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환(崔益煥, 1891~1959) (號)力田 崔錫勳] ()
(고려공산동맹원, 신간회 간사)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어려서 동학에 입교했다. 1905년 광무일어학교에 입학하여 2년 동안 수학했다. 대한제국 탁지부(度支部) 세무주사, 충남 서천군 재무주사를 지냈다. 1909년 일진회에 가입했던 과오를 반성하여 국외 망명을 결심하고 자금 마련을 위해 공금 3000원을 사취했다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915년 출옥한 후 만주 봉천(奉天)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1918년 봄 귀국했다. 1919년 4월 조선민족대동단 결성에 참여했다가 일본경찰에 검거되었다. 출옥 후 1920년대 초 서울청년회에 가입했고 1924년 10월 고려공산동맹에 가입했다. 1926년 홍성에서 사상단체 무공회(無空會) 회원으로 활동했다. 11월 조선민흥회 창립준비위원회에서 준비위원, 상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서울파와 화요파의 합동을 주장하여 ‘통일 조선공산당’이 성립할 수 있는 여론을 조성했다. 1927년 2월 신간회 창립총회에서 규칙심사위원 및 간사로 선임되었다. 5월 최린(崔麟) 등의 자치운동에 대비하기 위해 신간회 내 민족주의자와 결속할 것을 합의했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전쟁의 종결과 평화통일을 위해 남북한 정권의 중재에 나섰다. 1959년 사망했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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