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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준비위원회(建國準備委員會)] ()

일명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건준(建準)이라고 약칭한다. 1945년 8월 일본의 패배가 명백해지자 조선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재한일본인(在韓日本人)의 어려운 문제와 앞으로의 조선통치, 한일관계 등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하여 총독부 당국은 일본과 협력할 수도 있고, 또 한국민으로부터의 믿음이 깊은 지도자를 선택하여, 그 지도자와 협력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그 지도자가 여운형(呂運亨)과 송진우(宋鎭禹)였다. 송은 그 제의를 거부하였고 여는 응락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협력제의가 없었다, 그 제의가 거부되었다는 등(송의 경우) 여러가지 설(設)이 있지만 총독부 당국이 여를 높게 평가한 것만은 사실이었으며, 그의 선택을 다행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왜냐하면 여는 당시 민중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을 뿐 아니라 통치능력 또한 지니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총독부측과 여운형이 만났을 때 여운형은 아래와 같은 5가지 조건을 제시 했다. ① 전조선의 정치범 경제범을 즉시 석방하라. ② 집단생활지인 경성의 3개월분(8,9,10월) 식량을 즉시 확보하라. ③ 치안유지와 건설사업에 아무런 구속과 간섭을 하지 말라. ④ 조선의 추진력인 학생의 훈련과 청년의 조직화에 간섭을 하지 말라. ⑤ 조선내의 각 사업장에 있는 노무자들은 우리의 건설사업에 협력하라. 이 요구들은 정무총감 엔도(遠藤)에 의해서 즉각 수락되었다. 위 요구들 속에는 단순한 치안유지의 차원을 넘어서 과도적인 건국 준비 기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여운형은 이미 건국에 대비한 준비를 해 오고 있었는데 그 중 핵심이 되는 것은 건국동맹의 조직이었다. 건준은 이 건국동맹 조직에다 8 · 15이후에 석방된 정치범들과 장안파 공산주의자(李英 · 鄭栢)들이 참여, 급진적인 요소를 보였는가 하면 김병로(金炳魯) · 백관수(白寛守) · 이인(李仁) · 김용무(金用茂) · 김약수(金若水) 등의 온건주의자들도 참여해, 이미 건준의 부위원장에 취임한 바 있는 안재홍과 함께 건준에 온건한 민족주의적 성격을 부여하였다. 즉 건준은 중도 우파(안재홍계)와 중도좌파(여운형계) 위에 극우파(한민당계)와 극좌파(조선공산당계)가 혼합한 좌우 연합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건준은 브루스 커밍스도 지적했듯이 본질적으로 여운형을 지지한 좌우파 혼합의 구성체였으며, 이강국(李康國) · 최용달(崔容達) · 박문규(朴文查) 등의 공산주의자들로부터도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허나 9월 이후 안재홍의 퇴장에 따라 좌파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지니게 되었다.
건준을 말할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가장 짧은 기간에 광범한 규모의 지방지부가 결성되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8월 31일까지 함경도에서 제주에 이르는 전국지부가 145개소에 이르렀으며, 이후 건준이 해체되는 3개월 뒤까지 시 · 군은 물론 면 · 마을에까지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어 모든 지방 행정을 슬기롭게 처리해 나갔다. 그들은 스스로의 성격을 건국을 위한 준비기구로 규정짓고 “치안의 확보, 건국을 위한 민족총역량의 일원화, 교통 · 통신 · 금융 및 식량대책의 강구”등 실무적 역할에 치중하고 있었으므로 맡은 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건준이 해방직후의 정치적 공백기를 순조롭게 매워나가는 가운데서 여운형측과 송진우측은 여러 차례 합작을 시도한 바 있었다. 그러나 여운형측은 송진우 자신보다도 그 배후에 있는 그룹 전체를 경계한 반면, 송진우측은 건준을 조선공산당의 앞잡이로 보고 중경임시정부에 정통성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함에 따라 결렬되곤 했다. 송진우가 이같은 입장을 취한 것은 중경임시정부와 그들의 제휴 여부, 김성수를 중심으로 한 동아일보 · 보성전문 · 경성방직 등 여러 기관 업체의 재력과 인력 등을 믿었던 데 있었던 것 같다. 건준은 이같은 좌우파의 갈등을 겪다가 9월 6일 “진주할 미군에게 조선민족의 자치능력을 표시할 당면의 필요”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자진해체하였다.
건준은 그 조직 자체가 일제와의 직접적인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여운형의 기동성과 정치적 영향력의 소산이라고 하는 점, 그리고 당시를 변혁 지향적 세력과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간의 대결시기로 볼 때 조직의 위치를 그 어디에도 확실히 정위(定位)시키지 않았다는 점, 일제잔재 세력의 역량을 과소평가했으며, 세계정세에의 무지로 인한 사태에 대한 낙관성과 조급성 등의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해방직후의 통치공백을 매우고 자치력을 발휘했다는 일정한 역할은 한국정치사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며, 이후의 인민공화국, 그리고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맥을 이어가면서 한국민의 자주 · 민주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할 것이다.
건준의 각 부서와 위원(8월 17일 선출)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呂運亨, 부위원장 안재홍(安在鴻), 총무부 최근우(崔謹禹), 조직부 정백(鄭栢), 선전부 조동우(趙東祐) · 최용달(崔容達), 경무부 권태석(權泰錫), 재정부 이규갑(李奎甲). →건국동맹 · 인민공화국 · 조선인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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