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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발(朴榮發, 1913~54) 朴玄錫] ()

(전평 조직부장, 노동당 전남도당 위원장) 경북 봉화에서 대지주의 맏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했다. 1931년 신문기자들의 정보 교환을 표면에 내세운 보도협조망 결성에 봉화 대표로 참여했다. 1932년 4월 봉화에서 적색농민조합 사건으로 경찰에 수배되었다. 1940년대 초반 상경하여 토건노동조합 노동자로 일했다. 만주와 서울을 왕래하면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검거되어 해방 후 출옥했다. 서울에서 토건노조에 관여했고 아문각출판사 간부를 지냈다. 1945년 11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결성대회에 경성지구 토건노조 대의원으로 참석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전평 토건노조 위원장, 전평 서울시 평의회 조직부장, 남조선노동당 서울시당 노동부장, 전평 조직부장, 남로당 노동부 지도원을 역임했다. 1946년 8월 ‘전남 보성 율어면 인민봉기 사건’ 주동자로 수배되었고, 1947년 가족을 동반하여 월북했다. 당의 추천으로 6개월 과정의 모스끄바 고급당학교에 입학했다. 귀국 후 조선출판사 사장으로 재직했다. 1950년 6월 조선노동당 전남도당 위원장으로 선정되어 서해안을 통해 남하했다. 7월 조선인민군 제6사단이 광주에 들어오자 당과 행정기구를 조직했다. 9월 도당 지도부를 산악지대로 이동시키고 유격대를 편성했다. 1951년 9월 덕유산에서 열린 ‘남한 6도 당수뇌부회의’에서 각 도당을 사단편제로 바꾸어 남부군을 조직하자는 이현상(李鉉相)의 제의에 반대했다. 1952년 4월 노동당 제5지구당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1953년 9월 이 지구당 해체를 주도했다. 구국출판사를 조직하여 책임을 맡았다. 노동당 제5지구당 부위원장, 전남도당 위원장직을 사임하고 문서담당 임무를 맡았다. 그해 가을 지리산에서 유격대활동을 전개했다. 1954년 1월 전세가 뒤바뀌자 지리산 뱀사골에서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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