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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 (ideology)

선행했던 두 주류의 비판철학적 사상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데올로기 개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하나의 흐름은 프랑스 유물론자들과 포이에르바하에 의해서 전개된 종교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의식을 앞세운 독일 관념철학(→관념론), 그 중에서도 특히 헤겔에 의해서 이루어진 주관의 활동에 대한 재평가와 전통적 인식론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이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왜곡과 특수한 사회적 조건을 연결시키는 데 실패한 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서 제기된 비판은 의식의 전도된 형식과 인간의 물질적 존재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러한 관계야말로 이데올로기 개념이 사회적 모순으로부터 발달되면서 동시에 사회적 모순을 은폐하는 사고의 왜곡과 관련하여 표현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다.(→모순) 이러한 측면에서 이데올로기는 분명히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마르크스의 저서들을 단지 있는 그대로 독해하는 것과는 달리 그의 지적 발전의 여러 단계 사이에 어떤 극적인 '인식론적 단절'이 있음을 부인하면서 일관된 맥락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입장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이데올로기의 기본적 핵심은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였다. 첫 번째 단계는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을 포함한 1844년까지에 이른다. 이 시기의 주된 관심사는 철학적 문제였고, 주요 참고문헌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저서였다. 이 시기의 마르크스 저작에서는 아직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앞으로 나타날 개념의 유물론적 요소들은 이미 사물의 실제적 본질을 은폐시키는 '전도(轉倒)'라는 개념으로 서술된 헤겔의 국가 개념과 종교에 대한 그의 비판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헤겔의 '전도'는 주관적인 것을 객관적인 것으로, 또는 객관적인 것을 주관적인 것으로 전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데아는 필연적으로 경험적 세계 속에 자신을 드러내며, 프러시아 국가는 시민사회를 결정하는 '절대적 보편자'로서 이데아의 자기실현으로 나타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헤겔의 전도는 단자 환상적인 지각의 산물은 아니다. 만약 헤겔의 관점이 추상적이라면 그것은 '"추상화"가 곧 정치적 국가의 추상화'이기 때문이다(《헤겔 국가철학 비판》입법부). 이러한 의미에서 이데올로기적 전도의 근원은 실제적으로 그 자체의 전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동일한 개념이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을 이루고 있다. 비록 그가 인간이 종교를 만들고, 또한 神은 인간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전도라고 본 포이에르바하의 근본적 교의를 받아 들였다고 할지라도, 그는 이러한 전도가 철학적 소외나 단순한 환상 이상의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포이에르바하를 넘어섰던 것이다. 즉 이 전도는 현실세계의 모순과 고통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종교를 낳는 바, 이 '종교는 세계의 전이된 의식이다. 왜냐하면 전도된 의식이란 바로 전도된 세계이기 때문이다'('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종교적 전도는 불완전한 현실을 정신 속에서 보상한다. 종교적 전도는 현실세계의 모순을 보상하기 위하여 현실세계를 초월한 밀도 있는 해결책을 모색한다.
두 번째 단계는 1845년에 포이에르바하와 단절하는 데서부터 1857년까지 계속된다. 이 시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사적 유물론을 구성한 시기이기도 하며, 이 때 이미 그들의 사회와 역사에의 접근을 위한 일반적 전제가 정리되고, 첫째 단계에서의 포이에르바하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다. 전도의 개념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마르크스는 그 개념을 확대하여 청년 헤겔파가 종교나 헤겔철학에 대하여 행하려고 했던 비판을 포괄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그들의 비판이 바로 헤겔적인 전제에 의존해 있음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과제가 인간을 잘못된 이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그들이 이런 의견에 반대하여 스스로 다른 의견을 내 놓았을 뿐, 결코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고 말하였다(《독일 이데올로기》1권 1부). 따라서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라 불렀던 전도는 기존의, 그리고 새로운 헤겔학파를 포함하여 물질적 실체 대신에 의식으로부터 출발함을 뜻한다. 이와는 달리 마르크스는 인간성의 실제적 문제는 그릇된 이념이 아니라, 현실사회의 모순이며 전자는 후자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사실상 행위의 제한된 물적 양식 때문에 인간이 이러한 모순들을 실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 인간은 그 모순을 의식의 이데올로기적 형식, 즉 이러한 모순의 존재나 특성을 교묘하게 은폐하거나 잘못 해석하는, 단순히 정신적이거나 산만한 해결책에 투영하려는 경향이 있다. 모순을 은폐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왜곡은 모순의 재생산에 기여하게 되고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한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는 부정적이고 한정된 개념이다. 이데올로기는 모순에 의한 왜곡과 그릇된 표현을 포함하는 까닭에 부정적이다. 또한 그것은 모든 오류와 왜곡을 포괄하지 않기 때문에 제한적이다. 이데올로기적 이념과 비이데올로기적 이념과의 관계는 오류와 진리와의 일반적 관계로 해석될 수 없다. 이데올로기적 왜곡은 비판의식에 의하여 극복될 수 없으며, 오로지 이러한 왜곡을 유발하는 모순이 실천적으로 해결되는 경우에만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1858년에 쓰여진 《요강》에서 출발하여 《자본론》에서 완결된 선진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구체적인 분석에 의하여 특징지워진다.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여기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 개념에 대한 마르크스의 경제분석이 적절한가는 전도 개념의 지속적 사용과 재생에 의해서 판명된다. 마르크스는 만약에 어떤 개념이 왜곡되고 '전도된' 실재라면, 그것은 실재 그 자체가 반대로 뒤집힌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매개되지 않고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 대한 특수한 분석을 통해 '전도된 의식'과 '전도된 실재' 사이의 관계가 실재를 구성하는 현상이라는 기준에 의해서 매개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적 형식'의 영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시장과 경쟁의 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이것이 곧 '실재적 관계들'을 떠받치고 있는 생산영역이 전도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경쟁에서는 모든 것이 반대로 나타난다. 그것의 실재적 존재 속에서 그리고 이러한 관계의 담지자와 매개자가 이러한 관계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개념의 형식을 띠고 있는 표면에 나타난 경제적 관계의 최후의 형태는, 내적이며 은폐된 본질적 형태와 그에 대응하는 개념과는 아주 다르며 실제로는 전도되어 있다.(《자본론》 Ⅲ권 12장)

그러므로 이데올로기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경제관계의 방법론에 근거함으로써 숨겨진 본질적 형태의 모순된 성격을 은폐시킨다. 순환의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러한 현상의 세계는 경제적 이데올로기의 형식을 유발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적 권리를 위한 낙원이다. 거기에는 오로지 자유와 평등, 부(富)와 벤담만이 지배한다.'(《자본론》 Ⅰ권 6장) 이 정도로 시장은 부르조아적 정치 이데올로기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평등과 자유는 교환가치에 근거한 교환에서 완성될 뿐만 아니라 교환가치의 교환은 모든 평등과 자유의 생산적이고 실제적인 근거이다.'(《요강》 '자본에 관한 장') 그러나 물론 자유와 평등이라는 부르조아적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현상적이고 개인적인 평등과 자유가 사라지고 불평등과 부자유가 있는' 현상적 교환 과정의 아래에서 진행되는 것을 은폐시킨다.(앞의 책)
가장 초기의 종교 비판으로부터 베일에 싸인 경제적 현상과 현상적인 자유와 평등의 본질을 파헤치기까지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이해에는 괄목할 만한 일관성이 엿보인다. 비록 후에 가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있어서의 실재의 이중적 측면을 구분하면서 이중적 전도의 개념이 보다 복잡해지기는 하였지만, 의식과 실재에 있어서의 전도의 이중성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는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그대로 갖고 있으나 모순을 은폐시키고 실재를 전도시키는 것과 관련하여 왜곡된 경우에만 사용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허위 의식으로서 자주 인용되었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의는, 그것이 비판되어야 할 왜곡을 열거하지 못하고 모든 종류의 오류에 이데올로기적 혼란의 길을 열어 주는 한, 부적합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사망한 직후에 비로소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데올로기가 갖는 비판적 의미를 잃지 않았으나, 후에는 그러한 측면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새로운 의미는 두 가지 주요한 형식을 취한다. 즉 사회적 의식-이것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개념으로 표현된다.-의 총체적 양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 개념과 계급의 이익과 관계되어 있는 정치적 이념으로서의 이데올로기 개념이다. 이러한 새로운 의미는 마르크스주의 내에서의 이 개념에 대한 체계적인 재정립의 결과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이것이 원래의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냈다. 이러한 입장 대체 과정의 원인은 복잡하다. 우선 중립적인 이데올로기 개념의 요소들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체계 자체 내에서 발견될 수 있다. 부정적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저서들은 종종 다른 방향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호하고 불명확한 면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서 그람시는 마르크스가 법률적, 정치적, 철학적 -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이 이러한 갈등을 의식하여 이에 대항하여 싸우는 이데올로기적 양식이라고 언급했던 구절을 자주 인용했는데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이것은 그가 인간이 모순된 사회관계에 대한 의식을 획득하는 포괄적인 상부구조의 영역으로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이다.(gramsci 1971, pp.138, 164, 377) 그런가하면 또 엥겔스는 몇몇 곳에서 이데올로기가 의식의 총체적 양식을 포괄한다고 믿게 하기에 충분한 일반성을 지닌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 '이데올로기적 영역' 및 '이데올로기적 지배'에 관하여 언급했다.(《반듀링론》 9장)
이데올로기의 긍정적 개념을 향한 발전도상에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중요한 공헌으로 꼽을 수 있는 요소는, 마르크스 이후의 처음 두 세대에 속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출판되지 않았던 《독일 이데올로기》에 접할 기회를 1920년대 중반까지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플레하노프, 라브리올라, 더욱 중요하게는 레닌, 그람시 그리고 초기 저작에서의 루카치는 부정적인 이데올로기 개념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가장 치열한 논점에 접하지 못했다. 이 책이 없었으므로 이데올로기 개념을 논의하기 위해서 필요한 두 권의 중요한 저서는 마르크스가 1859년에 쓴 '서문'과 엥겔스의 《반듀링론》으로서, 이 책들은 새 세대를 이끄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서 자주 인용되었다. 그러나 이 두 저서는 의미심장한 애매함을 띠며 또한 상·하부구조의 관계와 이데올로기적 현상 사이에 적절한 구분을 하지 않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이념은 카우츠키나 메링 또는 플레하노프와 같은 사람들의 저서를 통하여 점차적으로 수립되었다. 그러나 1898년까지는 제1세대에 속하는 마르크스주의 저술가 중의 어느 누구도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를 이데올로기라고 부르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가 이데올로기인가 아닌가하는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사람은 베른슈타인이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적 이념이 사회발전을 설명하는 유물론적 요인들을 언급하기 때문에 비록 이 이념이 실재론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것들은 아직도 반성적이며 따라서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대답하였다. 이데올로기를 관념이나 이상(理想)과 동일시하는 데 있어서 베른슈타인은 메링이나 카우츠키가 이미 했던 말들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베른슈타인은 메링이나 카우츠키가 이끌어내지 못했던 분명한 결론을 끌어냈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이데올로기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비록 베른슈타인이 마르크스에 대한 그의 '수정'(→수정주의)으로 인해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가들도 그를 이 문제에 관련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곧 이데올로기의 부정적 개념에 관하여 어떤 분명한 견해를 갖지 못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첫 세대가 부정적인 이데올로기 개념을 옹호하는 것을 마르크스주의의 본질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1890년대의 특히 동부유럽에 있어서의 정치투쟁에 기인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정치적 실천을 위한 이론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주목함으로써, 이제 이데올로기 개념의 발전은 계급투쟁이나 당의 조직과 더욱더 밀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반목하는 계급들의 정치 이념은 새로운 중요성을 갖게 되었고 이론적으로 설명될 필요가 있었다. 레닌은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확대시킴으로써 해답을 얻었다. 계급 대립의 상황에서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에 대한 비판은 지배계급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지배계급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다른 계급의 상황, 즉 다른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레닌에게 있어서 이데올로기는 다양한 계급의 이익과 관련된 정치적 의식이 되면서, 특히 그는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므로 레닌에 이르러서야 이데올로기 개념의 변화과정이 완결되었다. 이제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모순을 은폐시키는 필연적 왜곡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포함한 제 계급의 정치적 의식을 나타내는 중립적 개념으로 변화된다.
레닌의 개념은 막강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이데올로기라는 주제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어서 루카치의 경우에는 이데올로기, 또는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개념이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은 채로 부르조아적 의식과 프롤레타리아적 의식을 언급할 때 다같이 사용되었다.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를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데올로기적 표현' 또는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데올로기', 즉 부르조아지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굴복'시키는 '최상의 무기'라고 생각했다.(Luk cs 1923, pp.258∼9, 227, 228) 만약 부르조아적 이데올로기가 그릇된 것이라면 그것은 부르조아적 이데올로기가 이데올로기 일반이기 때문이 아니라,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상황이 구조적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르조아적 이데올로기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심리적 의식을 지배하고 오염시킨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루카치의 설명은 레닌의 설명보다 앞선다.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적 종속은 부르조아지가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념을 선정하는 보다 강력한 수단을 갖고 있는 결과라고 레닌이 생각했던 반면에, 루카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데올로기적 종속을 초래하는 것을 물화된 자본주의 경제의 현상 안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상황과 실천의 문제로 간주하였다. 다른 한편 루카치 그 자신이 후에 인식했던 것처럼, 그는 초기 저작들에서 이데올로기의 역할과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너무 높이 평가하여 이것이 실제의 정치적 실천이나 계급투쟁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레닌의 접근방식은 또한 그람시에게도 영향을 끼쳤는데, 그람시는 부정적인 개념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부정적인 개념에 대한 그람시의 생각은 마르크스의 개념에 부합되지 않으며, 차라리 '특수한 개인들에 의해 임의로 숙고된 표현이다.'(gramsci 1971, p. 376) 그러므로 그람시는 '임의적인 이데올로기'와 '조직적인 이데올로기'를 구분했으며 후자에 보다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는 예술이나 법률, 경제적 활동이나 개인과 집단의 표현에 내재되어 있는 세계의 개념이다.'(앞의 책, p. 328)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이념체계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태도에 영감을 불어넣고 행위에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과 관계가 있음에 틀림없다. 인간은 행위의 규율이나 방향성이 없이는 행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는 사회에 널리 유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움직이고 자신들의 위치와 투쟁에 대한 의식을 획득하는 영역'이다.(앞의 책, p. 377) 따라서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광범위한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레닌과 루카치가 이데올로기를 이론의 차원에서 다루었다면 그람시는 이데올로기를 4단계, 즉 철학, 종교, 상식, 그리고 탄탄하고 지적인 질서를 감소시키는 민속학으로 구분하였다.
그람시는 이데올로기의 창출에 있어서 지적이고 이데올로기적 기구(교육과 전달매체 등)의 역할을 매우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근거들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레닌과 루카치가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자발적인 의식간에, 그리고 '종속된' 계급의식과 심리적인 계급의식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없었던 반면에, 그람시는 그것들 사이에 이중적인 결정의 추세를 발견했다.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지식인에 의해 발전된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식인과 비지식인 사이에는 절대적 구분이 있을 수 없으며, 더욱이 계급 그 자체는 유기적 지식인을 창출한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이 없는 상태로부터 노동계급으로 들어간다는 어떠한 과학의 문제도 제기될 수 없다. 차라리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지적인 활동을 재생시키고 비판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이데올로기는 결핍된 의식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의지, 즉 계급에 나타난 역사의 방향을 표현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에 존재하는 두 개의 중요한 이데올로기 개념은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늘날의 몇몇 학자들은 이러한 견해 중에 오로지 하나만이 마르크스주의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그들 양자를 화해시키려 했다고 주장한다. 알뛰세의 경우가 그러한데, 그는 지난 20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이데올로기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론과 특수한 이데올로기 이론을 구분했는데, 전자의 경우 이데올로기의 기능은 사회의 응집력을 확보하는 것이며, 그것의 일반적 기능은 한 계급의 지배를 보장하는 새로운 기능에 의해 본래의 기능을 넘어선 역할을 하는 데 있다. 이데올로기가 '실제적인 존재조건에 대한 개별자들의 상상 속의 관계에 대한 표현'(Althusser 1971, p. 153)인 한에 있어서, 그리고 개인들을 생산관계의 체계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용하는 주체로 만드는 한에 있어서, 이러한 기능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수행된다. 다른 한편 알뛰세는 피착취계급의 저항을 표현하는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알뛰세는 과학은 이데올로기와 절대적으로 대립한다고 주장했으나 또한 그는 이데올로기를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사회의 객관적 수준이라고 했다. 이러한 접근방식이 지니는 어려움은 혁명적인 이데올로기의 존재와, 모든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지배 체제에 종속시킨다는 주장을 일치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만약에 상부구조가 단지 이데올로기적 왜곡 이외의 그 어떤 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과학은 어느 곳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과학에 대립되는 잘못된 표현으로서의 이데올로기를 사회의 객관적인 상부구조로서의 이데올로기와 일치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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