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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光復軍)] ()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重慶)에서 창설된 항일군사전투단.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터지자 장개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을 초치, 항일공작활동을 건의한 바 있거니와 이에 힘입은 임시정부는 이청천 장군을 중심으로 광복군 단체 결성을 시도하였으며 이의 성과의 하나로서 낙포(洛浦)군관 학교 내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일본측에 탐지되어 이내 해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광복군 창설의 시발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정부가 장사 · 사천 · 중경 등으로 이전함에 따라 함께 이전하여 다니다가 1940년 9월 19일 중경 동명회관에서 한국 광복군을 정식으로 창설하였다(총사령관 이청천, 참모장 김홍일). 그러나 광복군은 군대나 무기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임시정부가 아무 사전준비없이 서둘러 광복군을 창설한 것은, 1938년 가을 김원봉의 조선민족혁명당이 한구(漢口)에서 중국정부의 후원을 받아 조선의용대를 결성하고 항일군사활동을 전개한 데 대한 자극과 반성에서였다. 임정은 장개석의 자금지원에 힘입어 각지의 교포들을 상대로 군사모집작전을 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이듬해 초 조성환을 주임으로 하는 서안공작대가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되어오고 1942년 4월에는 김원봉이 자기 휘하의 조선의용군(약 200여명)을 이끌고 왔다. 이에 광복군은 비로소 군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총사령관에 이청천, 부사령관에 김원봉, 참모장에 김홍일, 제1지대장에 김약산(김원봉), 제2지대장에 이범석을 임명하였다. 또한 임정은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이 일어나, 중국국민당 정부가 일본에 정식 선전포고를 하자(그때까지 국민당 정부는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었다) 따라서 12월 10일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일본침략전선 참가를 선언하였다. 이리하여 전세가 강화된 광복군은 중국의 각 지역에 투입되어 일본군에 대한 심리전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거니와, 이를 전해 들은 영국군이 인도·버마 전선에 광복군의 투입을 요청하여 한·영 군사협정을 1943년 6월에 체결하고 광복군 공작대를 인도·버마전선에 파견하였다.
광복군이 가장 힘을 기울인 것은 미국과의 합동작전이었다. 미군 전략정보처(O.S.S)에서는 일본군에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광복군에 편입된 학생들을 중심으로 특수공작교육을 실시, 이들을 국내에 투입키로 하였다. 그리하여 1945년 4월부터 이들은 중국의 서안과 부양에서 훈련에 들어갔으나 일본의 예상 밖의 빠른 무조건 항복으로 목적 달성을 못하고 말았다.
장준하·김준엽 등(학병 출신)이 참여한 O.S.S. 훈련상황을 보러 갔다가 일본의 항복선언을 전해 들은 金九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 실정을 잘 전해준다. “이것은(일본의 항복) 내게는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 천신만고로 수년간 애를 써서 참전할 준비를 한 것도 허사다. 서안과 부양에서 훈련을 받은 우리 청년들에게 각종 비밀무기를 주어 산동에서 미국 잠수함에 태워 본국으로 들여보내어서 국내의 요소를 혹은 파괴하고 혹은 점령한 후에 미국 비행기로 운반할 계획까지도 미육군성과 다 약속이 되었던 것을 한 번도 해보지를 못하고 왜적이 항복하였으니 진실로 전공이 가석(可惜,=몹시 아깝다)하거니와, 그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우리가 이번 전쟁에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장래에 국제간에 발언권이 박약하리라는 것이다.”
김구가 예측한 대로 임정 산하의 광복군은 조선독립동맹의 조선의용군, 만주지방의 동북인민군과 함께 마지막까지 항일전을 전개한 독립군이었으나 이들은 귀국후 해방정국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못했음은 물론 대한민국 창군과정에서도 국군의 중심역이 되지 못하고 만주사관학교와 일본사관학교 출신들에 밀려나고 말았다. 그것은 미군정에서 볼 때 그들이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며 정치적으로 보인 반면 군사기술상에서는 미숙하게 보인 까닭이었다. 김홍일 · 최덕신 · 김신 · 안춘생 · 송호성 등만이 광복군 출신으로서 6 · 25 이후까지 국군내에서 일정한 지위를 점하고 일정한 역할을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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