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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항쟁(舍北抗爭)] ()

I. 배경.

사북항쟁은 1980421일부터 24일까지 사북읍을 완전히 장악하고 임금인상과 어용노조퇴진 등을 요구하며 전개된 봉기에 가까운 총파업투쟁이다. 사북항쟁의 발생 배경은 동원탄좌의 비인간적인 착취와 노동조합의 어용성에 유신독재의 와해로 인한 전반적인 민주화요구가 결합됨으로써 사북 노동자들의 생존권요구와 작업장민주화 요구가 등장하게 된 데 있었다. 특히 1979124일 광산노련 전국지부장회의에서 42.75%의 임금인상안을 결정했으나 동원탄좌는 회사 측과 비밀리에 20%의 인상안에 합의한 것이 폭로되어 노동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서 기업주와 어용노조에 대한 투쟁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사북항쟁의 직접적 발단의 계기가 되었다.

 

. 경과.

421일 임금인상과 어용노조 퇴진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계엄 사령부에 의해 거부되면서 조합원총희를 요구하는 농성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경찰은 농성을 해산시키기 위해 농성장을 포위하기 시작했으며, 형사가 노동자로 위장하여 농성장에 투입되었으나 곧 발각되어 도망가는 와중에서 5명의 노동자를 차로 치었다.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사북읍으로 돌진하기 시작했고 어용노조와 기업관리들의 특권의 흔적들을 공격하기 시 작했다. 422일 새벽에는 방송기기를 점거하고 사북읍내로 가두시위를 벌이며 참가를 호소했다. 한편 경찰은 300여 명의 완전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진압작전에 나섰고 4천여 명의 노동자 및 부녀자들과 안경다리'에서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경찰은 노동자들의 거센 반격 앞에 무력하게 물러나기 시작했으며 오후 2시경 사북읍을 완전히 노동자의 해방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날 오후 정부는 대책위를 구성, 1차협상을 시작했으나 계속 협상하기로만 합의'하는 데 그쳤다. 423일 오후부터 2차협상이 시작되어 24일 오전 11개 항에 합의함으로써 파업은 종결되었다.

 

. 평가.

4일간에 걸친 사북항쟁은 엄청난 힘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상여금 150% 인상과 어용 노조위원장 이재기를 몰아내는 성과를 획득하는데 그쳤다. 주로 노조대의원들로 구성된 노동자 대표들이 충분한 사회의식이나 투쟁성을 갖추지 못했고 진정으로 민주적인 노동자 조직을 건설할 전망도 없었으며 4천여 명의 노동자와 부녀자들을 지도할 역량도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북항쟁은 유신독재 하에서 철저하게 억눌려왔던 노동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여 동원탄좌의 세 개 하청업체 천여 명이 직영과 하청의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파업을 시작했으며 일신제강, 인천제철, 대한광학, 일신산업, 동국제강, 부산파이프 등으로 들불처럼 파업이 번져나갔다. 그러나 5·17계엄령 전국확대 조치로 70여 명의 노동자, 부녀자들이 경찰과 군대에 의해 끌려가고 40여 명이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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