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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업] (division of labor)

마르크스는 사회적 분업을 '다종 다양한 유용노동의 이질적 형태들의 총체'(《자본론》Ⅰ권 1장)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분업을 상품생산의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서로 고립되어 수행되는 상호 독립적인 노동행위가 없다면 시장에서 상호 교환되는 상품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상품생산은 사회적 분업이 존재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원시 공동체에서도 분업은 있었지만 그 생산물이 상품으로 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좀더 적절하게 말하면 한 공장 내에서의 분업은 그 개인적 생산물을 교환하는 노동자들의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두 가지 매우 다른 분업의 존재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로 교환에서의 분업, 즉 사적 생산자들에 의해 서로 독립적으로 수행되는, 각기 상이한 유용한 노동형태들의 복합체로 이해되는 사회적 분업이 있는데, 자본주의의 경우에는 이것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며 경쟁적인 자본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둘째로, 모든 작업들이 동시에 수행되는 가운데 각자 부분적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 사이의 분업이다. 이때 생산되는 것은 집단적인 노동자들의 사회적 생산물이다. 이것은 생산과정의 자본과 노동사이에서 발생하는 생산에서의 분업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환에서의 분업과 서로 관련되어 있긴 하지만, 두 분야의 기원과 발전은 매우 다른 것이다.
먼저 사회적 분업에 대해 살펴보자. 이것은 모든 사회형태에 존재하며, 인간의 생리적 차이에서 비롯되거나 지배적인 특별한 사회적 관계에 의존하는 특별한 목적을 촉진하는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게다가 상이한 공동체들은 그 자연환경에 따라 상이한 생산수단과 생존수단을 가지게 되는데, 이 상이한 공동체들이 서로 접촉함에 따라 이 차이들은 생산물의 상호 교환을 촉진한다. 그리하여 가족, 부족, 마을, 공동체 기타의 모든 사회단위 안에서나 그 사이에서의 교환은 생산의 전문화와 분업에 자극을 준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생산물들은 점차로 상품으로 전환되고, 특정한 분업이 특히 자본주의의 창조물로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사회적 분업과 상호 작용하는 생산과정 속에서 대두한다. 물가 안정책과 잉여가치의 추구는 이전의 독립 수공업자들을 자본의 통제 아래에 있는 단일한 장소의 단일한 생산과정 속에 통합하였다. 이런 방법으로 생산에서의 분업은 사회적 분업의 희생 위에서 발전하였다. 동시에 개별적 노동과정에서 생산은 그 구성요소들로 분해되고 그 각각은 분리된 생산과정을 이룬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회적 분업은 생산에서의 분업의 희생 위에서 발전한다. 그러나 자본에 의해 발전되는 생산력은 양 분업 사이의 구분선을 끊임없이 긋고 수정하면서 양 분업이 팽창하는 속도에 맞추어 증가한다. 이리하여 자본주의적 분업을 조직하는 것은 바로 축적의 강요이며 시장의 범위에 의해 부과되는 한계가 아니다.
이런 계속적인 상호 작용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통제 아래, 생산에서 일어나는 전문화는 다른 자본들 사이의 교환에서 일어나는 전문화와는 매우 다르다. 첫째로, 교환에서의 분업은 모든 다른 생산과정이 상품을 생산하는 한에서만 존재하는 생산과정들과 연결된다. 상이한 노동들은 단지 상품으로서 그러한 노동의 생산물들을 통해 연결되고, 그 연결은 단지 구매와 판매 행위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생산에서의 분업에서는 어떤 노동자도 독자적으로 하나의 상품을 생산하지 못한다. 각각의 노동자는 단지, 모든 전문화된 활동의 총합인 노동자 집단의 구성분자일 뿐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일어나는 구매와 판매 행위는 자본가들이 필요한 수의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것이다.
둘째로, 사회에서의 분업은 다수의 독립된 생산자들 사이에 생산수단을 널리 분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생산 내에서의 분업은 자본가의 배타적인 사적 소유로서 생산수단의 집적을 전제한다.
셋째로, 두 가지 분업이 조직화되는 방법은 매우 다르다. 사회에서의 분업에 관해서는 마르크스가 '우연과 변덕의 행위'(《자본론》Ⅰ권 14장)라고 말한 것이 지배적으로 작용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노동의 여러 분야들 사이에서 표면상 자본을 임의적으로 분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각각의 자본가는 사용가치 생산의 필요, 궁극적으로는 이윤을 고려하도록 강요받는데, 이런 강요들은 단지 가격 변동을 통해 자본가에 타격을 줄뿐이다. 따라서 사회적 분업은 경쟁의 과정에서 의하여 귀납적 방법을 강요한다. 이와 반대로 생산과정에서는 '우연과 변덕'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 각각의 노동자는 한정된 기능을 가지고 다른 노동자들 및 생산수단과 일정한 비율로 결합한다. 생산에서의 분업은 자본가에 의해 계획되고 조정되고 감독되는데, 그것은 자본가의 사적 소유로서 자본에 속하는 메커니즘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자본의 강제력에 의해 연역적 방법을 강요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사회적 분업에서의 무정부성과 매뉴팩처 분업에서의 전제성이 서로 제약한다'(《자본론》Ⅰ권 14장)고 규정한다. 그리고 매뉴팩처에 부합되는 사실은 기계제 생산에서 훨씬 더 잘 드러나고 여기서는 노동을 생산수단에 종속시키는 과정이 극단적으로 실현된다.
끝으로, '무정부성'과 '전제성'사이의 이러한 대비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의해 강화된다. 생산에서 조직화된 분업은 자본의 생산력을 증가시키는 조직화로서 찬양 받는데, 그것은 편의대로 무시되는 노동자들의 인간 능력의 성장을 방해하고 왜곡하는, 부분 작업에 그들의 생애를 한정시켜버린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동의된 기준에 따라 비조직적인 사회적 분업을 통제하며 그것을 조절하고 계획하는 모든 양심적인 시도는 사적 자유, 사적 소유권, 개별 자본가의 창의나 기업정신을 위험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즉각 비난받는다. 그리하여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선천적이건 후천적이건, 기호와 기술에 따라 개인을 직업에 배치한다는 입장에서 사회적 분업을 분석하는 경향, 증대되는 성장과 생산성의 원천으로 전문화를 찬양하는 경향, 그리고 일반적으로 특정한 경제적, 사회적 관계들의 산물로서의 분업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특유한 범주들과 제도들이 일시적이기보다는 영원한 것으로 취급된다. 개인적인 기호와 생산 기술들은 항상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생각을 가망 없는 유토피아적인 것이라고 비웃기 쉽다.

어느 누구도 하나의 전문적인 활동 영역을 가지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모든 분야에서 각자가 성취를 맛볼 수 있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회는 전반적인 생산을 조절하고 그리하여 내가 오늘은 어떤 일을 하고 내일은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고 저녁에는 양떼를 먹이고 저녁식사 후에는 문필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 나는 그런 각각의 일들을 사냥꾼이나 어부나 양치기 또는 비평가가 되지 않더라도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독일 이데올로기》Ⅰ권 IA 1절).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의 주요한 공격은 어떻게, 그리고 왜 인간 노동의 생산물이 생산자 그 자체를 지배하는가, 어떻게 자본으로 존재하는 대상화된 노동이 외면상 객관적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통해 살아있는 노동을 지배하려고 하는가 하는 점을 논증한 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추론들 중의 하나가 개인들 스스로 창조하는 사회에 의해서 분업이 그들에게 강요된다는 것이다. 물론 생산은 항상 생산물에 노동을 대상화시키는 활동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상화가 일어나는 계급관계들은 다음의 것을 결정하는 데 문제점을 던져준다.

즉 특수한 이익과 보편적 이익 사이의 분열이 존재하는 한, 그리하여 활동이 자발적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분리되는 한, 인간 자신의 행동은 그에 반하는 소외된 힘이 된다. 그것은 그에 의해 조절되는 대신 그를 노예화한다…이런 사회적 활동의 고착, 우리들 자신의 생산물을 우리를 초월하는 물질적 힘으로 응고시키는 것은…지금껏 역사 발전의 주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앞의 책).

이것은 주체가 객체로 되고 객체가 주체로 되는 자본주의의 특징적 전도이다. 결론적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적 소유관계의 폐지와 분업의 폐지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이 생산과 교환을 조절하고 의식적으로 계획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이다. 상품 형태의 폐지와 함께 노동의 사회적 특징은 더 이상 노동 생산물이 객관화되는 특징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즉 대상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서 생산자 그 자체를 지배하는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그 역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현실적 전도는 사적 소유에 기초한 분업의 폐지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분명히 어떤 종류의 사회적 분업은 인간생활의 물질적 조건이 계속적으로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데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실제적인 생산영역 밖에서만 가능한 것이 된다. 다시 말해서 생산 속에서의 자유는

자연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처럼 그것에 의해 지배되는 것 대신에, 자연과의 상호 교환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그것을 그들의 보편적 지배 하에 굴복시키는, 그리고 그들 인간본성에 가장 유리하고 훌륭한 조건 아래에서 최소한의 에너지를 지출하여 이것을 획득하는, 사회화된 인간, 즉 상호 협력하는 생산자들 속에 존재함을 뜻한다(《자본론》Ⅲ권 48장).

따라서 생산에서의 분업을 지배하는 '전제(專制)성' 대신에, 지금 논의된 그러한 분업은 생산자들 자신에 의한 민주적 계획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 사회적 분업을 지배하는 '무정부성' 대신에 '사회는…개인이 적당한 몫의 지식을 얻기 위해, 또는 자신의 활동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분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분업을 지배하는‘무정부성’대신에 사회의 전체적 필요에 충분한 생산을 달성하기 위해 합목적적인 방법으로 그 시간을 배분해야만 한다'(《요강》, 화폐에 관한 章).
사회화된 생산관계 하에서의 기계류, 특히 자동화의 발전적 잠재력은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의 세계'가 물질적 생산 밖에서 창조되는, 그러한 생산에서의 시간의 절약을 허용하게 되고, 그 자체가 목적인 인간의 힘의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자본론》Ⅲ권 48장). 따라서 우리는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보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잉여노동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노동시간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노동을 최소한으로, 전반적으로 축소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자유롭게 된 시간에, 그리고 창조된 수단을 가지고 개인들의 예술적, 과학적 기타 등등의 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요강》, 자본에 관한 章).

이런 방법으로 분업은 폐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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