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저 (1820-77)] (Odger, George)
제화공(숙력 제화공의 소규모 노조(‘숙녀화 제화공 모임’)의 리더중 하나)이자 10년간 (1862-72) 런던 노조 평의회(1860년 창설)의 서기. 1859-60년 건설 노조의 대규모 파업을 적극 지원하였다. 오저는 가장 급진적인 민주적 공화주의자로 큰 명성을 얻었고, 그 결과 런던 노동자에게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크레머와 애플가르드처럼 그도 1850년대와 60년대의 ‘새 모델’ 노동조합주의와 동일시된다. 즉 애플가르드와 함께 오저는 이른바 ‘훈타Junta'의 지도적 구성원이었다. 1867년에 획득한 참정권 확대 이후 오져와 그의 동료들은 더 이상 인터내셔날을 지원하는데 전과 같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의회에서 노조 활동을 방해하는 법을 바꾸는데로 기운다. 오저는 1867년의 (참정권) 개혁 입법 이후 벌어진 선거에 입후보한 첫 노동계급 후보중 하나였지만 세 차례 걸쳐 자유당에 패배한다. 오저는 파리꼬뮨에 대한 맑스의 총평의회 연설을 공격했다(프랑스에서의 내전)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평의회에서의 사임을 선언한다(187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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