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주의] (Opportunism)
레닌 : 우리가 기회주의와의 투쟁을 언급할 때는 온갖 분야에서의 오늘날의 기회주의 전체의 특징, 즉 그의 불명확성, 그의 애매함, 판단의 곤란성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기회주의자는 그의 본성 때문에 항상 문제를 명확하고 확고하게 제기하는 것을 회피하고, 합성력(合成力)을 찾아다니면 서도 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여러 견지사이에 도사리고 앉아 어느 쪽에도 ‘동의하려고’ 노력하며 또 자기들 의견의 상이점을 자질구레한 수정•의심•선량하고 죄가 없는 소망 등등으로 귀착시키고 만다. 강령문제에서 기회주의자인 에두아르트 베른시타인 (Eduard Bernstein, 1850〜1932) 동지는 당의 혁명적 강령에 ‘동의’는 하였으나 분명히 그 ‘근본적인 개정’을 바라고 있었을 터인데도 그 개정시기가 적합치 않으며 합목적적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고 또 ‘비판’의 ‘일반적 원칙’ (그것은 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제 원칙이나 구호를 무비판적으로 빌려오는데 있다) 을 명확하게 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일보전진 이보후퇴, 1904, 레닌전집 제7권, P. 434) 기회주의란 노동자 중의 하잘 것 없는 소수자의 일시적인 이익 때문에 대중의 근본적인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 바꾸어 말하면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을 적으로 일부 노동자와 부르주아가 동맹하는 것을 말한다. 전쟁은 이와 같은 동맹을 아주 뚜렷하게, 또 강제적인 것으로 만든다. 기회주의는 비교적 평화롭고 문화적인 생존이 특권적인 노동자층을 ‘부르주아화’하여 그들에게 자국자본의 이윤 찌꺼기의 일부를 나누어 줌으로써 영락(零落)되고 빈궁한 대중의 재앙과 곤란 그리고 혁명적 기분으로부터 그들을 분리케 하는 저 자본주의 발전의 .한시대의 특수성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은 이와 같은 사태의 직접적 계속이며 완성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대국민족(大國民族)의 특권, 그들 사이의 식민지 재분할, 타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그들 간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소시민의 ‘상층’부 와 노동자 계급의 귀족층(및 관료) 이 자기들의 특권적 지위를 옹호하고 강화하려는 것------이것이 소부르조아적 = 기회주의적 희망과 그것에 알맞는 전술의 전시(戰時)에 있어서의 자연적인 계속이며, 오늘날의 사회제국주의의 경제적 기초이다.……사회배외주의와 기회주의의 가장 밀접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연계를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개개의 사례나 ‘특별한 경우’를 예거(例擧)하여 이러저러한 기회주의자는 국제주의자가 되었다던가, 이러저러한 급진주의자는 배외주의자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여러 조류의 발전문제에서는 진지한 논거가 전혀 되지 않는다. 첫째로, 노동운동에서의 배외주의와 기회주의의 경제적 기초는 동일한 것이다. 즉, 그것은 자국(自國)’자본의 특권 찌꺼기를 받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소시민 중의 소수층이 프롤레타리아 대중, 일반적으로 근로자와 피압박자 대중에게 대항하여 부르주아지와 맺는 동맹이다. 둘째로, 이 두 조류의 사상적 = 정치적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셋째로, 사회주의자를 기회주의적 조류와 혁명적 조류로 나눈다. 제2인터내셔널 시대 (1889〜1914년)에 특유한 낡은 구분은 배외주의자와 국제주의자로 나누는 새로운 구분과 대체로 대응하고 있다.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1915, 레닌전집 제21권, pp. 242〜244)
스탈린 : 노동귀족의 기분이 지배적인 경우에는 공공연한 기회주의를 배양하며, 그리고 노동계급 중에서 아직 소부르주아층과 완전히 손을 끊지 못한 半소시민층의 기분이 지배적인 경우에는 ‘좌익적인’ 문구로 은폐된 기회주의를 배양한다. ‘극좌적’ 기분은 언제나 공공연한 기회주의의 기분과 일치한다는 사실 —— 이 사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레닌은 ‘극좌적’ 반대파란 우익적이며, 멘셰비키적인 공공연한 기회주의적 반대파를 뒤집어 놓은 것이라고 한두 번만 말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만일 ‘극좌파’가 혁명을 지지하는 것은 당장 오늘 내일에 혁명이 승리하리 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라면, 혁명이 정체되거나 당장 오늘 내일에 승리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들이 절망에 빠져서 혁명에 환멸을 느끼게 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회 확대총회, 1926, 스탈린전집 제9권, p. 23)
트로츠키 : 러시아공산당의 기회주의 경향은 다음과 같이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1) 부르주아 제국에 의한 국제적 포위와 자본주의의 일시적 강화가 자칫하면 자본주의의 영속적 부흥을 믿게한다. (2) 신경제 정책 (NEP)은 우리나라의 경우, 어느 정도의 사적 자본주의의 존재를 허용한 것이 사회주의로의 과도기에 절대 필요했지만, 이 정책이 자본주의를 새로 만들어 사회주의에 적대하는 세력에게 재차 원기를 북돋아 주었다. (3) 아직도 국민의 대다수를 농민이 차지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소부르주아 분자가 각급 소비에트뿐만 아니라 당내에도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4) 혁명을 위해서는 절대 필요한바 하나의 당이 정치적 분야를 독점해야 한다는 이 사실은 한층 많은 위험을 낳고 있다. 레닌의 지도하에 있던 제11회 당대회가 솔직하고 공공연하게 지적 한바와 같이, 만약 사회혁명당이나 멘셰비키적 제당이 금지되지 않았더라면, 이들 제 당에 속했을 사람들의 각 그룹(부농층이나 인텔리층에 속하는) 이 이미 우리당내에 들어와 있다. (5) 원래 당이 국가기관을 지도 한다고는 하나, 역으로 국가기관이 부르주아적•소부르주아적인 요소를 당에 많이 침투케 하여 기회주의자를 낳게 한다. (6) 우리나라 건설사업에 필요한 기사•전문가•정신노동자 등이 국가와 경제 및 당기관에 부단히 비프롤레타리아트적 조류의 영향력을 끌어 들이고 있다. 이상이 레닌주의의 반대파가 날이 갈수록 분명해져 가고 있는 스탈린 일파의 편향을 어째서 집요하게 지적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당의 위대한 역사와 오래전부터의 볼셰비키적 당원의 존재 속에야말로, 어떤 경우에도 항상 기회주의로 변질 될 위험을 막는 보증이 있다는 등의 주장은 범죄적인 무분별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마르크스주의 하고는 전혀 인연이 없는 것이다. (러시아의 실정, 1927, 트로츠키선집 제3권, pp.122〜123)
모택동 : 지난 1년 동안 당내에는 기회주의적 현상이 여전히 도처에서 나타났다. 일부 당원들은 투쟁 할 결심이 없어 적이 오면 깊은 산속에 피신하면서 이를 ‘매복’이라고 하였다. 일부 당원들은 열성은 높지만 맹목적인 폭동에 흘렀다. 이것은 다 소부르주아 사상의 표현이다. 이런 형편은 오랜 투쟁의 시련과 당내교양을 통하여 점차 감소되었다. 동시에 홍군가운데도 역시 이런 소부르주아 사상이 존재하고 있다. 적이 오면 결전하자고 주장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도망치자고 주장한다. 이런 두 가지 사상은 작전토의 시에 흔히 한사람의 입에서 발로되고 있다. (정강산투쟁, 1928, 모택동선집 제1권, P. 108)
유소기 : 우익기회주의자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항주의를 취하여 민주주의 혁명을 주로 부르주아지가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동맹에 의지하지 않고, 주로 부르주아지와의 통일전선에 의지하면서 부르주아지에 대하여 손을 잡을 뿐 필요한 경우에는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하여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권을 버리고 부르주아에 의한 혁명 배반이라는 사태하에 혁명을 실패케 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와 광범한 인민의 사업에 중대한 좌절을 가져오게 하였다.…… ‘좌익’ 기회주의자는 각종 소부르주아 대중이나 민족부르주아지와 손잡는 것을 바라지 않고 더군다나 중간세력을 주요 공격방향으로 잘못 선정함으로써 민주주의 혁명에서 각종 중간 세력과 손잡거나 그들을 중립화시킬 필요성과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들은 민족부르주아지와 적당히 손잡지 않고 오직 투쟁할 뿐 이라고 규정했는가 하면 적의 구체적 모순을 이용하고, 힘을 집중하여 가장 중요한 적과; 싸우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 결과로 이 또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권을 버리고 프롤레타리아트만 고립적으로 싸우게 함으로써 혁명이 승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좌익’기회주의자와 우익기회주의자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 바, 그것은 모두 농민의 혁명적 요구와 혁명적 투쟁력을 경시하며, 반동이 지배하는 시기에도 우리가 농촌에 뿌리를 내릴 수 있으며 또 농촌에 혁명근거지를 수립할 수 있고 이리하여 농촌으로써도 도시를 포위한 후 최종단계에는 도시를 탈취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치 않는 그것이다. 따라서 ‘좌익’기회주의자와 우익기회주의자는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서로 그 위치를 바꿀 수 있다. (중국에서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승리, 1959, 유소기주요저작집 제4권, PP. 194〜196)
김일성 : 좌•우경 기회주의는 노동운동 내에 나타난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사상이다. (현 정세와 우리당의 과업, 1966, 김일성저작선집 제4권, P.3S4) 제국주의가 남아 있고 계급투쟁이 계속되는 한 그 반영으로서 노동운동 내에 좌•우경 기회주의가 나타나며 그것을 반대하여 투쟁하게 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동상, p. 334) 이처럼 현대수정주의와 좌경기회주의는 다 같이 국제혁명운동 발전에 막대 한 지장을 준다. 현대수정주의를 반대한다고 하여 좌경기회주의의 위험성을 보지 않는 것도 잘못이며 또한 좌경기회주의를 반대한다 하여 현대 수정주의의 위험성을 보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좌•우경 기회주의를 극복하지 않고는 매개 나라의 혁명과 건설을 옳게 지도할 수 없으며 국제혁명운동을 힘 있게 발전시킬 수 없다. (동상,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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