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덕(崔上德, 1900~?)] ()
(무산자동맹회 회원)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919년 3월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4월 종로에서 시위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1920년 3월 조선노동공제회에 가입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2년 차금봉(車今奉)과 함께 공제회 내의 지식인 배척운동을 전개했고 3월 무산자동맹회에 가입했다. 1923년 8월 국내 공산주의그룹 사이의 갈등으로 일어난 ‘낙양관(洛陽館) 사건’에 가담했다. 1924년 2월 남만주철도주식회사[滿鐵]에 취직하여 용산 보선구(保線區) 노동자로 일했다. 1925년 1월 이후 신문배달을 하면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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