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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 (Trotsky, Leon)

1879년 11월 7일(蘇曆으로는 10월 26일)에 우크라이나의 야노브카에서 태어나 1940년 8월 20일에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사망하였다. '트로츠키'라는 필명의 리오프 다비도비치 브론스타인[Lyov Davidovich Bronstein]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의 일원이었고, 1905년과 1917년 10월의 러시아 혁명에서 탁월한 역할을 하였으며, 1918년에는 외무부 인민위원을 지냈고 1918∼25년에는 육·해군의 인민위원을 지냈다. 1923년부터 그는 소비에트 관료정치에 의한 혁명의 '배반'에 대항하는 저항운동을 펼쳤다. 1929년 스탈린에 의해 러시아로부터 추방된 그는 스탈린주의에 반대하는 제4 인터내셔날(→인터내셔날)을 조직하였다. 그는 파시즘과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코민테른의 정책을 비판하던 중 스탈린이 보낸 암살범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트로츠키가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기여한 가장 커다란 공헌은 '불균등 결합 발전론'과 그것에서 유추된 '영구 혁명론'이다. 후진국은 선진국이 이미 거쳐간 단계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단계들을 단축하거나 뛰어넘음으로써 후진성을 탈피할 수 있다. 그것은 후진성의 특징과 선진적 발전단계의 특징을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 수준에서 결합시킨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서구유럽이나 북아메리카의 선진 자본주의 중심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천적인 정치적 결과는 일반적으로 선진 산업의 도입이 식민지적 방식이나 반(半)식민지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식민주의), 이것에 영향을 받은 국가는 토착 부르조아지들보다 더 강력한 부르조아지 혁명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제는 봉건적 잔재(→봉건사회)를 일소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착수되는 혁명을 통해 전자본주의적 저차원의 질서를 사회주의의 방향으로 이끄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과된다. '영구 혁명'이라는 표현은 1850년 공산주의 동맹 전체회의에서 행한 연설에서 차용한 것이다.
승리한 프롤레타리아는 다른 나라, 특히 선진국에 있어서의 혁명을 촉진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은 일국(一國), 특히 극복되어야 할 실제적인 전자본주의적 관계의 요인을 지니고 있는 (러시아와 같은) 한 나라에 국한해서는 더 이상 진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라들에서 혁명을 용이하게 했던 바로 그 조건들이 또한 사회주의적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다. '영구 혁명론'은 자본주의적 발전이 지체되고 있는 시기에는 부르조아지나 또는 대리인으로 작용하는 일부 사회세력들(예를 들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독재')의 연합이 지배할 반봉건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였다.(→레닌 ; 레닌주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레닌이 1917년 4월에 트로츠키의 개념을 채택하여 그것을 10월 혁명에서 실천에 옮겼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이 '일국 사회주의론'을 주장하였을 때 트로츠키는 이러한 생각이 러시아에서는 매우 불행한 모험(시기상조인 농업의 집단화)이며 공산주의 인터내셔날을 비혁명적인 러시아 외교정책의 단순한 도구로 전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산업을 발전시켜야 하고 사회를 전반적으로 근대화해야 하지만 그러한 성과들이 사회주의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사회주의는 향상된 생활수준에 산업화를 더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최고 단계의 선진 자본주의 사회보다 높은 노동 생산성과 여기에 근거한 높은 생활수준을 지닌 사회로 이해되고 있다. 이것은 세계 경제의 '지휘탑' 위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의 장악을 전제로 한다. 트로츠키는 스탈린 체제 하의 러시아 사회질서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과도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것은 러시아의 사회질서가 사회주의를 향하여 발전할 수도 있고 (이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의 혁명에 러시아의 보조적 정치혁명이 덧붙여질 것을 요구한다.) 자본주의로 퇴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배적인 관료주의는 '새로운 계급'이 아닌 기생적인 변태적 생성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소비에트 사회는 '국가 자본주의'가 아니라 '타락한 노동자국가'로 간주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10월 혁명의 몇 가지 근본적인 소득은 여전히 존속한다. 그러므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혁명가들은 어느 곳에서든 소련을 방어해야 한다.
트로츠키 사상의 특징은 모든 문제에 해결책을 제공하는 보편적 체계로서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는 잘못된 주장들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는 '군사 과학'의 영역에서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으로 과학적 탐구 및 예술과 문학을 한 방향으로 종속시키려는 시도에 대항해 투쟁하였으며 '프롤레타리아 문화'라는 개념에 조소를 보냈다. 그는 정치에서 비합리적인 요소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치나 최소한 민족적인 문제와 관련 있는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합리적으로 사고할 필요는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전통에서 교양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그는 많은 적을 만들었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는 편협과 무지를 환상적인 주장을 하는 경향과 결합시키는 것이며, 마르크스가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을 비난하는 식이었다.
만약에 그가 오늘날까지 살아있었다면 자신이 창시한 운동의 극단적인 분열을 보고 자신은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한 분파의 어떤 집단들은 그의 이름을 남용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이후 트로츠키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조직들이 몇몇의 나라에서 영향력을 확보하였으며, 트로츠키의 저작들은 그가 살아있을 때 보다 더욱 많이 유포되고 있다.(→트로츠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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