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복(崔小福, 1911~?)] ()
(李載裕그룹 참가자) 경북 대구 출신으로, 대구공립보통학교 4학년 재학중 단식투쟁 사건으로 퇴학당했다. 1932년 1월 적색농민조합건설준비협의회 결성에 참여했다. 5월 서울에서 경성고등예비학교에 입학하고 1933년 졸업한 후 경성전기학교에 입학했다. 이 무렵 이현상(李鉉相)과 함께 학생층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후 이재유그룹에 참여하여 상부뜨로이까에 배속되었다. 그해 5~6월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와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관의 동맹휴교를 지도했다. 9월부터 12월경까지 「학생운동의 행동강령서」를 작성했다. 11월경 중앙고보, 배재고보 동맹휴교를 선동했고 이 무렵 반제동맹 결성에 참여했다. 1934년 1월 경기도경찰부에 검거되어 1935년 12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1937년 4월 서울에서 광고미술사를 개업했고 공산주의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여 총책임 및 노동부를 담당했다. 6월부터 왜관에서 독서회를 개최하여 농민운동 방침과 반전반제운동 방침에 대해서 토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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