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낙연 (韓樂然, 1898~1947) (本)韓光宇] ()
(중공 당원, 화가)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1914년 용정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용정 길장도(吉長道) 해관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미술공부에 힘썼다. 용정에서 3·1운동에 참가했고 러시아 연해주에서 반백위군(反白衛軍) 전투에 참가했다. 1920년 가을 상해(上海)에서 전차회사, 인쇄공장 직공으로 일하면서 상해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23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고 1924년 1월 상해미술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미술활동에 종사하는 한편 손문주의(孫文主義) 혁명단체 계명학사(啓明學社)에 참여했다. 1925년 7월 하얼삔(哈爾賓)에서 보육학교(普育學校) 교사가 되었으며, 청년독서회·평민학교를 설립하여 학생과 노동자들 속에서 사회주의를 전파했다. 1928년 상해에서 지하당활동에 종사했다. 1929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리용에서 미술공부를 했다. 1931년 빠리 루브르예술학원에 입학했고 프랑스공산당에 입당하여 유럽 거주 중국인들의 항일운동에 참가했다. 1937년 7월 『빠리만보』 사진기자로서 일본의 중국침략을 폭로했다. 그해 중국으로 돌아가, 무한(武漢)에서 동북할일구국총회에 참가했다. 1938년 중국국민당 고급장교를 상대로 하는 통일전선사업에 종사했다. 1939년 4월 전지당정위원회(戰地黨政委員會) 소장(小將) 지도원이 되었다. 1940년 봄 국민당군대에 체포되어 서안(西安) 국민당 성당부(省黨府)에 수감되었다. 서안 특종구류소에 투옥중 소내 생활개선투쟁에 참가했다. 1943년 초 출옥했고, 이후 실크로드 소수민족의 민속과 석굴벽화 모사작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1945년 가을 신강(新疆)에서 실크로드 발굴사업에 참여했다. 1947년 7월 30일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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