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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권 미학연구동향] ()

독일에서는 지금도 하이데거의 영향 하에 존재론적 입장에서 미와 예술을 논하는 사람이 많다.
해석학으로서 미학을 주장하는 가다머(Hans Georg Gadamer, 1900~) 는 예술체험을 그 일상적 작업에 대한 차이에서 해명하려 하며, 그 실마리를 ‘유희’에서 찾고 있다. 종래의 유희론에서는 주로 유희하는 사람의 측면에서 행한 인간학적 고찰(쉴러)과, 호이징아(Johan Huizinga,1872~1945)의 문화사적 고찰, 그리고 카일로와(Roger Caillois,1913~)의 사회학적 분류가 시도되었으나, 가다머는 유희의 전체구조가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유희를 바라보는 사람의 체험에서라고 하여 거기에서 예술에 존재하는 미적 체험과 유사성을 찾고 있다. 그의 저서『진리와 방법』(Wahrheit und Methode, 1960)에 의하면, 유희와 마찬가지로 예술에서도 관조자의 존재방식은 “현장에 있는 것”(Dabei-Sein)이 아니라 “관여하는 것”(Teil haben)이 필요하고, 나아가 “자기를 망각하는 것”(脫自的存在, Außersich-Sein)이어야만 한다. 여기에서는 향수하면서도 능동적인 또한 자주적이면서도 작품에 규정된 예술체험의 역설이 매우 돋보인다.
이에 비하여 예술의 비일상적 성격을 그것의 모태인 제례의식과 비교하여 설명한 사람은 쿤이다. 그가 예술의 제례성(祭禮性),Festlichkeit)이라고 말한 것은 단지 예술이 제례에서 발생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하는 자와 바라보는 자의 일치된 앙양상태의 존재론적 성격을 볼 때 예술이 제례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즉, 예술의 창작과 향수 양면에 작용하는 내적 동력인 시작(詩作,Dichtung)이 제례와 마찬가지로 존재를 찬미하는 것임을 일컫는 것이다.(Schriften 켝 Ästhetik,1966).
또한 베를링어(Rudloph Berlinger,1907~)는 미의 철학과 예술의 철학 사이에 있는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충분히 가려내었을 뿐만 아니라, 미의 이념이 예술의 존재론적 원리라는 것을 증명하였는데, 예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기술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한다. (Das Werk der Freiheit,1966)이에 대하여 핀크(Eugen Fink,1905)는 “예술은 유희다”라는 쉴라이어마허의 정의를 현상학적ㆍ실존적 측면에서 받아들여 그 유희성을 예술이해의 열쇠인 상징과 상관지어 해석한다. (Spiel als Weltsymbol,1960) 또한 만년의 하이데거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페퍼드는 미학이라는 개념을 쓰지 않고, 미존재(Schön-Sein)가 아닌 예술존재(Kunst-Sein)를 해석학적으로 묻는 예술철학을 제창한다. 이 ‘예술존재’(Kunst-Sein)는 예술작품에서 실현되기 때문에 결국 예술철학은 예술작품의 개체성을 명확하게 하는 방법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Das Sein der Kunst und die Kunstphilosophische Methode,1970)
예술을 실존주의적 이해를 인격적인 초월자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종교색채가 짙은 미학을 주장한 사람에 가르디니(Romano Guardini,1883~)와 발타지(Hans urs Von Balthasar, 1905~)가 있다. 전자는 현대예술과 신앙 관계를 논하고 있고, 후자는 J. G.하만의 미학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상에서 거론했던 철학적 미학 외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의 영향을 받았던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음악미학으로 알려진 아도르노는 특히 현대예술에서 산출된 작품이 물신숭배풍조에 휩싸이게 되면서 미적 가치가 현대사회에서 축출되어버린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일면 많은 사람들을 저속한 작품(Kitsch)의 연구로 몰아갔는데, 우리는 브로흐(Hermann Broch,1886~1951)와 기츠(Ludwig Giesz)등의 저서를 들 수 있다. 동시에 제3제국 당시의 예술정책에 대한 반성도 일어나, 브랜너(Hildegard Brenner)의『국가사회주의의 예술정책』(Die Kunstpolitik des Nationalsozialismus,1963)과 같은 책도 나오고 있다. 또한 예술 활동을 필두로 하여 미학상 각 부문을 실생활과 결합시키려는 것으로 알트하우스(Horst Althaus)의『미학ㆍ경제ㆍ사회』(Ästhetik Ökonomis und Gesellschaft,1971)가 있다.
브론스키(J. M. Hoëné Wronski,1778~1855) 이래 문화창조의 철학적 연구의 전통을 갖고 있는 폴란드에서는 크라카우대학의 잉가르덴과 바르샤바대학의 타타르키에비치(Wladysl aw Tatarkiewicz, 1886~1978) 두 노장이 오랫동안 활동을 계속하여 왔다. 잉가르텐의 최근저작으로는 문예작품의 인식에 관한 체계적 연구[독일어판,『문학예술작품의 인식』(Vom Erkennen des literarischen Kunstwerks,1968)외에, 미적 체험과 예술작품과 가치에 관한 몇 년간의 논고들을 모은 논문집『체험, 예술작품, 가치』(Erlebnis, Kunstwerk und Wert, 1969)와 예술의 존재론적 고찰을 주제로 한 논문집『예술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Untersu
chungen zur Ontologie der Kunst, 1962)이 독일에서 출판되었다. 타타르키에비치의 최근 저작으로는 주로 고대ㆍ중세의 미학사를 다룬 저서(History of aesthetics, 1970~71) 3 권이 있는데, 이들 저서에는 그 보다 앞서 쓴『예술에서의 평가』(L'evaluation en art, 1913)에서도 보이듯이 예술자체와 미학이 상관적 계기를 매개로 하여 함께 나아간다는 것이 실증되고 있다. 또한 예술이 부단히 변화되어감에 따라 미적 가치도 그 내용에서가 아니라 파악방법에서 예술과 함께 진보한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이 두 사람에 이어서 미학 기초론을 써서 두각을 드러냈던 오소프스키(Stanislas Ossowski)와,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해 있으면서도 종래 유물론적 미학을 비판하여 미학과 예술사회학의 구별을 강조한 모라브스키(Stephan Morawski) 등이 활동하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미학은 이전부터 서구, 특히 독일의 영향을 받아왔지만 전후에 마르크스주의가 이 나라를 지배하면서부터는 우티츠의 일반예술학 사상을 받아들여, 프라하대학에서 그의 후임을 맡은 노바크(Mirko Novák)를 중심으로 작품에 대한 구조분석이 진행되었다. 또한 국내 학자인 호스틴스키(Otokar Hostinský, 1847~1910)와 치히(Otakar Zich, 1879~1934)의 실험미학, 스보보다(Karl Svoboda)의 고전문헌적 미학사, 무카료프스미(Jan Mukarovský,1891~)의 선구적 구조주의 등의 계통을 이루며 다채로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스위스의 독일어권에서는 뵐플린이 정통적 계승자인 미술사가 간트너가 완성(Präfiguratio
n)과 미완성(non finito)의 개념을 제시하여 미학에도 주목할 만한 기여를 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또한 해베를린(Paul Häberlin, 1878~1960)은 미학을 문화철학의 한 분과로 규정하고, 미는 현상에 영원의 질서가 계시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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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예술론과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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