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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金光洙, 1903~?)] ()

(조선인유학생학우회 간부) 전라도 대지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철수(金錣洙), 김창수(金昌洙)의 동생이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토오꾜오(東京)로 건너갔다. 1925년 2월 사상단체 전북민중운동자동맹 기관지 『민중운동』제1호를 발행했다. 1926년 조선인유학생학우회 간부가 되었다. 이 무렵『동아일보』토오꾜오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박열(朴烈) 사건’을 취재하여 서울로 송고했다.
(조공 경기도당 조직부 위원) 1926년 9월 정우회(正友會)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7년 1월 조선공산당 경기도당 조직부 위원, 6월 경기도당 산하 인뗄리겐쨔 야체이까 책임자가 되었다. 8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931년 2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3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오오사까(大阪)에서 『조선중앙일보』일본지국장으로 일하면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全協] 산하단체인 일본 출판노조 활동에 관여했다. 1933년 1월 젠꾜오(全協) 출판노조 칸사이(關西)지부를 결성했다.『조선중앙일보』정간 이후 서울로 돌아와 고무공장을 경영했다.
(남로당 총무부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업성 副相) 1945년 9월 조선인민공화국 서울시 인민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식에 서울시 대의원으로 출석하여 민전 중앙위원 및 서울지부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8월 안녕질서 위반 혐의로 미군정 경찰에 검거되어 11월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남조선노동당 결성 때 의장단에 추대되었고 결성 이후 총무부장이 되었다. 1947년 3 ․ 22총파업 직후 미군정 경찰에 포고령 위반 혐의로 한때 체포되었다. 8월 ‘공위경축 민주임정수립촉진 인민회’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다시 검거되어 1948년 3월 상고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9월 제1기 최고인민회의에 남조선 대의원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후 상업성 부상을 지냈다. 1953년 종파분자로 지목되어 숙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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