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申春, 1907~34)] ()
(중공 琿春縣委 군사부장) 경상도에서 출생하여 1910년 북만주로 이주했다. 황포군관학교(黃補軍官學校)에 입학했다. 1927년 중국국민혁명이 장개석(將介石)의 반공쿠데타로 실패하자, 12월 황포군관학교 특무영 제2련의 조선인들과 함께 광주봉기(廣州峰起)에 참가했다. 봉기가 실패한 뒤 동만주에서 공산주의운동에 투신했다. 1930년 ‘간도 5 ․ 30봉기’ 당시 약수동(藥水洞) 일대에서 봉기에 가담했으며, 만주지역에서 최초로 형성된 약수동쏘비에뜨 설립에 참여했다. 7월 연화(延和)노농유격대를 조직하여 총지휘자가 되었으며, 길돈봉기(吉敦峰起)를 지원하던 중 부상을 당했다. 8월 중국공산당 연화중심현위원회 조직에 참여하여 군사부장이 되었다. 그뒤 중공 훈춘현위 군사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31년 2월 대황구(大荒溝)에서 밀고자의 고발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5월 연길(延吉)감옥으로 이송되어 무기형을 받았다. 만주사변이 일어난 뒤 유기징역형으로 감면되어 1934년 6월 만기출옥했다. 출옥 직후 연길 일본헌병대에게 암살당했다.
|
■ 인접어
신준희(申畯熙, 1888~?) 신철(辛鐵, 1901~?) (本)辛容箕 신철수(申哲洙, 1903~?) 신철호(辛哲鎬, 1902~?) 辛承昌 신철휴(申喆休, 생몰년 미상) 신춘(申春, 1907~34) 신춘(申春, 1907~34) 신태민(申泰珉, 1908~?) (本)申夢棠伊 申泰紋 신태악(申泰岳, 1902~?) 辛泰嶽 辛秀嶽 三川泰嶽 三川淸 신표성(愼杓晟, 1897~1947) 신학업(申學業, 1901~?) 申周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