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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겸(金萬謙, 1886~?) 김세레브랴꼬프] ()

(『靑丘新報』 편집인) 러시아 블라지보스또끄 근교의 농촌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 뒤, 조선인 소학교에서 수학했다. 1905~6년 연해주에서 러시아혁명에 참여했다. 1906년 블라지보스또끄 러시아중등학교(김나지움)를 졸업한 후 신한촌(新韓村) 조선인 소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했다. 1910년 8월 일본의 조선 강점에 항의하여 발표된 ‘성명회(聲明會)선언서’에 서명했다. 1911~12년 블라지보스또끄에서 발간된 러시아어신문 『달료까야 오끄라이나[邊境]』서울 주재 특파원으로서 서울에 거주했다. 일제의 조선침략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쓴 뒤 일본경찰에 의해 국외로 추방당했다. 1914년에서 1917년까지 국경대표부 통역으로 일했다. 1917년 5월 니꼴리스끄 ․ 우수리스끄에서 열린 전로한족대표자회에 참석한 뒤 『청구신보』 편집인이 되었다.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3 ․ 1운동을 옹호하는 글을 다수 집필하는 한편 「기미독립선언서」를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배포했다. 1920년 5월 코민테른에서 보이찐스끼와 함께 상해(上海)로 파견되었다. 그해 가을에 한인사회당 성원들과 협력하여 재상해 한인공산당을 조직했다. 1921년 5월 고려공산당(이르꾸쯔끄파) 창립대회에 참가하여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2년 10월 베르흐네우진스끄 고려공산당 연합대회에 출석했으나, 이르꾸쯔끄파 대의원들과 함께 집단퇴장하여 치따에서 별도의 당대회를 개최했다. 치따 당대회에서 코민테른 파견 대표단의 일원으로 선출되어 12월 코민테른 제4차 대회에 출석했다. 이 대회 직후 조선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조직된 조선문제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시베리아내전이 끝난 뒤 연해주쏘비에뜨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9년 소련공산당에서 제명된 후 소련경찰에 체포되어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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