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신학] (Gefühlstheologie)
슐라이어마허의 철학은 감정신학이라고 불린다. 그의 『종교론, 종교 멸시자들 가운데 교양 있는 자들에게』(1799)는 계몽의 합리주의 측으로부터의 종교비판에 대해 "종교의 본질은 사유나 행위가 아니라 직관과 감정"이라는 입장에서 이것을 옹호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 후 그는 『기독교 신앙론』(1821, 22)에서 교단에 공통된 요소로서 경건심을 끄집어내고, 이것을 감정과 자기의식의 일정한 규정된 존재방식으로 삼아 절대적 의존성(schlechthinige Abhängigkeit)의 감정이라고 부른다.
헤겔에게도 종교가 심정(Herz)과 감각(Empfindung)의 사항이라는 점을 강조한 시대가 있었지만[『민중종교와 기독교』 1. 14, 17], 이미 『1800년 체계 단편』에서 슐라이어마허 비판이 보이며[1. 423], 나아가 『신앙과 지식』에서 헤겔은 그를 야코비적이고 프로테스탄트적인 주관주의의 '최고의 것'으로서 위치짓는 동시에 그 보편성과 민중성의 결여를 비판하기에 이른다.
『기독교 신앙론』과 같은 해에 헤겔 학도인 힌리히스의 『학에 대한 관계에서의 종교』가 출판되지만, 헤겔은 이것에 붙인 서문에서 격렬한 감정신학 비판을 전개한다. 감정은 인간이 동물과 공유하는 것이며, 오로지 이것만이 인간의 규정이 되는 것이라면 인간은 동물과 같게 된다. 만약 종교가 오로지 감정에만 기초하는 것이고, 그것이 의존감정이라는 규정만을 지니는 것이라면, 이와 같은 감정 속에서 살아가는 개가 가장 좋은 기독교인일 것이다. 또한 한 개의 뼈다귀로 빈 배를 채운 개는 구제감정을 지닐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의 것이 『종교철학』[16.117ff.]에서도 말해지고 있는데, 헤겔에 따르면 감정의 형식은 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내용을 지닐 수 있으며, 또한 신적인 내용도 이러한 형식만을 거처로 하여 거기에 머물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형식으로까지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우부카타 쓰구루(生方 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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