재 (예를 들면, 존재론적이며 변하지 않는 차원에서의 사실주의), (β) 인식과정에 있어서의 작업, 혹은 노동의 역할에 대한 강조, 말하자면 인식이라는 그것의 생산물의 사회적, 역사적 특성에 대한 강조(좁은 의미의 인식론적이며 변화되는 차원에서의 '실천론'). (α)는 자연의 실천적 변화와 사회생활의 구조와 일치한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β)를 목적적인 인간 작인(作因)이나 실천과 매개된 것으로 이해한다. 주체의 생산과 사회과정의 재생산 및 변형이라는 의미에서의 객관화는 (α)에서처럼 외면성으로서의 객관성으로부터, 그리고 특정한 사회 내에서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즉 소외된 노동의 양식과도 구별된다. 그러므로 '객관적'이라는 말과 그것의 기원은 마르크스에 있어서 사중(四重)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두 개의 상호 관련된 주제, 즉 객관성과 노동은 관념론과 경험론, 회의론과 독단론, 초자연주의와 반자연주의를 인식론적으로 폐기한다는 결과를 수반한다.
마르크스는 그의 초기 저작들에서 매우 신랄하면서도 간헐적으로 관념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비판은 철학으로부터 실제적인 사회-역사과학으로 넘어가는 그의 생애의 출발점을 위한 매개물이 되었으며, 그에 의해서 이루어진 새로운 과학의 주요 문제에 대한 열쇠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이에 비길만한 정도로 경험주의의 비판에 관여한 일은 없다. 그의 반경험주의는 산재되어 있는 몇몇의 철학 논문들과 《자본론》에 포함되어 있는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방법론적 관여 하에 있는, 다만 실천적이고 이론화되어 있지 않은 영역에서만 타당하다. 이러한 비판적인 불균형의 한 결과는 마르크스주의 인식론 내에서의 실천적 지주(支柱)와 비교할 때, 실재론자는 상대적으로 지적인 후진성에 머물러 있으며, 또한 이러한 경향은 인식론에 있어 사변적인 관념론((α)가 없는 (β))과 조악한 유물론((β)가 없는 (α))의 사이를 동요하게 만들었다.
관념론에 대한 비판, 특히 선험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날카로운 비판은 이중의 운동으로 구성되는데, 첫째, 포이에르바하적인 운동에서는 관념이 유일한 정신의 산물로 간주되었으며, 둘째, 명백한 마르크스주의적인 운동에서는 유한하게 구현된 정신은 사회관계의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총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첫째의 운동은 헤겔의 주어(주관)-술어(객관)의 도치(倒置), 즉 존재를 인식으로 환원시키려는 것('인식론적 오류')과 사회생활로부터 철학을 분리시키려는 것('사변적인 환상')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둘째의 운동은 반개인주의 운동으로서 포이에르바하적인 인본주의자나 복잡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본질론자들의 문제제기가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성의 문제로 대치되었다. '인간의 본질은 각 개인에게 내재하는 추상화가 아니다. 참다운 의미에서 인간의 본질은 모든 사회관계의 총화이다.'(《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 제6 테제) '모든 개인이 어떤 주어진 것으로서 마주보고 있는 생산력의 총합, 자본 및 사회적 교류의 형식이야말로 "인간본질"의 …… 참된 기초이다.'(《독일 이데올로기》Ⅰ권 1부 7절) 동시에 마르크스는 '역사란 오로지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는 인간의 행위'임을 주장하려고 했다.(《신성가족》6장 2부)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인간의 실천 속에서, 그리고 이 실천을 통한 사회과정의 재생산과 변화라는 개념을 겨냥하여 작업을 하였으며, 또한 그러한 과정에 의해 조건지워지고 가능해지는 것으로서의 실천의 개념을 겨냥하였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역사를 만들지는 못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선택한 조건 하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직접 조우하고 주어지며 그렇게 전달된 상황 하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브뤼메르의 18일》1절) 그렇다면 실제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하에서는 인간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역사를 만들며, 또한 그러한 과정은 실천 속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 증거는 모호하다.(→결정론) 어쨌든 간에 《자본론》의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실천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구조, 관계, 모순 및 경향성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개인은 오로지 경제적 범주의 구현으로서, 또는 특수한 계급관계와 이익의 담지자로서만 취급된다.'(《자본론》Ⅰ권 서문)
마르크스는 결코 (1) 단순한 물적 대상의 실재론, 즉 물적 대상은 그에 대한 인식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의심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2) 과학적 실재론, 즉 과학적 사유의 대상들은 통상적으로 바로 그러한 사유가 조성해 놓은 현상적 형식, 외관 또는 사건들의 국면을 벗어나거나 심지어 이것과 반대되는, 존재론적으로 환원이 될 수 없는 실재하는 구조나 메카니즘, 혹은 관계라는 생각이 차츰, 그것도 우여곡절 끝에 상대적으로 뒤늦게야 나타나기 시작했다.(→실재론) 그러나 1860년대 중반에 와서는 과학적인 실재론적 주제가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만약에 외적인 현상과 사물의 본질이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면, 모든 과학은 쓸모 없는 것이 될 것이다.'(《자본론》Ⅲ권 48장) '만약에 과학적 진리가 사물의 기만적인 현상만을 포착하는 일상적인 경험에 의해 판단된다면, 그것은 언제나 패러독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가치, 가격 그리고 이윤》4부) 속류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생활의 실질적 기초 관계와 인과적 구조들, 그리고 발생론적인 틀을 설명하기 위하여 고전적 정치경제학에 반대되는, 범주적으로 적합한 하나의 과학(물신화되지 않고 역사화된)을 제공한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방법은 세 측면으로 나뉘어진다. (a) 포괄적인 과학적 실재론, (b) 영역 - 특수한 성질을 지닌(혹은 비판적인) 자연주의, 그리고 (c) 주제 - 특수한 변증법적 유물론이 그것이다. (a)에서 마르크스의 관심은 다른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현상에 대한 응집된, 그리고 일관되고 신뢰할 만한, 경험에 기반을 둔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b)에서 그의 자연주의는 자연적 내지 과학적 문제 제기와 구별되는 일련의 사회적 차이를 인정하는 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사회 형태의 실천 제약성, 개념 제약성 및 시공(時空) 제약성으로서, 이것은 즉 정치경제학 비판은 바로 이것이 서술하는 과정의 일부분이라는 생각과 또한 실험적으로 정립되지도 않은 종결된 체계는, 확인과 반증의 설명적이며 이론의 경험적 통제를 위해서 유용하지 않다는 사실 등에 의해서 고안된 역사적 반성이론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마르크스가 《자본론》Ⅰ권의 서문에서 다룬 '추상화의 힘'은 '현미경'이나 '화학적 반응물'을 위해서는 어떠한 대체물도 제공할 수 없으며 마르크스의 행동적이고 경험적 실천을 정당화시키지도 못한다.) (c)에서 나타나는 마르크스의 설명의 특징은, 그 설명들에 있어 변증법적으로 모순된 것으로 드러나는 의문의 대상에 대한 설명적인 비판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과학적 비판은 첫 번째, 개념적이거나 개념화된 실체들(경제 이론과 범주들, 현상적 형식들)에 대한 것과 두 번째, 그 실체들을 필연화시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을 설명하는 대상들(구조화된 관계의 체계들)에 대한 것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그 실체들이 가장된 단순자(임금 형태), 물신화된 단순자(가치 형태), 그렇지 않으면 결함 있는 단순자로 지적된다. 두 번째 단계에서 마르크스의 설명은, 그러한 실체를 이루는 대상의 부정적인 평가와 그들의 실천적인 변화에 대해 논리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특정한, 체계적이고 변증법적인 모순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구성부분이자 또한 그러한 구성부분에서 외관상 나타나는 신비화된 형식과 동일시한 것인데, 이러한 변증법적 모순은, 마르크스 이론에 있어서 다양한 역사적 모순을 야기시키게 된다. 즉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역사적 모순은 앞에서 얘기된 구성부분과 신비화된 형식으로 하여금 다같이 자본주의의 조직원리를 파괴하며 또한 사회화된 인간, 즉 상호 연관된 생산자들이 어떤 맹목적인 힘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지대로 사회를 통제하여 자연과의 교류를 이성적으로 조절하는, 그러한 사회에 의한 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한 수단과 동기를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자본론》Ⅲ권 48장)
마르크스에 있어서 관념론은 철학의 전형적인 오류이며, 경험주의는 '상식'의 지엽적인 오류이다. 마르크스는 개념적 (혹은 종교적) 총체성을 띤 관념론자의 형식, 관념 및 개념의 존재론과 함께 실재세계를 강조하기 위하여 구조화되고 세분되며, 또 발전하는 것으로 인지된 원자화된 사실 및 이의 항구적인 결합에 바탕을 둠으로써, 우리가 일단 존재하는 상태에서 우리를 위한 인식의 가능한 대상으로 삼는 경험론자들의 존재론에도 반대했다. 그리하여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에서의 기존의 '관조적인 유물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의 본질은 이러한 유물론이 현실을 비사회화하고 비역사화 한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기껏해야 '과학성'을 촉진할 수 있을지언정 과학성을 유지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경제학 및 철학 수고》의 마지막 논문에서, 헤겔 철학으로 완성되는 독일 관념론에 대한 마르크스 비판의 본질은 관념론이 과학을 무기력하게 하고 실체를 비역사화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관념론은 다시금 '역사성'을 자극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을 유지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의 새로운 역사과학의 두 가지 인식론적 주제, 즉 과학으로서의 역사과학의 총체적 형식을 의미하는 유물론과 융합되어 있든, 혹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와 분리되어 있든 간에 마르크스의 변증법이 본질적으로 관념론의 변형된 모습으로 남아 있거나, 또한 그의 유물론이 근본적으로 경험주의적 형식을 띠고 있다면, 이것은 철학적 마르크스주의가 마르크스에 뒤져 있다고 하는 인식론적 지체(遲滯)의 한 징표일 뿐이다.
마르크스(그리고 엥겔스)는 대개의 경우 독단주의는 관념론이나 합리주의와, 그리고 회의주의는 경험주의와 관련시킨다. 그리하여 그들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 두 가지 모두를 확고하게 거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제가 '임의적인 독단'이 아니라 '순수하게 경험적인 방법'으로 검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독일 이데올로기》Ⅰ권 1부 A). 동시에 그들은 사람들이 물 속에 빠지는 것은 오직 그들이 중력의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는 일종의 '새로운 혁명적 철학자들'을 비웃었다.(앞의 책, 서문) 그러므로 한편으로 (변환하는 차원에서)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을 경험적으로 개방된 목적을 향한 연구 계획으로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전환적 차원에서) 변화 가능한 활동적 구조를 갖는 객관적 존재론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b) 또한 인식론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입장은 두 개의 상호 관련된 주제에 관계된다. (α) 인식과정에 대한 과학성과 (β) 그것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것이다.(물론 새로운 역사과학의 주제는 인식론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자신이 과학의 건설작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특정한 인식론적 명제(즉 과학을 소위 말하는 이데올로기나 예술로부터 분리시키는 현상)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과학을 역사적 상황들의 산물(또는 잠재되어 있는 인과적 매개자)로 생각하여 역사적으로 그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α)와 (β)는 인식과정의 두 측면('내적 측면'과 '외적 측면')을 구성한다. (β)가 없는 (α)는 과학주의로 인도하여 사회 역사의 영역으로부터 과학을 변위(變位)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역사적 반영의 결핍을 가져온다. (α)가 없는 (β)는 역사상대주의로, 즉 과학을 역사과정의 표현으로 환원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판단상의 상대주의로 인도한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이 역사적으로 특수한 인식론에 대한 해석상의 비평계획 속으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철학에서 과학으로 넘어가는 마르크스의 논리 전개의 특징은, 과학적 실재론에서처럼, 내적 차원에 대한 주장의 본질이 이론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 속에서, 그리고 그를 통해서 철학의 실현을 시각화하던 초기 단계에 이어 명료하게 표현됐던 그의 이 관점은, 철학이 과학에 의해 서서히 그리고 완전히 대치될 것이라는 두 번째의 실증주의의 단계에 이르러 갑자기 정지된다. '현실이 묘사될 때 인식의 독립적인 영역으로서의 철학은 그 존재의 매개물을 상실한다. 기껏해야 철학의 위치는 인간의 역사적 발전에 대한 관찰로부터 생기는 일반적인 결과들을 총합, 즉 추상화하는 것으로 메꾸어질 수 있을 뿐이다.'(《독일 이데올로기》Ⅰ권 1부 A) 이와 같이 추상적이고 요약된 철학의 개념들은 후기 엥겔스의 저작들에서 나타나며 제2 인터내셔날의 정통적 입장으로 되었다. 그러나 엥겔스의 이론과 실천 사이에는 명백한 모순이 존재한다. 엥겔스의 실천은 사적 유물론-마르크스가 명백히 로크주의적 기능이라고 입증했던-을 위한 하층노동자들의 실천이다. 더욱이 사회적 제 조건이 다름 아닌 '인식의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가 아니라, (실천적, 역사적) 문제로서의 인식의 기원을 제공하는 한, 어떻게 마르크스주의가 인식론적 개입과 또한 그 위상을 취급할 것인가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여간에 마르크스의 실천에 내재된 또 다른 제3의 입장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철학(그리고 인식론)이 과학과 그 밖의 사회적 실천에 의존하는 것으로 인지된, 즉 실천적 인식의 총화를 이루는 계기로서 타율적으로 인지된 그런 어떤 것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마르크스주의는 기존 헤겔학파에서 볼 수 있는 '독일식의 전문적인 개념 연결 방식'이나 마르크스주의를 철학으로 보는 루카치나 그람시적 관점과 공통된 점은 전혀 없고, 오히려 그 자체의 총체적 이점에 의해 규정 지워진 (자연주의적) 과학일 뿐이다.
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후기 엥겔스 저작들의 주요 특징은 (1) 철학의 실증주의적 개념과 과학의 선(先) 비판적 형이상학과의 결합, (2) 비환원주의적(우연주의자들) 우주론과 존재의 일원론적인(과정적인) 변증법과의 간단치 않은 종합이며, (3) 사유가 실제를 반영하거나 복사한다는 반영주의적 인식론의 장치와 같은 보편적이고 변증법적인 존재론의 신봉, (4) 주관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회의주의에 대한 실천적 반박에 중점을 둔 것과 결합된 자연적 필연성에 대한 강조 등이다. 《반듀링론》은 제2 인터내셔날의 마르크스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자연 변증법과 반영이론의 결합은 디츠겐[Dietzgen] 이후 플레하노프에 의해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전형화된 정통적인 철학적 마르크스주의의 증명서가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과관계의 우연성에 대한 엥겔스의 비판은, 인과관계의 현실성(흄과 헤겔에 의해 사용된 개념)에 대한 비판이나 인간실천에 의한 사회생활에 있어 자연적 필연성이 매개된다는 데 대한 상호 동일한 관심을 통하여 보완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역사과학에 있어 특정한 사례들에 대한 뛰어난 통찰에도 불구하고 (《자본론》Ⅲ권의 서문처럼) 그의 반영주의의 효과는 전환의 차원을 단절시키고 명상적 유물론으로 후퇴하고 만다. 그러므로 카우츠키, 메일, 플레하노프, 라브리올라 등의 자작물에서 나타나는 제2 인터내셔날의 주요 흐름은 실증주의적, 아니 오히려 결정론적 진화론(카우츠키의 경우는 마르크스주의라기보다는 다윈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을 포용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그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발전·확장시켰다기보다는 체계화시키는 데 주로 힘을 기울였다. 만약 엥겔스가 개입했던 중요한 주제가 유물론이었다면, 그것이 지닌 명백한 의도는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의 특정한 자율성을 명시하고 옹호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의 결과는 역설적으로 그가 공격해왔던 헥켈[Haeckel]이나 듀링의 초자연주의적 일원론-'기계론적' 내지 '환원론적' 유물론-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세계관으로 귀결되어 버리는 것이다.
레닌의 두드러진 공헌은 철학적 개입의 흥미롭고 실천적인 특성을 주장하고,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으로부터 그러한 개입이 갖는 상대적 자율성의 명료한 개념을 제공한 데 있으며, 또 이러한 주장으로 엥겔스 사상의 객관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 측면을 부분적으로 개선시킨 데 있다. 레닌의 철학적 사유는 두 단계를 통하여 발전하였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은 볼세비키 서클에 퍼져있던 기계론적 입장들(보그다노프에 의한)에 대항하기 위해 전개한 반영주의적 논쟁이며, 반면에 《철학노트》에서는 엥겔스에 의한 유물론과 관념론의 극단적 대립이 변증법과 비(非)변증법적 사유 간의 대립에 밀려서 두 번째 자리로 비켜나게 되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1920년대 소련에 있어서는, 데보린[Deborin]과 같이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특히 변증법적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과, 부하린과 같이 유물론적 요소들을 강조하는 입장 간에 바람직한 논쟁이 있었다. 그 뒤에 엥겔스의 인식론적 유산에 속하는 두 개념-즉 '변증법과 유물론'-은 베른슈타인에 의해 거부되었으나 이것이 여러 번에 걸쳐, 레닌에 의해 촉진되면서 스탈린 치하에서 '변유론'[Diamat]으로 개념화될 때까지 소비에트 철학 내에서는 데보린과 기계론자들 간의 내적 대립으로 표면화되었고, 또 서구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대조적인 흐름으로 발전하였다.
아들러와 오스트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사상 내에서 마르크스의 인식론은 칸트적 개념으로 볼 때, 두 가지 측면에서 자기 의식적인 비판 기능을 띤다. 비유적으로 볼 때, 뉴튼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에게도 칸트주의적 질문의 형식화, 즉 어떻게 사회화가 가능한가라는 문제와 또한 직접적으로는 바로 그 사회성 속에는 마치 칸트에 있어서의 공간, 시간의 범주들이 존재할 수 있던 것과 꼭 같은 방식으로 경험 가능성의 조건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러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경험적으로 통제된 비판으로 이해하였으며 또한 이러한 비판의 대상, 즉 사회화된 인간은 여기서 법칙들의 효과를 위해 의도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인간행위에 의존하는 표면상의 자연적 법칙들에 종속된다고 보았다.
어떤 사상가도 마르크스주의가 근본적으로는 과학(부하린의《사적 유물론》을 참조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았으며, 동시에 마르크스 사상에 존재하는, 확실히 변증법적이고 헤겔주의적인 요소에 대해서 강조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이런 결과를 빚게 된 데에는 《자본론》에서의 가치론에 대한 마르크스 해설의 난해성과 그의 핵심적인 초기 저작들이 뒤늦게 출판된 데 그 주요 원인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상황은 변화하였다. 즉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연구와 골드만의 포괄적인 구조주의를 자극하고, 거의 엥겔스와 같은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마르크스에 대한 해석상의 기준들을 제공했던 루카치(1923)에 의해서 해설된 헤겔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 그리고 다시 코르쉬(1923)와 그람시(1971)에서 엥겔스류의 전통을 주로 강조해 오던 것은 극적인 역전 사태를 빚게 되었다.
그들의 인식론의 주요한 포괄적 내용은 (1) 역사 상대주의, 즉 노동계급의 이론적 표현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와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연과학을 동일화한 것이다. 또한 이 역사 상대주의는 그 자체의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입장을 바탕으로 자기 충족적이고 자율적인 철학이나 사회이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위하여 사회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하는 것과 함께, 인식된 노동과정의 내적 차원을 붕괴시킨다는 목표를 수반한다. (2) 反객관주의와 反반영주의, 이것은 세계의 실제적 구성이라는 사상에 근거하여 과학의 자동적인 요소와, 여기에 상응하는 인식론적 관념론 및 판단론적 상대주의를 붕괴시키거나 효과적으로 중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간다. (3) 마르크스주의의 주관적이고, 비판적인 측면의 회복을 지향하는데 이것이 (루카치의 경우를 포함하여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본질적인 요소의 재발견으로서 그것은 즉 물신숭배의 원리이다.) 제2 인터내셔날의 실증주의적 과학주의 속에 함몰되어 버렸다.
마르크스주의는 이제 근본적으로 객체에 대한 인식이라기 보다 주체의 표현이 되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의 이론적인 표현'이다.(Korsch 1923, p. 42) '모든 본질적인 요소들은 세계의 전적이고 완전한 개념의 구성을 필요로 한다.'고 그람시가 언급하듯이, 그 개념 구성은 단지 자기 만족적인 내포(內包)가 아니라, 그러한 자기 만족성에 의해 엄밀히 구분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루카치에게 있어서 마르크스주의와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의 명백한 차이점은 경제적 동인이 우위성이 아니라 총체성의 관점에 있다.(그의 후기 저서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입장) … 부분에 대한 전체의 전폭적인 우월성은 마르크스가 헤겔로부터 도입한 방법론의 본질이다.(1923, p. 27)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자연과학 그 자체는 다양한 부분적 영역들로 분리되고 어떠한 의미 있는 총체성과도 무관한 순수한 사실들의 세계를 창조하는 부르조아적 전망을 표현한다. 그리하여 루카치는 과학을 실증주의적인 그릇된 설명과 혼동하여 분석적인 사고에 변증법적인 반대 입장을 취하는 마르크스주의에 있어 하나의 오랜 전통을 열었다.
루카치에게 있어 프롤레타리아는 역사의 동일적인 주·객체이며, 역사(루카치주의자 서클에서)는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이러한 사실의 실현이다. 사적 유물론은 단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자기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환언하면(그 서클에서는) 자기 의식화되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의존하고 있고, 동시에 이미 그 자신을 변형시키는 상품으로서의 자신의 상황을 깨달은, 프롤레타리아의 대자적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상품의 물신숭배에 관한 《자본론》Ⅰ권의 1장 4절은 '자본주의 사회의 인식으로서 보여지는, 사적 유물론의 전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인식을 그 자체 내에 포함하고 있다.'(앞의 책, p. 176) 루카치의 인식론은 합리주의적이며, 그의 존재론은 관념론적이다. 더욱이 특이한 것은 그의 총체성은, 알뛰세도 지적하였듯이 '의미심장하다.' 즉 거기서는 매 계기나 부분이 내적으로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도한 현재는 오직 그것이 예상할 수 있는 성취된 동일성으로서의 미래와의 관계 속에서만 지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목적론적이다. 결국 마르크스의 존재론은 갖고 있으나 엥겔스류의 존재론(과정을 부각시키는)과 루카치의 존재론(총체성을 부각시키는)에 결여되어 있는 것은 구조이다.
그람시에게 있어서 현실 그 자체의 이념은 종교적 잔재를 나타내며, 또한 모든 개인의 보편적인 상호 주관성의 개념으로 다시 정의된다. 환언하면, 그것은 인식된 합의로서 역사 속에서 점점 접근될 수는 있으나, 그것의 완전한 실현은 실천적인 내용이 완성된 이후인 공산주의 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람시는 '실천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역사는 원자론적 이론에 의해서 설명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경우에 해당되는데 바로 이 원자론적 이론은 다른 모든 과학적 가정이나 견해들과 같이 상부구조의 일부이다.'라고 주장하였다.(1971, p. 465) 이것은 두 가지의 붕괴 현상, 즉 자동적인 차원에서 변환적 차원으로, 또한 내적 차원을 외적 차원으로 붕괴시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측면에서 그람시가 언급한 것은, '혈액의 순환은 하비[Harvey] 이론의 결과일 것이다.'라고 믿은 '진정한 관념론자'인 푸루동에 대해 마르크스가 조롱했던 것을 연상시킨다.(《철학의 빈곤》 2장 3절) 너무나 적절하게도 그람시가 주장하고자 했던 (대상을 구별하는 역사성과 같은) 인식의 역사성은 이식 대상의 타자성(他者性)과 바로 그 대상의 역사성의 이념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거기에 의존하고 있다. 루카치, 그람시, 코르쉬 등은 모두 엥겔스적 유형의 그 어떤 자연변증법도 거부했지만, 여기서 루카치는 이중적이고 낭만적인 반자연주의를 선호했고, 그람시와 코르쉬는 역사화된 신인동형설(神人同形說)적 일원론을 선호하였다. 루카치는 본래의 주관과 소원한 객관의 재결합의 과정으로 파악된 변증법만이 사회적 세계에 적용되는 유일한 것이라고 본 데 반해서, 그람시와 코르쉬는 자연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인간역사의 일부분이며, 그렇기 때문에 변증법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람시의 성취된 존재와 인식의 동일성 이론에서 취하고 있는 비전이성은 전부다 상실된 반면에, 동일성이 미래에 성취되어야 할 역사의 종국이라고 보는 루카치의 이론에서는 비전이성이 투자 형식으로 남아 있다. 즉 (ⅰ) 인간 해방의 변증법에 대해 어떠한 내적 관련도 포함하지 않는, 인식론적으로 불활성의 본질로서, (ⅱ) 프롤레타리아의 자기의식화 달성에 앞서는 인간 역사의 소외의 영역으로서 남아 있다는 것이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그리고 그 제2 세대에 속하는 하버마스 외의 몇몇 동료들이 제기한 '비판이론'의 중요한 인식론적 주제는, (1) 루카치적 마르크스주의의 절대적 역사주의를 변형하는 것과 이론의 상대적 자율성을 다시 새롭게 강조하는 것, (2)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의 노동 개념을 비판하는 것, (3) 객관주의와 과학주의 비판을 강조하는 것이다.
(1)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할을 점점 주변으로 밀어내고 역사적 토대를 지녔던 해방이라는 작동인의 상실을 가져옴으로써 마침내 여기서는 - 청년 헤겔파를 상기시키기라도 하듯이 - 혁명이론은 (계급이라는 표현보다도) 개별자의 속성으로 간주되면서 피히테적 '당위'와 같은 규범적 수준으로 바뀌었다. 마르쿠제에 의해서 날카롭게 표현된 이론과 실천 사이의 필연적인 분열은 - '사회비판 이론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간극을 메울 아무런 개념들도 갖고 있지 못하며, 미래에 집착하지도 않고, 아무런 성과도 기약하지 않음으로써 다만 부정적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일차적 인간》p. 257) - 또한 이것이 그들의 비판론과 판단주의를 뒷받침해 주고 있는데, 이러한 입장은 자본주의, 과학, 기술 및 분석적 사고에 대해 전적으로 부정적인 - 낭만적이고 비변증법적인 - 개념에 힘입어서 역사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인식론의 진정한 저장소로 여겨지는 그의 사회이론을 마르크스로부터 동떨어진 곳에 자리잡게 하였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 자신의 낙관적인 합리주의와 프로메테우스주의가 모호하게 만들었던 문제들을 명료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 셈이다.
(2) 비판이론에서 나타나는 해방적 이성과 순수하게 기술적 내지 도구적 이성 사이의 중요한 대립은 호르크하이머의 《전통적 및 비판적 이론》(1937)에서부터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1972)으로 내려오면서 점차적으로, 특히 노동을 강조하고 단순한 인간적 착취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개념을 내세웠던 마르크스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르쿠제(1955)는 해방된 사회는 필요한 노동의 합리적인 규제나 창조적인 작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작업 그 자체를 감각적이고 리비도적인 유희로 승화시키는 것으로 특징지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마르크스는 그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구별에 있어서 노동과 상호작용의 차이는 인식하고 있었으나, 실천을 실증주의적 방식으로 잘못 해석함으로써 노동에 대한 인간의 자기 형성의 의미를 축소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을 단지 기술적인 행위로서가 아니라 언제나 역사적으로 특정한 사회에서, 그리고 이 사회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결국 노동을 잘못 이해하여, 즉 무비판적으로 실증주의적 맥락에서 이해함으로써 이를 기술적인 행위로서, 더 일반적으로는 자연과학을 연역적이고 명목론적인 모델로 표현하는 실증주의적 입장을 취한 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하버마스였던 것이다.
(3) 순수한 자연적 과정의 결과로서의 인류의 개념과 인간활동에 의해 구성된 자연을 포함한 현실 개념을 결합시키려 한 하버마스의 시도는 선험적 실용주의의 이율배반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딜레마, 즉 만약 자연이 구성된 객관성의 선험적 모습을 띤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구성적 역할을 하는 주체의 역사적 근거가 될 수 없고, 역으로 자연이 주관성의 역사적 근거라면, 그것은 어떤 면에서도 구성된 객관성으로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자연은 오직 그 자체로 있으면서 다만 우연적으로 우리들에게 가능한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에 바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점이 바로 아도르노가 올바르게 평가했듯이, 객관성은 주관성으로 전환될 수 없다는 문제와 같은 것이다. 사실 아도르노(1966)는 마르크스적 인식론을 포함하여 서로 상용될 수 없는 대립물 중의 하나를 다른 쪽으로 환원시키려는 지속적 경향을 지닌 제1 철학 특유의 오류를 고립시킴으로써(예를 들어 엥겔스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의식을 존재로 환원시키려는 것과 루카치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존재를 의식으로 환원시키려는 것), 사상을 가정적인 토대 위에 구축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하면서 동시에 모든 비판의 내재화를 역설했다.
(ⅰ) 이제 여기서는 인본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 즉 프롬, 르페브르, 가로디, 헬러[A. Heller], 톰프슨[E. P. Thompson] 등의 저서와, (ⅱ) 싸르트르나 메를로 뽕띠와 같은 실존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저서, (ⅲ) 콜라코브스키[Kolakowski], 샤프[Schaff], 코지크[K. Kosik]와 같은 동유럽 수정주의자들의 저서, 그리고 (ⅳ) 페트로비츠[G. Petrovi ], 마르코비츠[M. Markovi ], 스토야비츠[S. Stojanovi ]와 그의 동료들로 구성된 유고슬라비아의 《실천》파에 속하는 사람들의 저서를 함께 보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이들의 다양한 형태화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인간과 인간의 실천을 '정통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핵심'으로서 새롭게 강조하고 있다.(《실천》Ⅰ권 p. 64) 이러한 강조점들이 스탈린 시대에는 상실되었는데 이 요소들의 재발견은 《경제학 및 철학 수고》(그리고 좁게는 꼬제브[A. Koj ve]와 이뽈리뜨[Hyppolite]에 의해 제시된 헤겔《현상학》의 새롭고 인본주의적인 강독)에 힘입은 바 크다. 여기서는 특히 두 가지 점이 강조될 만하다. 첫째는, 인간의 본성과 요구가 비록 역사적으로 매개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무한히 증폭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둘째, 인간존재에 대한 초점은 단순히 경험적 측면뿐만 아니라 규범적이고 이상적인 측면-즉 탈소외화하고 총체적이며 자기발전적이고 자유롭게 창조하며 동시에 조화롭게 참여하는-에도 맞춰진다. 첫 번째 경우는 의심할 바 없이 부분적으로는 마르크스에서 포이에르바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저자들 중에서, 싸르트르의 업적은 역사의 이해 가능성을 개인적 인간 실천의 그것으로 근거지우려는, 영향력 있고 지속적인 시도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싸르트르의 출발점은 논리적으로 그의 목적을 미리 내포하고 있다. 만약 진정한 전환이 가능하다면 특정한 상황, 즉 사회적 관계의 어떤 특수한 총화가 처음부터 개인적인 상황 구조 속에서 마련돼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함, 즉 여러 가지 조건들('결핍'에서부터 '실재적으로 불활성적인' 것까지)의 순환적 변증법과 추상적이며 역사적인 일반성이 있을 뿐이다.
루카치에서 싸르트르에 이르는 반자연주의적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존재론적 구조나 경험적 확인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편견은 알뛰세나 다른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고들리에와 같은)의 과학적 합리주의나 델라 볼페[Della Volpe]와 콜레티[Colletti]의 과학적 경험주의나 신칸트학파에서 저마다 따로 수정된다. 알뛰세에게서는 이것이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 그리고 발리바르[E. Balibar]와의 공저 《자본론 강독》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나타난다. (1) 사회적 총체성에 대한 새로운 반경험주의적이고 반역사주의적인 개념, (2) 내적 차원의 붕괴와 조화를 이루는 인식론의 비판원리('이론주의'), (3) 은폐된 관념론의 결과로 비전환적 차원이 효과적으로 중립화된, 바셀라르[G. Bachelard]의 과학철학에 의해 영향을 받은 과학적 합리주의의 형식 등.
(1) 알뛰세는 한편으로 구조와 복합성의 이념을 다시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탈결정론적이며 탈중심적인 복합체로서 이미 주어지고 우월하게 구조화된 사회적 총체성의 관점에서 비환원적인 사회성의 이념을 주장하고 있다. 경험주의와는 반대로 그것은 총체적이고 구조화된 것이며 그 인과성의 형식은 뉴튼주의적인(기계론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역사주의 및 전체주의와는 반대로 그것은 복합적이고 탈결정론적이며 '본질적인 구분'이 가능하거나 동질의 시간성에 의해 특징지워진 '강력한 총체성'은 아니었다. 또한 그의 인과율의 형식은 라이프니쯔적인(표현상의) 것이 아니다. 또한 관념론과 반대로 사회적 총체성은 미리 주어져 있고, 휴머니즘과 반대로 그것의 구성요소들은 단순한 전달자나 점유자로서의 개인이 아닌 구조와의 관계이다. 그러나 알뛰세가 총체성은 두드러지게 구조적이라는 사회학적 절충주의에 반대하는 주장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구조적 인과성에 대한 그의 실증적 개념은 명확히 확립된 것 같지는 않다.
(2) 비록 철학을 과학으로 환원시키거나 혹은 그 반대로 과학을 철학으로 환원시키려는 어떠한 전환에 대해 반대한다 하더라도, 과학성의 기준이란 것이 전적으로 과학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고유한 것을 의미하는 한, 알뛰세는 어떠한 명확한 역할도 떠맡기지 않고 철학(그 자신의 것을 포함하여)을 방치해버린다. 특히 과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어떤 경계를 지을 기준의 가능성이나, 소위 과학의 실제를 비판하는 것 등은 배제되는 것 같다. 과학에 대한 인식론적 자율성은 그것들의 역사적 자율성에 의해서 수반되고 지지되며, 역사적 과정으로부터 과학을 분리하는 것은 그 속에 이데올로기(신화화나 허위의식을 포함한)의 불가피성을 전제하거나 함축하고 있다.(마르크스의 사상과 상이한 관점)
(3) 비록 알뛰세가 실제와 사유 사이의 구분을 주장했더라도 전자의 기능들은 그의 체계 속에 반칸트주의적 한계 개념으로서 쉽게 관념론으로 회복되면서 '논쟁이론'처럼 비변환적 요소를 띠게 된다. 알뛰세가 마르크스 사상의 진정한 출발을 헤겔이 아닌 스피노자로 보았듯이, 그의 과학에 대한 패러다임은 명백히 선험적 원리로서의 수학이라고 하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이 수학에서는 개념의 의미와 그 연관 사이의 구분과 자료들의 이론 종속성과 이론 결정성 사이의 구분이 모호하다. 간단히 말해서 일뛰세는 실천과 인간해방의 가능성을 희생시켜 이론을 사려고 했던 것이다.
루카치가 마르크스주의 내에 있는 헤겔주의적 흐름을 가장 순수한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면, 델라 볼페는 마르크스주의 내에 흐르는 실증주의적 주제들을 비교적 정확히 끌어내고 있다. 그의 중요한 저작 《실증과학으로서의 논리학》의 목적은 구체적이고 경험 지향적인 접근 도구로서의 사적 유물론의 회복과, 유물론적 사회학이나 도덕적 신념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옹호하기 위한 것이다. 델라 볼페는 헤겔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으로부터 라이프니쯔에 대한 칸트의 비판으로까지 확장되는, 선험적 이성에 대한 유물론적 비판의 연장선상에 있는 역사적 클라이맥스라고 설정한다. 거기서 마르크스는 추상(Abstract)- 구체(Concrete)- 추상(Abstract)의 '비결정론적 추상화'라는 헤겔 변증법의 순환성을 구체-추상-구체(C·A·C 혹은 더 나은 C·A· )의 '결정론적이고 합리적인 추상화'라는 유물론적 인식론의 순환으로 대체시킴으로써 '실체에서 가설로, 선험적인 주장에서 실험적인 추측들로'의 효과적인 전환을 이루어놓았다.(앞의 책, p. 198) '명칭이 붙여질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떠한 지시도 과학이다.'라는 말과 '과학은 항상 이러한 도식을 따른다.'는 말들은 마르크스가 《요강》의 서문에서 심혈을 기울여 정리했던 것들이며, 이것은 델라 볼페가 해석하듯이, 결국 밀과 제본스[Jevons], 그리고 포퍼의 가설적이고 연역적인 방법과 유사해진다.
여기서는 델라 볼페적 재구성과 관련된 네 가지 문제만 언급하기로 한다.
(1) 그것은 자연과학에 대해서처럼 사회과학과 철학에 무차별적인 적용을 가정한 점이다. 그 결론은 사회과학과 철학에 무차별적인 적용을 가정한 점이다. 그 결론은 사회과학을 초자연주의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철학을 실증주의적인 일원론적 개념으로 보았는데, 이러한 개념은 마르크스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개념들을 강화시키면서, 과학이 원리들에 대해 일원론적이고 연속주의적이라는 관점에 얽매여 있다. (2) C·A·C는 다른 많은 이론적인 이념들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작용하는 순수한 형식적인 절차이다. (3) 델라 볼페는 역사적인 원인들로부터 이론적 선행요소들을 명확히 구별짓지 않았다. 은폐되어 있는 역사주의가 공공연히 그의 저작에 있는 실증주의적 요소들을 드러낸다. (4) 더욱 중요한 것은 C·A· 모델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애매함이 있다는 것이다. 'C'가 개념화된 문제를 언급하는지, 아니면 구체적인 대상을 의미하는지가 애매하며, 또한 그 범위가 무지의 한 구절을 묘사한 것인지, 인식되어진 구절인지가 애매하다. 만약 그것이 양쪽에 모두 걸리는 것이라면 전환적 내지 비전환적 차원을 다같이 시도하는 철저한 경험적 실재론은 현실을 비계층화하고 인식을 비역사화하는 것이 된다. 또한 'A'는 과연 선험적 실재론이나 마르크스에서처럼 어떤 현실적인 것을 시사하는 것인가, 아니면 선험적 관념론이나 실용주의에서와 같이 단지 이념적일 뿐인가? 마지막으로 'C'가 (ⅰ)제시인지 (ⅱ)시험인지, 아니면 (ⅲ)참여를 언급하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ⅰ)과 (ⅱ)간의 구별은 마르크스의 제시와 질문의 순서간의 구별과 같다. 또한 (ⅱ)와 (ⅲ)의 구별은 이론적 행위와 참여적 행동간의 구별과 같으며, (ⅰ)과 (ⅲ)의 구별은《자본론》에서 다듬어진 자본주의 생산에 대한 가정의 체계와《브뤼메르의 18일》이나 《프랑스 내전》등의 저작에서 마르크스가 언급하는 일종의 결정적이고 역사적인 위기들(《요강》의 서문에서 제기하는 '많은 결론들의 종합')과의 구별과 같다.
델라 볼페 학파의 가장 잘 알려진 성원인 콜레티는 그 어떤 변증법도 유물론을 배제한 일은 없다고 하면서, 심지어 델라 볼페의 제한되고 순수한 인식론적 변증법을 거부하였고, 또한 마르크스의 물화와 소외의 비판적 주제를 생략한 델라 볼페의 초자연주의적인 재구성을 비판한다. 그러나 콜레티는 이러한 주제들을 그 자신의 비계층화되고 경험적이며 사실론적인 존재론과 또한 존재와는 다른 것으로서의 신칸트적 사유 개념과도 화해시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은 마르크스주의의 실증주의적인 것과 비판적 요소들 사이의 균열 위에 정착한 듯이 보이면서 동시에 과학적 비판의 개념들은 포기하게 된다. 콜레티의 저서에는, 하버마스나 알뛰세의 저서에서처럼, 이원론이 스며들어 있다.(아마도 이들 세 사람이 최근의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즉 진리로서, 그리고 상황을 걸머진 것으로서의 사유 사이에서, 또한 그 자체로서 있는 어떤 것으로서의 객관성과 주체의 객관화로서의 사유 사이에서, 그리고 또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그 자신의 의식에 있어 보편성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만물의 영장인 종으로서의 인간 사이의 이원론이다. 콜레티의 젓는 이탈리아에서 (팀파나로[Timpanaro] 등에 의해) 유물론의 존재론적 측면을 간과한다는 이유로 비판되고 있는데 반하여, 알뛰세적이거나 델라 볼페적 경향들은 일반적으로 지식의 과학적이고 사실주의적 재구성의 측면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그들의 입장에 있어 공격받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인식론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에는 항상 어떤 긴장이 남아 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여러 과학들이 있으므로, 어떤 적절한 인식론의 경우에는 그것의 내적인 범위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를 훨씬 넘어서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과학은 결코 사회적 실천의 유일한 방식은 아니므로 오히려 마르크스주의가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는 항상 서로를 포섭하는 경향을 갖게 될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의 개념에 있어 인식론은 비판적으로 참여하면서 마르크스주의는 오히려 그것이 대체하는 이성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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