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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닥사 (1864-1930)] (Zo d’Axa)

조 닥사는 1864년 페루즈의 알퐁스 갈로드에서 항해사, 고위 공무원, 예술가, 작가 등을 배출한 프랑스에서 가장 위신있는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조 닥사는 학교를 그만두고 식민지 군대로 모험을 찾아 갔으며 곧 그의 상사의 아내와 사귀다가 탈영을 한다. 그는 벨기에서 살며 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한다. 그러나 곧 이탈리아로 가서는 예술평론가로 일한다.
1889년 탈영사면이 이뤄지자 닥사는 프랑스로 돌아왔고 1891년엔 그의 첫 신문인 랑드오르(L'Endehors)를 발간한다. 비록 그가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부르진 않았지만 그 신문의 초점은 세기말적 아나키스트에 있었고 기존 질서에 대한 그의 격렬한 공격은 조 닥사를 랑드오르의 다른 편집자들처럼 감옥에 가게 만든다. 닥사가 수감자 가족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그는 범인협력죄로 기소 중이었다.
마자스의 감옥에서 그는 당국에 협력하기를 거부했고 변호사나 면회객에 대한 권리를 거부했다. 신문은 그가 없어도 계속 발행되었고, 그가 풀려났을 때 랑드오르는 당국에 의해 또다른 기사로 인해 재판받는다. 닥사는 감옥으로 돌아가기 보단 프랑스를 떠나 네델란드, 독일, 이탈리아(여기선 아나키스트들의 재판에 증언하고 또 체포된다), 터키,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에 간다. 다시 체포되었을 때 그는 프랑스로 추방당하고 마르세이유 감옥에서 18개월을 보낸다.
1894년 출옥하고 그는 그의 모험을 기술한 “마자스에서 예루살렘까지 De Mazas a Jerusalem”를 써 폭넓은 호평을 받는다. 드레퓌스 사건 동안엔 닥사는 운동를 지지한다. 비록 그가 드레퓌스란 사람을 “이 신사가 배신자는 아닐 수 있지만 육군 대위이긴 하다”고 말하며 무시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하원 입후보자로 당나귀를 후원하여 악명을 얻는 그의 마지막 신문 “라 페유la Feuille"를 시작한다. 그러나 1900년 닥사는 정치와 프랑스에 신물이 나서 그 나라를 떠난다. 그는 마지막으로 마르세이유에 돌아올 때까지 세계를 여행했고, 1930년 8월 30일 그곳에서 자살한다. See Zo d’Axa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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