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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金環載, 1899~?) 金綽 赤星 陳榮喆 金世成 金ᅳ成 金致柱 朴君植 金俊模 金光錫 金光宇 方友淸] ()

(『新韓公論』주필, 신한독립당 비서과장) 황해도 황주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황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했다. 1920년 향촌회를 조직하고, 신흥청년회 회장을 지냈다. 군비주비단(軍備籌備團)에 가입하여 일제 관리들의 생명과 재산을 탈취하겠다는 편지를 고향의 면장과 순사 등에게 우송했다. 토오꾜오(東京)로 가서 1년가량 식물병리학을 연구하다가 상해(上海)로 건너가 1922년 상해『독립신문』의 기자가 되었다. 1923년 봄 북만주와 러시아령을 시찰하고 돌아가는 길에 하얼삔(哈爾賓)에서 일본영사관 경찰에 검거되었다. 당시 상해『신한공론』주필이었고 신한독립당 비서과장 및 산업부장이었으며 국민대표대회 당시 창조파에 속했다. 검거된 후 취조를 받고 서울로 호송되었으나 곧 석방되었고 한때 고향의 사립학교 교장을 지냈다.
(고려공청 중앙위원, 조공 당원) 이후 상경하여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했다. 화요회와 북풍회의 중진으로서 실천활동을 전개하는 한편『개벽』『조선지광(朝鮮之光)』『시대일보』등의 논객으로서 문필활동을 전개하여 조선의 후꾸모또(福本和夫)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1925년 전(全)조선민중운동자대회에 황주 대표로 참가했다. 그해 12월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26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6월 ‘제2차 조공 검거사건’으로 검거되어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검거 당시 경기도청년연맹 상무집행위원, 한양청년연맹 상무집행위원, 신흥청년동맹 회원, 신흥청년사 동인, 정우회(正友會) 회원, 조선기근구제회 위원,『조선지광』기자로 활동중이었다.
(문필가, 변절) 1929년 8월 출옥한 후 사회주의운동 일선에서 물러나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삼천리』『혜성』『비판』등 각종 잡지에 다양한 필명으로 사회운동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만주와 시베리아 및 중국 문제에 관한 글을 주로『삼천리』에 게재했다. 1940년대 전반 카네자와 히데오(金澤秀雄)로 창씨개명했다. 상해로 건너가 친일 신문 『상해시보(上海時報)』사장을 지냈다.「독립정책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라』(『독립신문』1922. 6. 24~7. 1),「농촌문제의 전개 경향』(『개벽』제69호, 1926. 5),「외래자본주의의 조선 안에서의 발전』(『혜성』제1~3호, 1931. 5), 「신간회 해소과정의 재음미」(『삼천리』1931년 12월호),「안재홍(安在鴻) 코쓰 비판」(『삼천리』제24호, 1932. 3)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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