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Gemeinde , Gemeine )
"최고의 공동(Gemeinschaft)이 최고의 자유이다"[『차이 논문』 2. 82]. 헤겔 철학은 이 말로 집약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겔 철학은 공동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기독교인 공동체와 시민 공동체"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헤겔의 경우 이 양자의 통일체야말로 참된 공동체이다.
청년 헤겔에 있어 Gemeinde는 기독교회와 교단이 아니라 예수를 중심으로 한 사랑의 집단이었다. 헤겔은 「작은 공동체, 조그마한 마을, 작은 가족」[『민중종교와 기독교』 1. 62]이라고 자그마한 기대를 담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배타성으로 인해 사랑의 집단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예수가 죽음에서, 감각적 현존재로부터 본래 그것이었던(gewesen) 자기반성적 본질태로서의 정신으로 되어 되살아날 때 공동체가 확립된다[『정신현상학』 3.566].
이 공동체는 이미 예수를 중심으로 한 사랑의 집단이 아니라 "정신의 나라"이다[『종교철학』 17. 217]. 내면성으로의 전환이 공동체 형성의 관건이다[같은 책 17. 302]. 감각적으로 보거나 들을 수 있는 예수는 대상의식의 대상이지만, 죽음에 의해서 예수는 보편적 자기의식의 대상이 된다[『정신현상학』 3. 572]. "이 보편적 자기의식은 자기 자신의 실체 안에서 휴식하고 있지만,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 실체 역시 이 보편적 자기의식 속에서 보편적 주체로 된다. 이 개별자는 자신만으로 그 완전한 전체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공동체의 의식과 하나로 될 때, 또한 그것이 공동체에 대해서 이러한 것일 때 그것은 그 완전한 전체인 것이다"[같은 책 3. 556]. 요컨대 기독교는 예수라는 개인의 행위에 의해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의해서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슈트라우스의 『예수의 생애』의 신화학설에 아주 가까이 놓여 있다. "보편적 신-인간, 즉 공동체"[같은 책 3. 574]라는 헤겔의 말도 슈트라우스에 의해서 〈누구나 신-인간〉이라고 고쳐 읽혀진다. 그러나 헤겔에 따르면 이 공동체는 아직 표상의 단계에 있으며,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고 있지 못하다[같은 책 3. 573]. 따라서 개념으로의 이행이 요구된다. 이리하여 공동체의 세 번째 단계는 "철학의 공동체"[『종교철학 강의(그리스하임)』 V5. 176]이다.
『법철학』에서의 Gemeinde는 직업단체라고 병기되며, 지방자치단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295, 299, 302절], 『법철학 강의』에서는 "Gemeinde는 좀더 많은 중간집단을 포괄한다"[그리스하임 621]는 식으로 추상적 전체로서 말해지는 곳도 있다. 편집자인 일팅은 "공동체(Gemeinde) 내부에 있는 특수한 중간집단으로서의 직업단체"라는 표제를 붙이고 있다. 덧붙여 말하면, Gemeinschaft는 공동태, Gemeinwesen은 그 실체,Gemeinde 내지 Gemeine는 위에서 말한 공동체이다. -시바타 다카유키(柴田隆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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