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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두환(孫斗煥, 1895~?) 笑公 孫建] ()

(임정 경무국장) 황해도 은율 출신으로, 1916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에 재학중 상해(上海)로 망명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뒤 임시의정원 의원과 군법국장을 맡았다. 준비론에 입각한 임정의 운동노선과 임시의정원의 운영실태를 비판하고 사회주의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론을 주장했다. 1920년 상해에서 사회주의연구회를 조직했다. 반(反)독립운동자를 색출하여 제거하기 위해 소독단(消毒團)을 조직하고 단장을 맡았다. 1922년 12월 상해에 거주하는 교민들의 친목 도모를 위해 한인구락부를 조직했고 1924년 12월 임정 경무국장에 선임되었다. 1925년경 광주(廣州)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1926년 유월(留粤) 한국혁명동지회 회장을 맡아 의열단(義烈團) 단원의 황포군관학교(黃補軍官學校) 입학을 지원했다. 1927년 황포군관학교 교본부 부관으로 재직하다가 4월 장개석(蔣介石)의 반공쿠데타를 계기로 모스끄바로 유학을 떠났다. 제1차 국공합작 분열 때 장개석을 지지함으로써 소련에서 추방되었다.
(민혁당 중앙집행위원) 1933년 12월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에 위치한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제7분교에 한인특별반이 설치되자 입학생 모집활동, 특무활동을 지원했다. 1936년 여름 남경한족회(南京韓族會) 회원으로서 통일전선운동에 진력했다. 1937년 12월 조선민족전선연맹 이사를 맡고 1938년 1월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쪽과의 통일전선을 이루기 위한 교섭대표가 되었다. 1943년 2월 중경(重慶)에서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과 선전부장에 선임되었다. 민혁당이 임정에 참여하면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뽑혔으며 ‘한국광복군 9개 행동준승’의 수정을 촉구하기 위한 특종위원, 민혁당 원내당단주임(院內黨團主任)으로 선임되었다. 1944년 임시의정원 의원, 선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근로인민당 중앙감찰위원장) 1945년 귀국한 후 신한민주당에 참여했다. 1947년 5월 근로인민당에 참여해 중앙감찰위원장을 지냈다. 여운형(呂運亨), 김규식(金奎植) 등과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여 좌우합작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2월 민족자주연맹 정치위원이 되었다.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했고 8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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