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 의견바로가기

[오하묵(吳夏默, 1895~1936)] ()

(자유시한인보병대대 사령관) 러시아 연해주 니꼴리스끄 · 우수리스끄 뽀셰뜨 구역 빠따쉬 마을에서 태어났다. 러시아 중등학교(김나지움)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소학교 교원이 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러시아군대에 징집되어 이르꾸쯔끄 사관양성소에 입학했다. 졸업 후 소위 후보생으로 임관했다. 1917년 2월혁명 당시 전선에서 연대쏘비에뜨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러시아군 대대장으로 복무중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이등대위 계급으로 제대하여 하바로프스끄로 귀환했다. 1918년 9월 하바로프스끄가 백위파(白衛派) 깔미꼬프에게 점령당한 뒤 아무르주로 이주했다. 1920년 4월 아무르주 자유시에서 조직된 자유시한인보병대대의 참모부 성원이 되었다. 그해 여름 부대와 함께 블라고베셴스끄로이동했다. 그곳에서 러시아공산당에 입당했다. 8월 자유시한인보병대대의 사령관이 되었다.
(고려혁명군 사령관) 1921년 6월 노령(露領) 및 만주의 조선인 반일무장부대들을 단일한 대부대로 편성하기 위하여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와 고려공산당(이르꾸쯔끄파)의 지도 아래 조직된 고려혁명군정의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자유시사변 당시 고려혁명군 부사령관을 지냈다. 8월 고려혁명군이 소련군 제5군단에 편입되어 고려특립여단으로 개편되면서 사령관이 되었다. 1922년 8월 고려혁명군 중앙정청 조직에 참여하여 군인징모위원장이 되었다. 그해 가을 모스끄바에서 고급군관학교 속성과에 입학했다. 레닌그라드 국제사관학교 고려과 창설 책임자가 되었고 이후 모스끄바 프룬제육군대학을 졸업했다. 소련군 대령으로 진급했고 우랄군구 산하연대장 ․ 사단장이 되었다. 1936년 스딸린의 대숙청 때 처형되었다.
■ 인접어

오중화(吳仲華, 1899~1933) 吳仲和 吳錫和
오중흡(吳仲洽, 1910~39)
오진우(吳振宇, 1917~95)
오창호(吳昌浩, 1908~?)
오치직(吳致稷, 1909~?)
오하묵(吳夏默, 1895~1936)
오하묵(吳夏默, 1895~1936)
오희선(吳羲善, 1889~?) 吳義善 禹丹宇
온낙중(溫樂中, 1901~?)
온창겸(溫昌謙, 1899~?)
왕극강(王克强, 1912~50) (本)金昌奎

뒤로
■ 의견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모바일버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