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무(1910~?] ()
(중국 紅軍 간부, 조선의용군 간부) 연해주 우수리스끄에서 태어나 소학교에 다니면서 공산청년회 단원으로 활동했다. 1926년 학교를 졸업하고 10월 광주(廣州)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에 제4기로 입학했다. 재학중 중국공산당에 입당했고, 1927년 4월 장개석(蔣介石)의 반공쿠데타 직후 광주를 탈출하여 상해(上海)로 이동했다. 1930년 3월 상해 당조직의 명령을 받고 서금(瑞金)으로 갔다. 1931년 11월 서금에서 열린 중화노농쏘비에뜨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 유일한 조선인 대표로 참석했다. 1932년 봄 중앙쏘비에뜨 홍군군정학교에 제3기생으로 입학하여 8월 졸업했다. 졸업 후 홍군 제22군 제1단 제2련의 부연장, 두 달 후에는 연(連)의 정치지도원직을 맡았다. 제2차부터 제5차에 걸친 국민당군의 포위토벌을 분쇄하는 전투에 참가했다. 1933년 5월 강서성(江西省) 길안현(吉安縣)전투에서 부상당한 이후 유격대병원 당 총지부 서기를 지냈다. 1935년 봄 상해로 이동했고 중일전쟁 이후 한때 국민당군에 소속되었다. 그후 조선의용군에 편입되었다. 일제 패망 후 통화(通化)에서 조선의용군 제1지대 운수대장, 공급처 처장, 공급부 정치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6년 2월 조선의용군 제1지대 후신인 이홍광지대(李紅光支隊)의 위생부 정치위원, 3월 조선독립동맹의 후신인 동북조선인민민주연맹 요녕성(遼寧省)공작위원회 조직부장을 지냈다. 1950년 10월 중국인민지원군의 일원으로서 제3야전군 제9병단 적공부(敵工部)를 맡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52년 3월 중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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