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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가치 ] (surplus value)

잉여가치의 추출은 자본주의 하에서 발생하는 특유한 착취 방법이며, 잉여가 이윤의 형태를 취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특유한 본질적 차이점이다. 그리고 착취는 그들이 임금으로 받는 것 이상으로 판매될 수 있는 순생산물을 생산하는 노동계급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이윤과 임금은 자본에 의해 고용될 대 잉여노동과 필요노동이 취하는 특유한 형태이다. 그러나 이윤과 임금은 모두 다 화폐이며 따라서 이것은 잉여가치 개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역사적으로 특유한 일련의 조정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노동의 객관화된 형태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상품생산의 가장 일반화된 형태이다. 그리하여 생산물은 가치로서 판매를 위해 생산되며, 또한 그것은 가격의 형태, 즉 화폐량으로 측정되고 실현된다.(→가치와 가격) 생산물은 자본가가 소유하게 되는데, 이들은 생산물의 기차와 생산과정 속에 포함된 자본의 가치와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잉여가치를 전유한다. 자본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불변자본인데, 이것은 생산과정 속에서 단순히 생산물로 전화되는 생산수단에 투자된 가치에 해당한다. 둘째는 노동자들을 공용하는 데 사용되는 가변자본으로, 여기서 노동자들은 그들이 판매하는 것, 즉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 받는다. 가변자본이라 함은 생산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양이 변하기 때문이다. 즉 처음에는 노동력의 가치로 시작되지만 결국은 노동력의 활동에 의해 생산되는 가치로 끝나기 때문이다. 잉여가치는 이 두 가지 사이의 차(差), 즉 노동자에 의해 생산되지만 교환상의 등가물 없이 자본가에 의해 전유되는 가치이다. 이때 부당한 교환에 결코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자본가는 불불 잉여노동의 결과물을 전유하게 된다.
이것은 노동력이 유일하게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상품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적 요소인 것이다. 생산수단은 생산과정에서 소모되고(소비되고), 그 사용가치는 그 생산과정에서 실현되어 생산물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다시 나타나게 된다. 생산수단의 가치는 단지 생산물의 가치로 전환된다. 노동력 또한 생산과정 속에서 소비되지만 노동력의 소비는 노동 그 자체이다. 노동은 상품생산에서 구체적 노동과 함께 추상적 노동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지니므로, 노동력의 사용가치 또한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즉 사용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사용가치(구체적 노동)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용가치(추상적 노동)를 갖는다. 자본가의 관심을 끄는 것은 후자이다. 왜냐하면 노동력이 소비될 때 생산된 가치는 새로운 가치이고, 노동자들은 이 새로운 가치가 그들의 노동력 가치 이상으로 될 것이라고 기대될 때에만 고용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은 단지 자신의 노동력만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자들은 달리 생산수단에 접근할 방도를 갖지 못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팔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수 없으며 가치를 창조하는 성질의 것을 이용할 수가 없다. 따라서 노동자는 노동력을 그 가치대로 판매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의 부등가 교환에 의해서가 아니라, 착취가 실제적으로 발생하는 자본제적 생산과정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계급적 지위로 인하여 착취당하는 것이다. 비록 각 개인의 임노동 계약은 어떤 다른 자유교환 계약과 마찬가지로 상대방 중 어느 한 쪽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지만, 노동자는 살아갈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수 있는 자유란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자유가 개인 임금계약의 차원에서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마르크스가 말하는, 이른바 노동자의 두 가지 자유인 그이 노동력을 판매할 자유와 굶어죽을 자유가 있을 뿐이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 분석은 초기 고전경제학자들의 분석과 매우 다르다. 초기 고전경제학자 중에서도 특히 리카르도는 잉여가치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 임금과 노동의 불평등 교환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즉 노동자는 그들의 노동력을 그의 가치 이하로 판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교환에서 잉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과 노동력의 구별을 통하여 아무런 부당한 교환 없이 어떻게 노동력이 그 가치대로 판매되고, 또 잉여가치가 생산과정 속에서 창출될 수 있는가를 밝혀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착취는 이전의 모든 생산양식의 착취와 마찬가지로 생산과정에서 발생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공평한 교환 비율이 성립된다고 해서 착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지위는 (뒤에 신고전경제학에서 주장하듯이 교환계약에 개인적 교섭의 결과인 개인적 소득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의해 규정되는 계급적 지위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가치는 양으로 나타나므로 잉여가치의 총계 역시 양으로 나타난다. 한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의 총액은 그가 생산한 가치와 그의 노동력의 가치 사이에서 생기는 차액이다. 전자는 특정한 노동자가 포함된 노동과정의 조건과 생산물 판매를 위한 시장에 의해 결정된다. 후자는 개별 노동 과정의 외부에서 노동시장의 조건과 노동자가 소비해야 하는 상품의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가치법칙(→가치)은 여러 공장에서 노동자에 의해 생산된 가치가 균등화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은 적어도 미숙련 노동자에 있어 노동력의 가치를 균등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경제를 관통하는 잉여가치의 공통비율에 대해 말할 수가 있으며 이제 여기서 잉여가치율(때때로 착취율이라 불린다.)은 다음과 같은 비율로 정식화된다.
생산된 잉여가치의 양
S/V = -------------------------
투자된 가변자본
숙련노동자는 특별수당에 비례하는 가치를 생산하는 까닭에 미숙련노동자의 배수로 보여진다면, 잉여가치율은 숙련노동자 사이에서도 일정하게 될 것이다.(Roncaglia 1974 ; Rowthorn 1980 ; Tortajada 1977에 위의 가정이 합당한지 여부에 대하여 논의되어 있다.)
노동자가 창출하는 가치는 이러한 방법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까닭에, 노동자가 가치를 창출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도 이와 같이 나누어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노동일도 마찬가지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즉 첫째는 필요노동인데, 이것은 노동자가 자신이 임금으로 받는 것과 같은 양을 생산하는 시간이다. 둘째는 잉여노동으로서 이것은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하여 생산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보면 이 두 부분은 아래와 같이 나누어진다.
잉여노동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데 소비한 시간
S/V = ---------- = --------------------------------------------
필요노동 노동자가 개인적 소비를 위해 일하는 데
소비한 시간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는 잉여가치율을 증가시키려는 자본의 경향과 이에 저항하는 노동계급의 노력을 둘러싼 투쟁의 역사로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주요한 방법으로 일어난다. 첫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인데, 이것은 필요노동량을 변화시키지 않고 각 노동자에 의해 생산되는 총가치를 증가시킴으로써 잉여가치율을 높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노동일의 내포적 연장이나 외연적 연장을 통해 행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노동계급의 조직적 저항에 부딪힐 뿐만 아니라, (개별 자본가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본 일반이 의존하는 노동계급의 건강이 과도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불충분한 임금으로 인하여 질이 떨어지는 까닭에 육체적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1847년 영국에서는 노동계급의 조직, 인자한 자본가들, 소자본에 대항하는 끈질긴 세력들이 10시간 노동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연합하였다.(《자본론》Ⅰ권 10장 특히 6절)
절대적 잉여가치의 추출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개별 노동자에 의해 생산되는 총가치를 증가시키기 위한 다른 방도는 똑같은 양을 자본에 좀 더 유리한 비율로 나누는 것이다. 즉 똑같은 길이의 노동일을 가지고서 좀 더 많은 부분이 잉여노동으로서 자본에 의해 전유될 수 있도록 그것을 재분할하는 것이다. 이것은 필요노동시간의 감소를 필요로 하는 동시에 노동력의 가치 하락을 가져온다. 이것이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으로서, 이것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일어날 수 있다. 즉 노동자가 소비하는 사용가치의 양을 줄이거나, 똑같은 양의 사용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전자의 방법은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서와 같은 한계, 즉 노동계급에 의한 저항과 육체적 조건의 악화에 직면한다. 후자의 방법은 지속적으로 생산수단을 변화시키고 기술향상을 도입하는 것인데, 이것에 의해 자본주의는 가장 동적인 생산양식으로 된다. 왜냐하면 특정한 상품의 생산에 있어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을 감소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기술적 변화에 의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생산성 향상은 기계형태의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대신하는 새로운 생산방법으로부터 발생하는데, 이것은 생산된 개별 상품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이것을 그 가치가 노동력의 가치를 반영하는 상품, 즉 노동자의 소비부분을 형성하는 상품에 적용할 때, 노동력의 가치는 하락하고 노동일의 보다 많은 부분이 잉여노동에 투여될 수 있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추출은 노동자가 소비재를 생산하는 부문에서 증가된 생산성의 이윤을 모든 자본가들 사이에 나누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 분배는 순환과정과 자본주의적 경쟁의 결과이다. 경쟁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채용할 때 생산물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기술을 혁신하는 자본가의 특별 이윤은 점차적으로 상실된다. 만약 기술혁신이 임금상품을 생산하는 산업에서 이루어진다면, 이윤은 노동력의 저하된 가치의 형태로 모든 자본가들 사이에 나눠질 것이다. 그리고 만약 종국적으로 노동자의 소비재 생산에 공급되는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부분에서 기술혁신이 이루어진다면, 임금상품의 가치가 마찬가지로 감소될 것이므로, 그 효과도 역시 마찬가지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기술혁신이 단지 자본가의 소비를 위한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 혹은 그러한 부분에 사용되는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산업에서 이루어진다면, 그로 인한 결과는 잉여가치율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 단지 사치 상품의 가격을 하락시킬 것이다.
자본가는 이윤을 증가시키기 위해 그들 자신의 개인적 비용을 감소시키려고 하지만, 상대적 잉여가치의 추출은 자본가를 위한 의식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가들은 경쟁으로 인하여 모든 자본들 사이에 확대되는 이익과 함께 경쟁자에 대해 획득한 직접적 이윤을 상실하게 된다. 궁극적인 결과가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인지 아닌지, 즉 그 생산이 노동력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지 아닌지는 개별적으로 기술을 혁신하는 자본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본가는 각각의 경우 경쟁의 강제력에 의해 제한을 받고, 결국에 가서는 모든 개인의 이점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발달사의 많은 부분은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 추출의 과정을 통하여 검증될 수 있다.(→Fine and Harris 1979, 7장 ; Himmelweit 1979) 비록 전자가 자본주의 발전의 초기 시기의 특징을 이룬다고 해도 양자는 서로 협력관계에 놓여 있다. 기술적 변화, 즉 상대적 잉여가치의 추출은 절대적 잉여가치를 추출하기 위한, 갱신되는 추진력의 기초가 된다.(→노동과정) 많은 과정들도 또한 상대적 잉여가치와 절대적 잉여가치 추출이라는 하나의 혼합물로 분석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기혼여성이 지불고용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의 낮은 임금이 노동력의 보다 낮은 개인적 가치를 표현하기 때문에 상대적 잉여가치의 추출을 허용한다. 반면에 이것은 동시에 절대적 잉여가치의 추출을 위한 기초가 된다. 즉 보다 많은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이 가족 전체에 의해 그들의 재생산 비용과 자본이 지불하는 필요노동의 양에 상응하는 증가 없이 수행되는 것이다.(→Beechey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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