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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라이어마허] (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쉴라이어마허(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1768~1834)

쉴라이어마허는 피히테, 셸링의 관념론 철학에 의거하고 있으면서도, 경험계의 모든 것을 형이상학적 입장에서 구성하려고 하는 그들의 사변적 방법에 대항하여, 현실의 차별성 속에는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개체성(Individualität)이 존재함을 강조한다. 셸링에 있어서 개개의 유한적 존재는 결국 ‘신으로부터의 반역’으로 간주되고 그 본질은 무한자 쪽으로 흡수되어 버리고 마는 데 반하여, 쉴라이어마허에 따르면 유한한 현상이라 해도 그 고유한 본질을 가진 것으로, 즉 개체(Individiuum)로서 간주된 바 그대로 무한자의 적극적 표현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개체의 충실성의 한가운데서 파악할 수 있는 경우에서만 무한자를 문제 삼으려고 한다. 이러한 개체성의 사상과 경험적 사실을 존중하는 태도는 낭만주의의 영향 하에 있었던 초기사상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이것은 후에 그의 사상 전반에 걸쳐져 있던 변증법(Dialektik)적 방법론에서도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
쉴라이어마허의 변증법은 단적으로 말한다면 유한자적 입장에서 유리되는 일 없이 사변을 진행시키는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사변적 · 구성적 방법과 경험적 · 귀납적 방법의 중간에 서 있는 것이고, 사유의 각 단계를 항상 경험적 사실에 의해 검증받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주어지 바의 비합리성을 억제해가며 마침내 사유의 동일성 -그러나 거기에 적합한 실재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에 이르는 방법이다. 1810 년에 행해진 최초의 미학강의(오데브리히트 편『쉴라이어마허의 미학』Schleiermachers Ästhetik,1931)는 1818년의 변증법에 관한 강의에 이어서 행해졌는데, 그것은 그 방법의 정신으로 관통되어 있다. 그러나 1832 년부터 다음해까지 강의한 최후의 강의(로마쵸 편『미학강의』Vorlesungen überdie Ästhetik, 1842)에서는 대폭적인 수정이 가해지며, 주장하는 바가 많이 보충되고 확정된 반면, 방법적 명확성은 오히려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쉴라이어마허의 철학체계는 변증법 · 윤리학 · 자연학의 세 부분으로 구상되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윤리학은 정신철학에 해당하는 넓은 의미로 예술의 문제도 이 부분에 속한다. 이리하여 그의 미학은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인간이 세계에서 영위하는 여러 활동 중 하나로서 예술을 고찰하는 것인 바, 당장 이러한 활동들 속에서 예술은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가가 문제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그는 윤리에 속하는 모든 활동을, (1) 각 개인에 의해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동일성의 활동’인가, 혹은 개성의 차이를 전제로 하는 ‘개체성의 활동’인가, (2) 그 본질적 과정이 각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내재적 활동’인가, 혹은 외계에서 작용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실천적 활동’인가 하는 이중의 구별을 교차시켜서 분류한다. 제1의 구별에서 예술은 물론 ‘개체성의 활동’에 속한다. 제2의 구별에서 예술은 언뜻 ‘실천적 활동’에 속하는 같지만 그 본질이 전적으로 창작자와 향수자의 내면적 과정에 있다는 관점에서 ‘내재적 활동’혹은 넓은 의미의 ‘인식적 활동’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리하여 예술활동은 ‘개성적 인식’의 기능 속에서 그의 자리를 부여받게 되었다.
이어서 쉴라이어마허는 보편 예술이라고 불리는 영역에 관심을 돌려, 이 경험적 사실에 질서를 부여하고 예술의 정의를 규정하려 했다. 우선 모든 예술은 내면적 감동에서 출발하여 외면적 형성으로 끝난다는 점이 주목된다. 여기서는 우선 음악과 율동의 예술(Mimik)이 고찰대상으로 되는데, 이러한 예술의 경우에는 ‘감동의 발현’이 공통된 원리로서 일단 고찰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감동의 직접적 발현은 예술이 아니라는 사실이 반성된다. 내면의 감동과 외면의 형성 사이에는 원상(Urbild)에 근거한 이상화가 개입되어야만 한다. 즉, 열광(Begeisterung)에 숙고(Besonnen
heit)가 가해져야 비로소 예술이 성립하는 것이다. 또한 위에서 말한 감동, 이상화, 형성이라는 3요소는 전 예술을 통하여 기본적인 요소인데, 이 중에서 나중의 두 요소에는 예술의 종류에 따라 약간의 특수성을 띠게 되므로 예술의 보편적 윤리는 감동에서 찾아진다. 그렇지만 이것은 앞에서 예술의 자리로서 규정된 바에 따라 개성적 인식으로서의 기능을 지녀야 한다. 쉴라이어마허는 감정(Gefühl)을 이러한 것으로서 규정하고 이것을 예술의 일반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만으로는 예술의 다른 영역이 충분히 규정되지 못한 채 남게 된다. 일반적으로 개성적 인식으로서의 감정이 전적으로 외계로부터 촉발되어 생겨나는 수용적인 것인데 반하여 보다 능동적인 측면을 강조한 개성적 생산성이 고려된다. 상상력(phantasie-개성적 존재를 표상하는 능력)이 여기에 해당되고, 그 자유로운 유희(freies Spiel)가 표상들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결합해 가면서, 말하자면 개체적으로 채색된 세계를 주관 속에서 형성한다. 조형예술 및 언어예술에 대해서는 이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가 일반원칙이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한편으로는 ‘감정’,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희’가 원리로서 수립된 결과, 예술은 두 영역으로 분할되었지만, 이어서 이 두 원리를 종합하는 원리를 찾아 이전의 두 원리 각각은 반성된다. 음악과 율동예술의 원리는 결코 촉발된 개개의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숙고라는 요소에 의해 개체 속에서 지속되는 정조(기분,Stimmung)로 되었을 때 비로소 예술의 생산적 원리로 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조형예술과 언어예술에서 상상력의 생산성은 촉발을 요하는 생산성이며, 그렇게 때문에 그 자유로운 유희도 주체 속의 정조에 의해 규정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앞의 두 원리는 정조라는 개념에 의해 여기서 종합된다. 즉, 모든 예술의 보편적 원리는 정조라는 표현에 있다는 것이다.
졸거가 죽은 후 베를린 대학의 강단은 쉴라이어마허와 헤겔의 논쟁터가 되었다. 헤겔은 감정을 혼돈된 인식형식으로 간주하는 입장에 서서 쉴라이어마허의 사상, 특히 신학사상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당시에는 이렇게 공격의 목표로 되었던 ‘감정’의 문제도 오늘날에 와서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주목되고 재평가 받게 된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쉴라이어마허의 미학이 갖는 최대의 의의는 그것이 최후까지 유한자적 입장에서 실재적인 사유를 지향하였다는 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방대한 형이상학적 체계가 상호 대립했던 그 시기에 사유의 절도를 확고하게 유지하며 인간학의 범위 내에서 예술을 고찰하려고 한 태도는 독일 관념론의 미학에서 전적으로 독자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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