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규(金三奎, 1908~?) 金三奉 李哲洙 淸水畿太郎 淸水淸吉] ()
(無産者社 책임자, 변절)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영암공립보통학교에서 수학했다. 1920년 4월 토오꾜오(東京)의 카이죠오중학(海城中學)에 입학했다. 1921년 4월 토오꾜오고등학교 심상과(尋常科)로 옮기고 1928년 3월 이 학교 고등과를 졸업한 후 4월 토오꾜오제국대학 독문과에 입학했다. 1930년 3월 이후 무산자사 책임자가 되어, 『무산자』 『인터내쇼날』등의 팸플릿을간행했다. 4월 반제국주의민족독립지지동맹에 가입하고 토오꾜오제대 문학부 B반 책임자가되었으나 6월 탈퇴했다. 10월 무산자연구회 조직에 참가하여 서기국 책임자 겸 조직부 산하 반제동맹원이 되었다. 1931년 3월 토오꾜오제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8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서울지부 책임자로 활동중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934년 8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935년 5월 조선예술좌(朝鮮藝術座)를 설립하고 일본 칸사이지방(關西地方)에서 사회주의사상 선전에 노력하던 중 1936년 12월 검거되었다. 일제 말기에 변절했다. 해방 후 조선문화건설본부에 참여하고 외국문학부에 배속되었다. 그 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문화부장, 편집국장, 주필을 역임했다. 1955년 2월 일본에서 한반도중립화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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