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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의 민주주의 혁명] (Democratic revolution in Russia)

레닌 : 우리의 생각으로는 모든 혁명정부의 정치적 기치(旗幟)가 되며 당면강령이 되어야 할 것으로서 아래의 여섯 개 기본 조항을 들 수 있다. 이 기본적인 조항으로 혁명정부가 인민의 공감을 끌 수 있으리라 믿으며 가장 긴박한 문제로서의 이들 조항에 인민의 전 혁명적 에너지가 집중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에 드는 것이 그 여섯 개 조항이다. (1) 전 인민적 헌법제정 의회, (2) 인민의 무장, (3) 정치적 자유, (4) 억압되어 완전한 권리를 갖지 못한 민족에 대한 완전한 자유, (5) 하루 8시간의 노동, (6) 혁명적 농민위원회. 물론 이는 개요의 열거에 불과하며 민주적 공화제를 쟁취하는데 당장 필요한 일련의 개혁의 표제를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 빈틈없이 완벽한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어떤 종류의 기본적 임무가 중요하다는 자기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밝히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혁명정부가 하층인민, 즉 노동자계급과 농민대중에 의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혁명정부가 지탱될 수 없고, 인민의 혁명적인 자주활동이 없으면 혁명정부는 제로가 되고 제로이하가 된다. 우리의 일은 현재 참으로 실현되며 혁명사업의 확립에 참으로 필요한 여러 가지 계획을 추진함과 동시에 과장되고 어리석은 약속(말하고 있는 본인도 모르는 즉각적인 ‘사회화’ 따위)을 하는 모험주의를 인민에게 경고하는 일이다. 혁명정부는 ‘인민’을 궐기시키고 그들의 혁명적 적극성을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피압박민족의 완전한 자유, 즉 이들 민족의 문화적 자결만이 아니라 정치적 자결을 인정하는 것, 긴급히 노동자계급 보호책을 확보하는 것(이들 방책 중 첫 번째가 하루 8시간 노동제다), 마지막으로 지주의 탐욕을 고려치 않고 농민대중의 이익을 도모하는 참된 방책을 보장하는 것, 이상이 혁명정부가 특히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주요 조항이다. 노동자계급에게는 계급으로서 부르주아지에게 고유한 법이나 위선적인 어물적 거림이 없다. 노동자계급은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고 또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계급은 페테르부르그ㆍ리가ㆍ리바우ㆍ바르샤바ㆍ롯지ㆍ오데사ㆍ바쿠 등 많은 도시의 가두에서 선혈을 홀려 민주주의혁명의 전위역할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입증했다. 노동자계급은 지금 맞고 있는 결정적 순간 에도 이 위대한 역할에 견디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상한 대표자인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당원은 자신의 사회민주적 목표, 자신의 계급적 독자성과 당적 독자성을 잊지 말고 선진적ㆍ민주주의적인 슬로우건을 내걸고 전 인민 앞으로 나서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있어서 민주주의적 변혁은 모든 착취로부터 노동의 완전한 해방으로, 사회주의의 위대한 목표로의 제1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 제1단계를 통과하고, 될 수 있는대로 빨리, 결정적으로 인민의 자유의 적과 손을 끊고,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소리높이, 철두철미하게 민주주의의 슬로우건 —— 혁명군과 혁명정부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혁명군과 혁명정부, 1905, 레닌전집 제8권, p.577).
오늘날의 러시아에서 혁명외 내용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은 서로 투쟁하는 2개의 세력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두 가지 사회전쟁이다. 하나는 오늘날의 전제적(專制的)=농노제(農奴制)인 내부에서의 전쟁이고 또 하나는 미래의, 이미 우리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 내부에서의 전쟁이다. 하나는 민주주의를 위한, 즉 인민전제(人民專制)를 위한 전 인민적 투쟁이고 또 하나는 사회주의적 사회조직을 위 한,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에게는 고통스럽고 곤란한 임무가 부과되어 있다. 즉 성격, 목표 그리고 각 전쟁에 단호히 참가하는 능력있는 사회세력의 구성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전쟁을 동시에 치러야 한다는 임무이다. 이 곤란한 임무를 사회민주당은 분명하게 제기하고 거기에 대해 확고한 해답을 부여했다.……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ㆍ민주주의적 임무와 사회주의적 임무라는 기준에서 추호라도 일탈한 문제에 대해서 사회민주당은 끈질기게 투쟁해야 한다. 오늘날 혁명의 민주주의적 성격, 즉 이 혁명의 기초를 감안한다면 부르주아적 성격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따라서 혁명적 코뮨의 수립이라는 슬로우건을 내거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주의 혁명에의 참가, 그것도 지도적인 참가를 멸시하는, 가령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ㆍ민주주의적 독재라는 슬로우건을 피하는 것은 어리석고 반동적인 짓이다. 민주주의혁명의 임무 및 조건과 사회주의혁명의 임무 및 조건을 혼동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이 두 가지 학명은 성격'이라는 점에서도 거기에 참가하는 사회세력의 구성이라는 점에서도 종류가 다른 것이다. (사회주의와 농민, 1905, 레닌전집 제9권, pp.322〜324).

스탈린 : 농민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사적소유제 폐지를 바라는 범위 안에서만 프롤레타리아트를 지지한다. 또한 농민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전제정치를 타도하는 범위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지지한다는 것도 똑같이 분명하다. 현재의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다. 즉 사적소유를 건드리지 않는 탓으로 농민이 현재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무기를 돌릴 이유란 전혀 없다. 반대로 현재의 혁명은 츠아의 권력을 근본적으로 부인한다. 따라서 농민의 이익은 혁명의 전위세력인 프롤레타리아트를 단호히 지원해야 획득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도 농민을 지지하고 농민과 더불어 공통의 적인 츠아 정부에 반대함으로써 획득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위대한 엥겔스가 민주주의 혁명이 승리 할 때까지 프롤레타리아트는 소부르주아지 와 함께 현존제도에 반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혁명의 적을 완전히 제압할 때까지 우리의 승리는 승리가 아니므로 적을 제압하기 위해 인민을 무장시켜 승리를 완성시키는 일이 임시정부의 의무라고 한다면——임시정부에 소부르주아지 이익의 옹호자와 프롤레타리아트 이익의 옹호자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자도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의 지도자로 행동하면서 혁명을 끝까지 수행하는 것을 소부르주아에게만 맡긴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배반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적소유의 적인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기 자신의 정당을 구성해야만 하며 한순간이라도 자기의 길 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 (임시혁명정부와 사회민주당, 1905, 스탈린전집 제1권, p. 167).

로자 룩셈부르크 : 3개의 부르주아혁명. 즉 프랑스혁명, 독일3월 혁명(1848), 현재의 러시아혁명은 다음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의 하나의 세기적 변천도(變遷圖) 로서 계속적 발전의 한 고리를 형성한다. 프랑스혁명의 경우 부르주아사회의 내적 모순이 아직 격화되지 않았던 탓으로 장기간에 걸쳐 격렬한 투쟁이 행해질 여지가 있었다. 이 투쟁에서는 혁명의 열광 속에서 비로소 싹트고 성숙해온 모든 대립이 압살(壓殺)되지도 방해(妨害)받지도 않고 극히 급진적으로 자유분방하게 맹위를 떨쳤던 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 자본주의 발전도상에서 폭발한 독일의 부르주아혁명은 자본과 노동의 이해대립과 힘의 균형에 저지되고 미구에 부르주아계급이 봉건세력과 타협한 탓으로 질식해버리고 말았다. 결국 이것은 할 말을 입에 머금은 채 짧고 비참한 에피소드로 끝나 버렸다. 다시 또 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러시아 혁명을 역사적으로 보면 이미 자본주의사회의 고개를 넘어 정상을 지난 지점에 서 있다. 이 지점 에서는 부르주아혁명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와의 대립 때문에 질식해 버릴 일이란 이제 있을 수 없다. 반대로 여기서부터 치열한 사회투쟁이 장기간 계속되는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주의에 대한 낡은 계산의 지불 따위는 혁명 그 자체에서 생긴 여러 개의 새로운 계산과 비교 할 때 너무 미미한 것으로 보여진다. 오늘의 러시아혁명은 이처럼 절대주의 러시아의 특수한 문제 속에서, 동시에 인터내셔널한 자본주의 발전으로부터 유래한 일반적인 제 문제를 실현하고 있으며 낡은 부르주아혁명의 마지막 계승자라기보다 오히려 서유럽에서 이제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선구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부르주아혁명이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늦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낙후된 이 나라가 독일이나 기타 가장 앞선 자본주의 제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이제부터의 계급투쟁의 도리와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대중스트라이크・당 및 노동조합, 1906, 로자 룩셈부르크선집 제2권, PP. 241〜242).
이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러시아혁명은 그것이 바로 부르주아적인 과제를 젊어진 프롤레타리아혁명, 혹은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프롤레타리아적・사회주의적 투쟁수단에 의한 부르주아혁명이며 번개와 천둥소리 밑에 서의 두 시대의 충돌로서 러시아에서의 계급적 제 관계의 늦은 발전과 서유럽에서의 계급적 제 관계의 과열에 의한 결과였기 때문에 좌절된 것이다. 그렇다면 1906년의 패배가 혁명의 파산이 아니라 단지 제1장의 자연스러운 종식에 불과하며 자연법칙의 필연성에 따라 다음 장이 계속되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원인이 있다면, 그것은 외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그 이유는 서유럽에 있었다. 유럽의 반동이 궁지에 몰린 그 피보호자를 돕기 위해 달려갔다는 것이다. (사회민주당의 위기, 1915, 로자 룩셈부르크선집, 제3권,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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