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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봉(金枓奉, 1889~1961) (號)白淵 帛連]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서울로 올라와 기호학교(幾湖學校)와 배재학교에 다녔다. 1913년 대동청년단에 가입했고, 1914년 배재학교를 중퇴했다. 이 무렵 조선광문회(朝 鮮光文會)에 참여하여 소년잡지 『청춘』을 편집했으며, 민족종교인 대종교(大倧敎)에 가담했다. 주시경(周時經)의 지도하에 한글 연구에 몰두하고 1916년 광문사에서 발행한 『말모이』 편찬에 참여했다. 1917년 보성고등보통학교, 휘문고보, 중앙고보에 시간강사로 나갔다. 서울에서 3 ․ 1운동에 참여했다가 1919년 4월 신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망명했다. 상해(上海)에서 신채호(申采浩)가 주필로 있던 순한문신문 『신대한신문(新大韓新聞)』 편집을 맡았다. 이 무렵 신한청년당에 가담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1922년 상해에서『깁더조선말본[精解朝鮮語文典]』을 출간했다. 1924년 상해교민단 학무위원장으로 선출되어 교민자녀 교육기관인 인성학교(仁成學校)에서 국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1928년 11월 이후 인성학교 교장(1928. 11~1932. 9, 1933)을 지냈다.
(독립동맹 주석) 1928년 대한독립당촉성회에 참여했고, 1930년 1월 상해에서 한국독립당 결성에 참여하고 이사가 되었다. 1935년 7월 조선민족혁명당 결성에 참여하고 중앙집행위원 겸 조직부장에 취임했다. 1937년 말 남경(南 京)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자 중경(重慶)으로 옮아가 민혁당과 행동을 같이했다. 1940년 민혁당 중앙위원 겸 조선의용대 편집위원이 되었다. 1941년 여름 화북(華北) 팔로군(八路軍) 근거지로 이동하는 조선의용대 주력부대에 동참했다. 1942년 4월 태항산(太行山) 팔로군 근거지에 도착해서 5월 태항산 반소탕전에 참여했다. 7월 태항산에서 개최된 화북조선독립동맹 창립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 겸 주석에 취임했다. 1944년 4월 연안(延安)에서 조선혁명청년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1945년 2월 이 학교를 조선혁명군정학교로 개편하고 교장이 되었다.
(북로당 위원장) 1945년 12월 귀국하여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에 취임했다. 3월 조선신민당 위원장이 되었다. 8월 조선신민당과 북조선공산당을 통합하여 북조선 노동당을 결성하고 위원장에 취임했다. 이후 김일성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임위원장, 조국전선 의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3월 종파분자로 지목되어 축출되었다.
■ 인접어

김동필(金東弼, 1908~36)
김동한(金東漢, 1893~1937)
김동혁(金東爀, 1892~?) 金東赫 晩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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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봉(金枓奉, 1889~1961) (號)白淵 帛連
김두봉(金枓奉, 1889~1961) (號)白淵 帛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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