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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악(申泰岳, 1902~?) 辛泰嶽 辛秀嶽 三川泰嶽 三川淸] ()

(청총 중앙집행위원, 一月會 회원) 함북 부령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920년 경성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토오꾜오(東京) 세이소꾸(正則)영어학교에서 1년간 수학했다. 1922년 서울 오성학교(五星學校) 교사가 되었다. 9월 조선청년회연합회 순회강연단의 일원으로 호남지역을 순회하며 강연했고, 12월 겨울방학 기간에는 봉천, 의주 등 북부지방을 순회하며 강연했다. 의주에서 행한 물산장려운동에 관한 강연이 문제가 되어 검거되어 1923년 2월 신의주지법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4월 조선청년회연합회 상무위원이 되었다. 7월 사노(佐野學)의 「사회주의와 민족운동」과 야마까와(山川均)의 「자본주의의 붕괴경로」를 번역하여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1924년 4월 조선청년총동맹 창립 재경발기단체 회동 때 창립사무 집행을 맡았고, 선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달 청총 창립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5년 일본으로 가서 사상단체 일월회에 가입했다.
(친일변호사, 자유당 감찰위원장) 1931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졸업하고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1932년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했다. 1935년 조선발명협회 이사, 1936년 「조선일보」 이사, 조선변호사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39년 일본 오오사까(大阪)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1941년 8월 임전대책협의회 결성에 참여하고 상무위원이 되었다. 10월 조선임전보국단 결성에 참여하고 이사가 되었다. 1942년 4월 일본 오오사까에서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하고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1945년 6월 친일단체 대의당(大義黨) 위원이 되었다. 1946년 서울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1952년 자유당 창립준비위원, 1953년 자유당 감찰위원장, 1958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1963년 민정당 전당대회 의장, 1966년 신민당 운영위원장, 1971년 국민당 정무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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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악(申泰岳, 1902~?) 辛泰嶽 辛秀嶽 三川泰嶽 三川淸
신태악(申泰岳, 1902~?) 辛泰嶽 辛秀嶽 三川泰嶽 三川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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