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상 (韓吉祥, 1896~1974) (號)皢泉] ()
(조공 중앙위원, 사회당 전남도당 부위원장) 전남 광주 출신으로, 광주공립농업학교 2학년 재학중 일본인 교사의 민족차별에 항의하여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퇴학당했다. 1919년 3월 광주지역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고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22년 반일단체 수의위친계(守義爲親契)에 가담했다. 광주청년회에 가입했고 1925년 11월 광주철공조합 간부를 지냈다. 1926년 광주점원청년회 교양부 위원, 1927년 조선농민총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신간회 광주지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8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광주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그후 조공 중앙위원을 지냈다. 1928년 6월 ‘이경채(李京采) 사건’의 배후조종 혐의로 일본경찰에 검거되었으나 면소판결을 받았다. 8월 다시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929년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32년 2월 만기출옥한 후 11월 ‘전남노농협의회 사건’으로 한때 검거되었다. 1933년 3월 장성협동조합 사건으로 다시 일본경찰에 검거되었다. 1945년 8월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부 결성에 참가하고 산업부장으로 선임되었다. 1960년 5월 사회대중당 전남도당 결성에 참여했다. 7월 총선거에서의 패배로 인해 사회대중당이 해체되자 12월 사회당 결성에 참여해 전남도당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1961년 2월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결성에 참여했다. 5·16군사쿠데타 후 박정희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1965년 무력부터 다시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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