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팔용(崔八鏞, 1891~1922) (號)塘南 直夫] ()
(2 ․ 8독립선언 대표, 고려공산당 국내 간부) 함남 홍원 출신으로, 서울 오성중학(五星中學)을 졸업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치과에 입학했다. 1917년 2월 조선인유학생학우회 편집부 부원, 1918년 3월 「학지광(學之光)」 편집인 겸 발행인이 되었다. 12월 유학생 중심의 독립운동방안 협의에 참여하고 김규식(金奎植)의 빠리강화회의 파견을 지지했다. 1919년 1월 일본 유학생 가운데 독립운동을 이끌어갈 임시실행위원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2월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2 ․ 8독립선언서」와 민족대회 소집 청원서에 대표자로 서명했다. 선언 직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3월 출판법 위반으로 금고 9월을 선고받았다. 1920년 5월 홍원청년구락부 조직에 참여했고 그해 가을 서울에서 사회혁명당 결성에 참여했다. 1921년 4월 조선교육위원회 발기인이 되었다. 5월 상해(上海)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중앙위원 및 국내 간부로 선정되었다. 그해 가을 조선청년연합회 회장으로 활동중 ‘사기공산당 사건’에 연루되어 다른 공산주의자그룹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1922년 사망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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