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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막(安漠, 1910~?) (本)安弼承, 萩白] ()

(문인, 카프 중앙위원)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갔다. 토오꾜오(東京)에서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노문과에 다니면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토오꾜오지부를 중심으로 프로문학운동에 참가하는 한편, 고경흠(高景欽)을 비롯한 ML파 공산주의그룹의 당재건운동에 가담했다. 1929년 5월 이북만(李北滿), 김두용(金斗鎔), 임화(林和), 김남천(金南天)과 함께 무산자사(無産者社)를 건립하고 기관지 『무산자』를 간행했다. 그후 귀국하여 비밀공산주의그룹과 연계를 맺으면서 공산주의운동의 사상적, 이념적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또한 김남천, 임화와 함께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했다. 1930년 4월 카프 중앙위원 및 연극부 책임자가 되었다. 예술운동의 정치적 진출을 꾀하기 위해 예술운동의 볼셰비끼화를 주장하며, 카프를 기술자조직(예술가 위주)으로 개편했다. 그해 평론 「프로예술의 형식문제; ‘푸로레타리아 리아리즘’의 길로」, 「조선프로예술가의 당면의 긴급한 임무」를 발표하여 김기진(金基鎭)의 대중화론을 형식주의라고 비판하며,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을 미학이론으로 하는 예술운동의 볼셰비끼화를 내세웠다. 1931년 5월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에 종사하던 동료 최승일(崔承一)의 동생인 무용가 최승희(崔承姬)와 결혼했다. 이후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의 일환으로 최승희 공연의 매니저 역할을 했다. 9월 ‘제1차 카프사건’에 연루되어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투옥중 일본경찰의 요구에 따라 자술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 약사」(『사상월보』, 1932. 1)를 집필하고 불기소 처분을 받고 출옥했다. 1933년 「창작방법 문제의 재토의를 위하여」를 집필하여 새로운 창작방법론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소개했다. 이 글은 김남천으로부터 창작방법의 전환을 조직전환과 관련짓지 않았다는 점, 당파성을 외면하는 탈정치주의적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이를 계기로 창작방법 논쟁이 본격화했으나 논쟁에는 참가하지 않은 채 문학활동을 중단했다. 해방 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했다. 1947년 4월 월북하여 문화선전성 고위 간부를 지냈다. 1959년 반당 종파분자로 지목되어 숙청당했다. 작품으로는 『카프시인집』(1931)을 임화, 박세영(朴世永), 권환(權煥) 등과 함께 출판했으며, 평론으로는 「맑스주의 예술비평의 기준」 「조직과 문학」 「1932년 문학활동의 제과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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