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선규(朱善奎, 1908~?)] ()
(흥남좌익 자유노동자부 책임) 함남 함흥 출신으로,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가 중퇴했다. 1931년 10월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 노동자가 되어 이 공장을 중심으로 한 적색노동조합운동에 참여했다. 1932년 3월 프로핀테른에서 파견된 박세영(朴世榮)의 지도 아래 열린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대표자회에 참가하고, 이 회의에서 결성된 흥남좌익의 자유노동지부 책임자가 되었다. 4월 흥남좌익의 기관지 「노동자신문」 및 메이데이 격문을 각지에 배포했다. ‘제2차 태평양노동조합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934년 10월 함흥지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해방 후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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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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