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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용(辛日鎔, 1894~?) 張日星 赤笑] ()

(신생활사 기자)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1916년 3월 조선총독부의학교(朝蘇總督府醫學校)를 졸업하고 4월부터 목포, 제주도의 기독교병원에서 근무하다가 1918년 9월 전주에서 병원을 개업했다. 1920년 5월 전주청년구락부 간부를 지냈다. 1921년 4월 전주지법에서 약품 및 약품영업 취체규칙 위반으로 금고 2월을 선고받았다. 1922년 2월 신인동맹회 결성에 참여했고 6월 신생활사 기자가 되었다. 11월 ‘신생활사 필화사건’으로 검거되어 1923년 1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24년 2월 ‘통일 조선공산당’ 결성을 협의하기 위해 소집된 각파 공산주의자그룹의 대표자회의인 ‘13인회(十三人會)’에 서울파를 대표하여 참석했다. 9월 조선기근구제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5년 조선일보사에 취직했다. 9월 「조선일보」에 사설 「조선과 노국과의 정치적 관계」를 집필하여 일본경찰에 검거되었다. 그후 경성지법 검사국에서 기소중지 처분을 받아 석방되었다.
(조공재건설준비위 만주부 중앙위원) 석방 후 상해(上海)를 거쳐 북만주로 피신해서 길림(吉林)에서 광동병원(光東病院)을 경영했다. 1927년 12월 「동아일보」에 「당면의 제문제」, 「민족문제」, 1928년 1월 「조선일보」에 「당면 제문제 비판」을 기고했다. ML파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청산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해 신민부(新民府) 중앙간부가 되어 민족유일당 조직이론을 전개했다. 1930년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 만주부 중앙위원, 재만조선인반일본제국주의동맹 간부가 되었다. 3월 재만주조선공산주의자들의 중국공산당 입당에 반대했다. 1931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3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46년 반탁독립투쟁위원회 중앙집행위원을 지냈다. 1947년 정치평론 「조선독립문제의 장래」(「신천지」 제10호, 1947. 10), 「미소공위 속개의 전망」(「신태평양」, 1947. 5) 등을 발표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선거에 부안에서 한국민주당의 공천으로 출마했다. 1950년 5월 제2대 국회의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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