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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슈타인] (Bernstein, Eduard)

1850년 1월 6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1932년 12월 베를린에서 사망하였다. 유대계 기관사의 아들이었던 베른슈타인은 1866년부터 1878년까지 은행에서 근무하였다. 그는 1871년에 독일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에 가입하였고, 그가 1880년에 만났던 마르크스와 특히 엥겔스의 영향으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1881년부터 1890년까지 그는, 처음에는 취리히에서, 그 후에는 1880년부터 독일로 귀환하던 1901년까지 그가 살던 런던에서, 당 기관지《사회민주주의》(비스마르크의 反사회주의법 아래에서는 비합법적이었던)를 편집하였다. 그는 런던에서 엥겔스의 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엥겔스는 베른슈타인을 자신의 집필 대행자로 삼았다. 동시에 베른슈타인은 페비언주의자들과도 교제를 하였으며 그들의 영향도 받았다.
1896년부터 1898년까지 베른슈타인은《신시대》에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마르크스주의가 안고 있는 시대착오적이고 독단적이며 비과학적인 불분명한 요소들을 수정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을 방기하였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기도 했다. 1899년에 그는 고전적 수정주의의 주요 논문인《사회주의의 前提》에서 가장 포괄적인 형태로 자신의 생각들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궁핍화 이론뿐만 아니라 산업의 집중화와 첨예한 경제 위기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예견을 공박하였다. '자본의 착취적 경향에 대한… 사회적 대응' 은 '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 경제 생활의 많은 부문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는 '파멸적 충돌'에 반대하며 노동계급에 의한 점진적 향상'의 전망을 역설하였다. 노동계급에 의한 정치권력의 장악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및 경제적 권리의 확대를 수반하며, 그것은 점진적으로‘국가를 민주적 방향으로 변형시킨다'. 그는 폭력적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사회민주당에 '사실상의 현 상태, 즉 민주적이고 사회주의적인 개량 정당으로 보일 것'을 호소하였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운동은 모든 것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사회주의의 궁극적 목표”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썼다. 계속된 당 회의에서 베른슈타인의 관점이 비판되었지만, 그는 1902∼1906년, 1912∼1918년, 그리고 1920∼1928년에는 제국 의회의 독일 사회민주당 의원으로 있었다. 그 후의 저서와 강연에서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 대한 비판의 폭을 넓히고, 윤리적 근거에 기초한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신칸트파의 입장을 취하였다.
1차 대전 동안에 그는 평화협정의 체결을 요구하였으며 1915년 12월에는 전쟁공채 발행에 부표를 던졌다. 사회민주당을 떠난 후 그는 1917년에 좀더 좌파에 속하는 독립사회당(USPD)에 입당하였다. 전쟁 후 사회민주당에 재입당하고 1920∼21년에는 당 강령을 입안하는 데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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