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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 獨ㆍ英 : Interpretation, 佛 : Interprétation ))


1) 명칭

해석이란『후한서』진(陳)원년에 “解釋先聖之積結”이라고 쓰인 예에서도 분명히 하였듯이, “해명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오래된 단어이다. 그것은 중불사전(中佛辭典)에서 사용되는 뜻풀이들과 함께 고전적 문헌이 의미를 나타내주므로, 그것을 알려고 하는 우리들에게 다리를 놓아주는 주해(註解)와 같은 것으로 구상화되어 있다. 이렇게 알려진 것과 아는 것 사이의 매개기능이라는 성질상의 유사성으로부터, 오늘날 ‘해석’이라는 말은 서양의 학술용어인 ‘interpretation'에 대응하는 번역어로 되어 있다.
그런데 서양의 근대적 용어인 ‘interpretation은 말할 것도 없이 라틴어 ‘interpretation 에서 유래하는 것인데 이것은 키케로와 퀸틸리아누스가 사용한 예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1)고전의 핵심이나 주해, (2)법령을 특수한 사건에 적용하는 이유에 대한 해명, (3)번역(그리스 고전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것). 그런데 이러한 세 가지 계기만이 아니라, 신적 언어를 인간적 언어로 번역하는 것인 지적 창조, 또한 이렇게 하여 창조된 작품을 음미하고 낭독하는 활동, 나아가 올바른 향유에 의한 예술체험의 지적 구성 등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그리스어인 헤르메네이아(ἐρηνεὶα)이고, 오늘날의 학술상 용어로는 ’해석‘(interpretation)이라고 쓰이며, 그 방법론적 반성으로서의 해석학은 Hermeneutik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2) 해석 및 해석학의 역사

서양 미학사에서 해석의 역사적 원류를 이루는 것은 그리스 철학, 라틴 문인의 활동, 그리스도교 및 유태교의 성서학,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에서 시작된 문헌학 등이다. 그리스 철학에서 해석은 플라톤의 신적 이데아와 인간적 지성 사이를 오르내리는 운동인 창조와 향유,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적 명제 해석이라는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플라톤도 법률명제에 대한 해석이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비극의 해석(『시학』)도 있지만, 이것이 상술한 두 개의 커다란 경향의 존재를 부정할 정도는 아니다. 이 경향들은 한편으로는 이념의 사물적 번역이라는 창조로서의 해석 및 작품으로부터 이념으로의 의미적 상승이라는 향수로서 해석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표현의 일반적 법칙과 상관관계를 갖는 해석이다. 어찌하였든 어느 쪽에서 보든지 간에 해석이 언어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또한 양자가 모드 진ㆍ선ㆍ미라는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스의 이러한 해석론은 키케로를 비롯한 많은 라틴 문인에게는 현실에서 가치를 갖는 것이 거론되고 있는 그리스 고전과 그것을 번역하는 라틴어와의 관계로 구체화되었다. 즉, 해석의 위상은 그리스에서 이념 대 현실이라는 수직관계로부터 동일한 인간이 영위하는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수평관계로 전환되었다.
이 두 개의 방위를 기묘하게도 하나로 집약시킨 형식을 취하는 것이 바로 성서해석〔그리스도교에서는 exegesis, 유태교에서는 midrasch〕이다. 이것은 그 자신 내부에서 수직방위(方位)를 세워둔 성서에 대해, 때와 장소를 떠난 외적 문서로서 대결하는 것이다. 이 때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속한 오리게네스(Origene, 185(?)~254(?))와 뉘옷사의 그레고리오스 (Gregorios, 335~94)는, 비록 신의 말씀인 성서일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언어로 쓰인 문서이기 때문에, 우선 문법적ㆍ문헌 실증적으로 수평적 이해를 확립하고, 그 다음에 상징적 이해를 매개하여 수직성을 회복시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시편 강좌』(Enarrationis in psalmos)등도 이 방법에 따른 것이며, 그 대체적인 순서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교의론』(Dedoctorina Christiana)에 전개되어 있다. 여기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서 해석에서 언어학ㆍ문헌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적어도 헤브라이어ㆍ그리스어ㆍ라틴어 등 3개 국어를 익혀야만 한다고 말한다.
문헌학을 종교적 권위에서 해방시키고 고대 문헌에 대한 순수한 수평적 주석을 중심에 놓았던 사람들은 근세 인문주의자들이다. 이러한 종류의 해석 방법을 처음으로 확립한 것은 플라키우스(Mattias Flacius,1520~75)의『성서의 열쇠』(Clavis scripturae sacrae, 1567 )이며, 이것은 근세 해석학의 효시이다. 그런데 자율적 문헌에 대한 방법론적 반성을 통해 그 형태를 갖추어 왔던 근세의 해석개념, 즉 경전이든 고전 일반이든 혹은 법률조문이든 대체로 문헌의 의미 해명을 과제로 하는 인문주의적 해석개념이 확대ㆍ심화되어 재차 철학적 의미를 획득했던 것은, 플라키우스보다 한 세대 늦은 베이컨의『신기관』(Novum Organon, 1620)의「자연의 해석」(interpretatio naturae)에서인데, 그는 자연 전체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는데 ‘해석술’(arts interpretandi)을 적용하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해석의 주제를 문헌에 한정시키지 않고, 예술작품을 포함하여 존재 일반에까지 확대하려는 시도의 근대적 부흥으로 볼 수 있으며, 그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이다. 특히 그 자연해석의 방법적 구성은 현대 물리학의 양자론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해석개념의 뿌리 깊은 연원으로 되었다. 또한 이와 같은 폭넓은 해석이 역사에 적용될 때, 해석은 마르크스(Karl H. Marx. 1818~83)와 포이에르바하에 이르러 실천에 대립하는 이론적 인식 일반으로 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일반화가 된다고 해서 문헌학적 해석 이론이 소멸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문헌학은 플라키우스의 신학적 제한을 뛰어넘어 성서학의 보조학이라는 성격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볼프(Friedrich August Wolf, 1759~1824)는 고대학(古代學), Altertumswissenschaft)의 중요한 계기를 이루는 문헌학을 제창하였고, 그의 제자인 뵈크(M. Böckh)가 이것을 계승하여 그의 주저서인『문헌학 범론 및 방법론』(Encyklopädie und Methodologie der philoiogischen Wissenschafte
n, 1877)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창조의 체험과정을 이루는 내적 해석과 예술적 가치를 명확하게 하는 미학적 해석의 의의는 보이지 않고 있다. 뵈크가 개척했던 것은 해석을 향한 문헌학자들의 길이었으며, 해석의 철학적ㆍ미학적 문제들은 헤르더와 쉴레겔 형제들처럼 언어와 구전 문헌학뿐만 아니라 예술이나 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자들이 차차 전개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과 거의 때를 같이 한 19세기 초에 쉴라이어마허는 해석학의 범주를 표현의 창조과정에까지 확대하여, 이것을 추형성(追形成, nachbilden)하는 심리학적 해석을 종래의 문법적 해석과 나란히 자리매기고, 진정한 해석은 양자의 통일에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거기에는 무의식적 형성과정의 의식적 재구성이 기획되어져 있기 때문에 “저자를 저자 자신보다 한층 잘 이해한다.”라는, 후에 딜타이가 강조한 ‘좀 더 잘 이해하다.’(besser Verstehen)의 사상이 이미 싹트고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후 해석학은 문헌학을 전제로 하면서도 그것과는 별도로 인간학적으로 경도된 방향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딜타이의 해석학적 사상은 이 방향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다. 그는 다만 문서만이 아니라, 예술 작품 외에도 인간정신의 산물 전반을 역사적 삶의 표현으로 보고, ‘이해’에 의해 이것의 내면적 파악을 전신과학의 기본적 방법으로 삼고 있다. 딜타이의 사상은 문예학을 비롯하여 예술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이에 대해서는「생의 철학의 미학」,「문예학」부분을 참조할 것〕.
철학의 영역에서 딜타이의 영향 하에 해석에 관한 독자적 사상을 전개한 사람은 하이데거이다. 그의 철학은 대상의 측면에서 보자면 존재론이고, 방법의 측면에서 보자면 현상학인데, 현존재를 그 감추어진 상태에서 끄집어내 볼 수 있게 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본질적으로 해석학적 방법을 기초로 하는 해석학적 존재론이다. 그는 근대 미학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며, 예술에서는 작품의 존재를, 진리를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독일 문예학에서 슈타이거 등의 해석학적 시학은 하이데거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것이다. 또한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으면서 해석학과 미학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사람으로는 가다머가 있다. 그에 의하면 미학은 방법론상 해석학으로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예술과의 만남이 단순히 주관적ㆍ개인적인 체험(Erlebnis)과는 구별된 해석학적 경험(hermeneutische Erfahrung)이며, 마치 유희가 유희되는 것을 매개로 해서만 그 존재를 명확히 하듯이, 예술작품은 해석되는 것에 의해서만 그 진정한 존재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다. 요컨대 대상에서 보면 미학적 해석학의 입장을 가다머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Ästhetik und Hermeneutik, in : Kleine Schriften, Ⅱ,1964)
이들 외에도 본 사전의 다른 곳에서 이미 그 이름이 거론된 학자들 중에도 해석에 관하여 빼놓을 수 없는 생각을 서술한 사람도 적지 않다. 프로이트에서 시작되는 정신분석적 해석은 주지했듯이 예술의 창조과정에 심층적인 심리학적 해석을 가하여 작가와 작품의 인과관계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었다. 융ㆍ아들러(A. Adler) 마르쿠제(H. Marcuse, 1892~1979)ㆍ바슐라르(G. Bachelard)등은 각기 다양한 관점에서 예술을 근원적인 복합성과의 관계에서 파악하여 적나라한 인간성의 심연으로부터 일어나는 형성활동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이에 따라 20세기에 들어서는 예술과 광기(狂氣)의 병존관계가 분명한 이유를 갖게 되어 광기를 치료하는 데 예술활동이 이용되고 있다. ‘상징형식’의 관점에서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을 파악하려고 한 카시러(E. Cassirer)의 시도는 의미론ㆍ기호론ㆍ분석철학 등의 입장에 속하는 학자들 사이에 상징과 기호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불러일으켰다. 예술을 상징하거나 기호로 파악하고 그 의미론적 해석에 주력을 기울인 사람은 랑거ㆍ모리스 등이다.(「영국ㆍ미국의 미학」항 참조). 또한 프랑스에서는 바르트 등의 구조주의 입장에서 새로운 텍스트 해석이 발전해 왔다. 그러나 리쾨르(Paul Ricoeur)와 같이 바르트에 반대하여, 해석이란 구조 전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문장을 생산하는 조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구조주의에 대해서는「구조주의와 미학」항을 참조. 그리고 현대에서의 예술해석에 대한 각종 시도에 대해서는「미술학의 현황」및「문예학적 연구 현황」에 설명되어 있다〕.
오늘날 순수하게 미학적인 관점에서 해석에 대해 논하고 있는 사람은 파레이손이다. 그에 의하면, 향수에는 단순한 향수와 관상(觀想)이 있는데, 관상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의 가장 첨예한 활동으로서의 해석이다. 다른 해석은 몇 번이고 반복되고 수정되어 마침내 유일한 미적 판단으로 결정 되어야만 한다. 이와 같이 ‘해석의 다양성’(la molteplic ità è dell' interpretazione)과 ‘판단의 유일성’(l;unicità è del giudizio)을 대립시키고, 이념적으로는 무한한 해석이 하나의 보편적ㆍ객관적 판단으로 수렴되어, 이것이 결국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비평(critico)이라고 파레이손은 생각하고 있다(I problem dell' estetica, 1966).


3) 결 론

이와 같이 해석은 역사적으로 전망해보건대, 실제로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로 파악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현대 미학과 모든 예술학의 하나로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현대 예술이 난해하다는 것, 현대와 그 이전의 시대 사이에는 균열이 존재하여 과거 예술을 수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 가치관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 등등의 사정이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예술에서 자기의 운명과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인간의 본래적이고 내적인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해석에 대해 연구할 때 오늘날 특히 요구되는 것은 해석의 논리학적 위치와 방향을 규정하는 원리적 연구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팔레이손과 같이 미적 판단을 해석의 수렴점으로 보는 견해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많은 미적 판단이 모여서 해석이라는 하나의 체계를 형성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후자의 견해에 따르면, 해석은 일상적 존재태(存在態)에서는 자아가 지존의 작품을 매개로 하여 구성하는 가치조우(價値遭遇)체험의 지적 구성이며, 해석이란 작품을 매개로 하여 작품과는 관계없이 반드시 이념에 도달하는 길이다. 따라서 해석은 숙련이 되면 기존의 작품 없이도 이념의 발명적 발견(inventio)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초예술학적 ㆍ지적 경험의 구성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가치에 대한 인간의 자기 개척이며, 방향을 역전시키는 헤르메네이아(중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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