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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헤겔파 ] (Young Hegelians)

청년 헤겔파 혹은 헤겔 좌파는 1830년대 후반에서 1840년대 초까지 독일에서 다소 무정형의 학파로 형성된 급진적 헤겔학도들이다.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지역에 한해서 오로지 종교적인 문제에만 몰두했다. 청년 헤겔주의자들의 순수하게 정치에 관련된 논문의 발표는 프레드릭 윌리엄 4세의 즉위와, 그에 따른 검열제도의 완화로 짧은 기간 동안 신문에 선전할 길이 열렸던 1840년대에 가서야 가능하였다. 약 3년 후 정부 통제가 다시 강화되자 그들의 운동은 종말을 고했다.
원래 청년 헤겔주의자는 철학도였고 종교와 정치에 대한 접근은 흔히 사색적 이성주의라고 불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낭만적이고 동시에 이상주의적인 요소에 계몽주의의 날카롭고 비판적인 경향과 프랑스 혁명의 원리에 대한 숭배를 첨가했다. 그들은 이성을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으로 신봉했으며 이성의 선구자가 되는 것이 자기들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헤겔처럼 그들 역시 그 과정은 궁극적인 통일성을 획득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궁극적인 분열에 의해 선도되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남긴 약간의 저작들이 대단한 묵시록적 고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것은 최후의 결렬을 비판함으로써 분열을 강요하고 따라서 결정을 촉구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청년 헤겔주의자들은 초기 마르크스의 이념 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청년 헤겔주의자들 중 가장 탁월했던 브루노 바우어로부터 마르크스는 정치와 경제에 대한 자신의 초기 분석 모델로 제공받은 종교에 대한 바우어의 신랄한 비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포이에르바하에게서 헤겔철학의 체계적 변형과 헤겔이념의 지고(至高)함에 대한 거부를 포함한 급진적 휴머니즘을 이어받았다. 최고의 이기주의자였고, 모든 청년 헤겔파 중 가장 부정적이었던 슈티르너는 마르크스로 하여금 다소 정적인 포이에르바하의 휴머니즘을 뛰어넘게 하였다. 끝으로 독일에서 최초의 공산주의 이념의 선전가였던 헤쓰는 급진이념을 경제학에 적용할 것을 재창하였다. 그러나 1840년대 중반에 이르러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 포함되어 있는 청년 헤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포함하는 역사의 유물론적 개념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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