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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위기] (Monetary Crisis)

국내의 통화 및 신용제도, 자본주의 국가 간 국제적 통화 및 금융관계에서의 첨예한 불균형. 이것은 주기적인 공황과 사회적 갈등을 고조시키고 제국주의 국가 간 모순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경제에 큰 충격을 준다. 이 말은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즉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의 전시기에 걸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만성적 현상(일반적 통화위기)과 순환적인 경제공황에 의해 어떤 통화의 안정성이 주기적으로 저해되는 것(특수적 통화위기)을 의미한다. 일반적 통화위기는 금본위의 폐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쉽게 감가상각되는 불환지폐로의 이행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미국에서 1913년과 1975년 사이에 국내의 도매물가 지수는 거의 다섯배 오르고 달러의 금 가격은 물가의 상승으로 인하여 여덟배가 올랐다. 많은 다른 통화들은 이것보다 훨씬 더 크게 평가 절하되었다.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 하에서 금본위제의 보존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동안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은행권(태환지폐)의 금으로의 교환이 취소되었고 많은 통화들이 평가 절하되었다. 1920년대 초기에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독일을 강타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은 그 당시 약간 제한된 형태(동전의 유통은 예외)이기는 하지만 금본위제를 복구했다. 1929~1933년의 세계경제공황은 금본위제의 좌절을 보여준다. 즉 금준비금은 정부에 집중되고 단지 국제적인 결제에서만 사용되었다. 1930년대의 통화위기는 지불의 심한 불균형, 환율의 동요, 미국의 달러, 영국의 파운드스털링, 프랑스의 프랑의 후원하에 출현한 통화블럭과 같은 새로운 특징들을 발전시켰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에 통화제한이 시행되었고 한 통화에서 다른 통화로 자유로운 교환이 폐지되었다. 1944년 자본주의 국가들은 집단적인 국가독점적 규제를 통해 통화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미국의 선도로 국제적인 통화관계를 통제하고 규제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을 설립하였다. 전후의 화폐제도는 종종 브레튼우즈체제라고 불린다. 이것은 1944년 IMF의 설립을 결정한 국제회의가 열렸던 미국의 도시 이름을 본따 지은 것이다.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미국이 세계자본주의 경제와 화폐제도를 지배하였다. 달러가 주요한 준비통화로 되었고, 따라서 다른 나라들은 달러를 미국은행에 예치하여 국제적인 지불수단의 예비금을 조성하였다. 다른 통화들의 가치는 달러에 의하여 표현되었고, 미국은 국제통화기금을 통하여 다른 통화들의 달러평가에서 발생하는 변동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1950년에서 1967년 사이에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국에서는 인플레이션율이 떨어졌고, 통화들 간의 비율도 일정한 안정성을 유지하였으며, 통화 상호 간의 교환이 복구되었다. 그러나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통화와 금융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로 남아있었다. 1967년 이후 자본주의 화폐제도는 주로 다음의 이유들 때문에 다시 위기에 접어들었다. 즉 경제의 군사화, 인플레이션의 심화 및 나라들 간의 불균등한 발전, 국가들과 산업에 있어서 발전의 불균등성 및 불비례성, 자국의 통화가 기축통화로서 기능하는 미국의 세계경제에서 지위의 하락, 자본주의 경제의 주기적 동요의 확대, 원료시장의 급격한 변화 등이 그것이다. 자본주의 세계의 전체 차원에서 작용하는 이들 요소에 덧붙여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각자는 화폐제도를 위태롭게 하는 자신의 특별한 경제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은 또한 많은 개발도상국들에게도 악회되었다. 국내 화폐순환에서 통화위기의 가장 중요한 표출은 인플레이션의 악화이다. 가격은 1973년에서 1975년 사이에 특히 빠르게 상승하였고(많은 선진국에서 해마다 20~25%씩 상승) 다음 해에도 계속되었다. 오늘날 국제적 거래의 결제, 환율, 금의 기능, 통화준비의 구조와 양 등의 영역에서 심각한 변동이 발생하였다 그 결과 브레튼우즈체제의 몇몇 중요한 원칙들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 1971년 미국은 외국 정부와 중앙은행을 위하여 설립된 공식적 평가에 따른 금과 달러의 교환을 중지시켰다. 1971년에서 73년에 달러는 평가 절하되었다. 1978년 이후 IMF 회원국 통화의 금 용량은 중앙은행이 더 이상 금을 국제적 결제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금은 단지 시장에 의해 결정된 가격으로 사거나 팔린다. 1980년 여름에 금의 가격은 온스당 633달러였다. 1971년에서 73년에는 소위 변동환율제가 보급되었고, 변동환율제 아래에서는 안정된 통화등가 대신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환율이 들어섰다. 이 체계는 1976년의 킹스톤(자메이카의 수도)협정에 의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고 1978년에 공신력을 획득하였다. 환율의 심각한 동요는 다른 국가들의 가격비율을 뚜렷하게 변화시켰다. 환율의 동요는 상품의 경쟁력과 자본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자본주의국들 간의 모순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미국 달러의 환율은 다른 나라, 특히 독일의 마르크와 일본의 엔에 대하여 뚜렷하게 평가 절하되었다. 통화준비금의 주조와 분배도 또한 변화하였다. 마르크와 엔이 강세를 보이는 반면 파운드스털링의 준비금 역할은 하락하였고 달러도 마찬가지였다. 산업이 발달된 선진국 이외에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같은 몇몇 석유 생산국은 많은 준비금을 축적하게 되었다. 1970년에서 72년 사이에는 국제통화기금에 의해 배분된 특별한 국제적 준비금, 즉 특별인출권(SDR)이 유통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통화위기를 완화시킬 주목할만한 역할을 조금도 하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화폐제도는 세계적 발전조건의 변화에 대한 진화와 적응과정으로 특징 지워진다. 그렇지만 통화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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