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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사회] (tribal society)

비록 마르크스(특히 모건의《고대사회》에 대한 그의 주석에서 ;→Krader 1972)와 엥겔스(《가족의 기원》에서)가 때때로 '부족'이나 '부족적'이라는 개념들을 사용하고는 있었지만, 이들은 '종족사회'를 분명한 사회 유형으로 정의하거나 분석하지는 않았다. 엥겔스(앞의 책, 1장)는 야만 시대에서 미개 시대로 그리고 다시 문명 시대로 진행하는 선사 시대의 문화발전 단계에 대한 그의 개념을 통하여 '원시적 인간의 역사에 일정한 질서를 도입하려는' 모건의 시도를 크게 중요시했다. 엥겔스는 모건의 이와 같은 이론이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과 전적으로 일치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보다 체계적인 인류학적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었던(Krader, 1972)1879∼82년 사이의 그의 노트에, 모건뿐만 아니라 메에느[Maine], 루보크[Lubbock], 코발레프스키[Kovalevsky] 등의 저서들에 주를 다는 등 초기 사회의 역사적 발전과 관계된 내용들을 적고 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계급 분화와 국가의 출현―다양한 형태의 '원시사회'에 있어서―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
현대적 학문분과로서의 인류학에서는‘부족적’이라는 개념이‘원시적’이라는 개념과 같이 극히 모호하게 쓰여지고 있다. 비록 크레버(1948)가 '부족'이라는 개념을 북아메리카의 원주민 사회 형성의 기반으로서 최초로 이의를 제기했다고는 하나, 그의 이러한 이의 제기는 프리드[Fried](1966)가 토착사회 일반을 언급하는 단어의 사용에 반대하기 시작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두 학자는 부족―도시국가의 이론과 실제에 나타나는 것처럼―을 식민지적 맥락에서 다양하고 정치적 자율성이 인정되는 집단에 강요된 통치 단위라고 주장했다. 리코크(1983)는 계급적으로 구성된 정치 집단으로서의 '부족'을 어떤 지역을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노력에 대항하여 그 지역을 기필코 수호하려는 내적 대응일 수 있다고 부언했다.
최근에 와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연구는 개념적인 문제(Godelier 1973)와 역사적, 정치적 현실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만약에 지배 엘리트와 맺고 있는 일종의 부족적 관계에 포함될 수도 있는, 형식적으로 평등한 집단으로 구성된 정치적 계층 구조를 고찰할 때(또는 만약에 그러한 엘리트들이 선출된 부족이 유사한 방식으로 내적 분열을 겪어 왔을 때) '부족'이라는 개념이 원시적 국가라는(디아몬드의 개념을 사용하여, 1983) 맥락에서 사용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렇게 볼 때 '부족국가'라는 용어는 부가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반면에 만약 '부족'이라는 지칭이 평등하고 계급없는 원시사회에 쓰인다면 범주적 모호성이 분명해진다. '평등'이라는 용어는 지위나 신분, 또는 세대 간 상하 질서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경제적 착취의 부재를 의미할 분이라는 점이 지적되어야만 하겠다. '부족'이라는 개념은, '민간(民間)'이라는 개념이나 또는 '전통적'이거나 '개화되지 않은'과 같은 모호한 표현들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파벌적이고 내성적이며 지나치게 자기 보호적인 단위의 형상은 고도의 문화와 비문화, 즉 정교하지 못하고 기술적으로도 '열등한'사회 사이의 갈등에서 생겨났다. 이러한 자기 부족 중심의 기준은 부족국가들과, 국가가 없는 부족사회간의 분리를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 될 것은 국가가 없는 부족사회에서의 자체 내의 사회적인 단결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직접적 내지는 간접적인 제국주의적 침입에 의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부차적인 분석이 초기의 부족사회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부족'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의미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실제로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재정의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 고들리에(앞에서 인용한 책, pp.93∼6)는 좀더 근본적인 이론적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그러한 사회가 출현하는 형태에는 주의를 덜 기울일 것이며 그러한 사회 내부에서의 다양한 생산양식의 작용을 더욱 적극적으로 분석하게 될 것이다. '부족'은 역사적으로 출현했던 다양한 유형의 정적인 사회 구성체(아시아적, 고대적, 봉건적, 자본주의적, 사회주의적)와 관련시켜 사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국가 형태가 나타나지 않았거나 또는 원시적인 사회와 관련해서 그 용어를 폐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명칭의 공유, 공통의 언어와 문화, 촌락의 친목의 영역과 일치하는 결혼의 영역 등에 기초하여 서로의 전통적 관계를 인정하며 초(超)촌락적인 종교적 권위를 인정할 수 있는 여러 촌락으로 이루어진, 예를 들어 북중앙 나이지리아에 있는 원예재배를 근간으로 하는 원시사회 등에는 '부족'이라는 정의가 적절하다. 그러한 사회는 계급이 없으며, 여기서 혈연적 혹은 준혈연적 결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기능은 시민적 구조도, 시민적 귄위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사회를 구성하는 촌락들은 자율적이기는 하지만 서로 연계를 맺고 있다. 그 촌락들은 비착취적 구조 속에서 다른 촌락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내부적으로도 평등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협동 노동 단위와 군사 혹은 수렵 편성 단위는 '부족적'맥락에서 여러 마을들을 함께 연결시킨다. '부족'내에서 두드러진 문화적 유대는 확고한 부족적 구조없이도 존재하며 상당한 지역을 점하고 있는 많은 종족들을 포함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집단의 한 예로서 동부 나이지리아에 살고 있는, 이보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집단은 원초적인 단계의 민족성으로 고려될 수 있다. 어떤 일정한 반경을 넘어서면 이러한 문화적 동일성은, 정치적 유대 혹은 광범위한 관습이나 상거래 관계의 부재로 말미암아 그 종족들이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부족사회는 기본적 성격상 원시사회이다. '부족'이라는 용어가 제국주의 침입에 대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행해지는 '이차적 대응'과 관련되어 주격으로 사용될 때, 이 용어는 토착집단 간의 상호 협력을 반영한다. '부족'이라는 용어가 형용사로 사용될 때 이 용어는 원시적 특징이 남아있는 집단(이것 역시 원시사회이다)이나 초기의 국가에 관한 언급일 수도 있다. 물론 초기국가에서의 원시적 특징들이 변화하기는 하겠지만, 외래의 전일적인 시민적 연합이 계급이나 또는 정해진 사회 신분인 그 지역에서 유지된다. 이러쿼이족[Iroquoir]은 '부족'의 실례이고 다호메이족[Dahomey]은 '부족국가'의 실례이며, 부시멘족[Bushmen]은 '부족적' 집단사회의 실례이다. 마르크스 자신은 부족국가 유형의 사회 형태를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일반적 규정에 포함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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