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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魯民, 1917~ ) 張海雲] ()

(조선의용대 대원) 평남 남포 출신으로, 진남포 상공학교 상업과에 입학했다. 재학중 독서회 활동에 참가하여 1933년 11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었다가 1934년 여름 출옥했다. 그해 늦가을 중국으로 망명하여 광동성(廣東省) 광주(廣州) 사립 제일중학 보습반을 거쳐 중산대학(中山大學) 문학원 사회학부에 입학했다. 중산대학 재학중 반일학생단체인 용진학회(勇進學會)에 가담하여 맑스주의이론을 연구했고, 1935년 12월 중산대학 학생들의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1937년 가을 남경(南京)에서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하고, 민혁당 내의 지하혁명조직인 조선청년전위동맹에 가담했다. 12월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성자(星子) 강릉분교(江陵分校)에 입학하여 1938년 5월 졸업했다. 10월 무한(武漢)에서 조선청년전위동맹계열의 부대인 조선의용대 제2구대에 가담했다. 무한 함락 후 최창익(崔昌益)의 지시에 따라 서안(西安)을 거쳐 연안(延安)으로 갔다.
(노동당 남포시당 위원장)1939년 봄 항일군정대학(抗日軍政大學) 제 5기생으로 입학했다. 같은 해 가을 중국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조선의용대에 복귀하여 낙양(洛陽)을 거쳐 그해 말 화북(華北) 임현(林縣)의 국민당계 신오군(新五軍)에서 항일선전활동을 전개했다. 1941년 1월 화북조선청년연합회 결성식에 참여하여 위원이 되었다. 의용대의 북상임무를 띠고 낙양으로 가서 활동했다. 1942년 7월 화북조선독립동맹 결성 후에는 산동(山東)으로 가서 독립동맹 교동분맹(膠東分盟) 책임자, 조선혁명군정학교 산동분교 부교장, 교동공작단장을 지냈다. 해방 후 38선 이북으로 귀국하여 조선노동당 남포시당 위원장을 지냈다. 그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현재 북경(北京)에서 거주하고 있다.
■ 인접어

남준표(南俊杓, 1902~?)
남중군(南仲軍, 1907~?) 南相穆 崔森一
남창익(南昌益, 1910~34) 南昌一 南一
남해룡(南海龍, 1894~?) 南洪
노명우(盧明愚, 1900~?)
노민(魯民, 1917~ ) 張海雲
노민(魯民, 1917~ ) 張海雲
도관호(都寬浩, 1900~?)
도상덕(都相德, 1908~?)
도용호(都容浩, 1895~?)
도재기(者在琪, 1906~?) 都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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