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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 고전파 부르조아] (Political Economy, Classical Bourgeois)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성립기이자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미성숙 시기에 출현한 부르조아 경제사상의 진보적 경향.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당시 가장 발달된 자본주의 국가였던 영국에서 최고도로 발전했으며, 봉건주의와 대항한 투쟁에서 산업 부르조아지의 이해를 대변했다. 대표적 학자로는 윌리엄 페티,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아도 그리고 프랑스의 부아길베르와 중농주의자들, 스위스의 시스몽디가 있다. 마르크스는 “고전파 정치경제학에 의해 나는, 페티의 시대이래, 경제학이 부르조아 사회의 현실적 생산관계를 연구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썼다(K.마르크스,『자본론』, 제 1권, 85쪽). 고전파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은 마르크시즘의 한 원천이었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대표자들을 특징 지웠던 것은 그들이 노동가치론의 기초를 제기하고 잉여가치의 특정형태에 대한 탐구와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연구를 최초로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새로운 방법, 즉 추상적인 과학적 개념들을 사용하여 문제의 핵심을 관통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방법은 비역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이었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자본주의를 영원한 것으로, 생산의 자연적인 형태인 것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경제적 범주들을 영원하고 자연적이며 오직 양적으로만 변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그것은 경제적 범주가 생산의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하에서는 이들 관계가 물신화되어 있고 사물의 사회적 속성으로서 나타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없었다. 고전파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의 주요 업적은 노동가치론의 발견이다. 이들 이론가들은 생산물의 가치가 그것의 제조에 필요한 노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들은 특정상품의 가치가 노동생산성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왜 노동생산물이 상품의 형태를 취하는가를 탐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성격을 연구하는데 실패했으며, 스스로를 가치크기의 분석에만 한정하였다. 비록 가치의 크기가 필요노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파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은 이 결론을 과학적으로 확립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품생산에 있어서 생산관계의 표현으로서의 가치의 질적 성격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일한 이유로 인하여 고전파 부르조아 경제학자들은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가치형태, 즉 교환가치를 끌어내지 못하였다. 그들은 가치형태를 상품의 본질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외부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했다. 바로 이 가치형태의 탐구에 실패했기 때문에 부르조아 경제학자들은 화폐의 본질과 기능을 이해할 수 없었다. 리카아도는 노동가치론이 자본주의를 분석함에 있어서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올바르게 지적하면서, 모든 중요한 경제학적 범주들을 이러한 공통의 토대로 환원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리하여 임금과 이윤이란 노동에 의해 창조된 가치의 두 부분이며, 그들의 운동은 사오대립적임에 주의함으로써 리카아도는 사실상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해가 서로 대립적임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고전파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은 노동자 자신의 노동력이 아니라 노동을 판매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노동가치론의 관점에서 이윤이 전유되는 방식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할 수 없었다. 잉여가치와 이윤이 동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리카아도는 가치법칙과, 동일한 자본량에 대해 동일한 이윤이 얻어지는 경향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해결할 수 없었다. 고전파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은 『자본론』의 분석을 위한 초석을 제공했다. 마르크스는 지도적인 중농주의 학자였던 케네에 의해 작성된 경제표를 천재의 머리에서 나온 결과라고 칭찬했다. 이것은 추상적인 과학적 개념을 통하여 재생산과정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던 것이다. 자본의 구조를 논함에 있어 고전파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의 대표적 학자들은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의 차이를 인식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본이 생산관계의 표현임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자본을 화폐, 생산수단, 상품 등과 같은 물리적 형태와 동일시했다. 동일한 이유로 인하여 그들은 자본가에 의해 소유된 상품은 자본이고 왜 노동자에 의하여 소유된 상품은 소득인가를 설명하지 못했다. 사회적 생산물의 가치가 완전하게 소득으로 분해된다(아담 스미스의 명제)고 잘못 인식했기 때문에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주창자들은 자본주의의 일정한 모순들을 지적했다. 그래서 시스몽디는 소부르조아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대중의 궁핍화를 지적하고 경제공황이 불가피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과학에 있어서 낭만주의의 전형적 대표자인 시스몽디는 이러한 모순의 원인과 그것의 해결방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역사의 바퀴를 거꾸로 , 즉 소규모 생산으로 돌리려고 노력했다. 부르조아지의 정치권력의 장악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의 격화는 “과학적 부르조아 경제학의 조종을 울렸다”(마르크스, 『자본론』,제 1권, 25쪽). 과학적 요소로부터 멀어짐으로써, 고전파 부르조아 정치경제학 또한 속류적 요소를 포함하게 되었다. 이론가들은 뛰어난 통찰력을 얻기 위해 부르조아 사회의 이면을 보려고 항상 노력하지 않았다. 예를들어 속류적 요소로서는 임금은 노동의 가격이고 지대는 임금의 선물이라는 관념 등이 있따. 이러한 속류적 요소는 속류 부루조아 정치경제학에서 증폭되었는데 이들의 목적은 노동계급운동에 대항하는 투쟁에 기초를 제공하는 것에 있었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부패는, 근로인민의 이해를 최초로 대변했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공상적 사회주의」참조)이 근로인민은 자신의 전체 노동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만 하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변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함으로ㅆ, 노동가치론을 부르조아지에 대항하는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가속화외었다. 현대 부르조아 경제학자들은 속류적 요소를 강조하여, 노동가치론의 발전과정에서 고전파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이 이륙한 업적을 매장하려 노력하고 있다. 몇몇 비평가들은 고전파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의 대표적 학자드이 자본주의의 모순이나 근로인민의 생할수준의 악화에 대해 전혀 서술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고전파 부르조아 이론과 마르크스의 사상을 대립시키려고 노력한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리카아도로부터 노동가치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믿으면서 속류 경제학자들이 한때 리카아도를 비판했던 동일한 방식으로 마르크스를 비판한다. 동시에 ‘신고잔파 종합’을 주장하는 몇몇 경제학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국가적 생산물의 미시경제적 분석의 현대적 방법과 고전파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의 원리인 소득분석을 결합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속류적 요소가 포함된다. 어느 정도, 이러한 모든 경향은 현대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의 위기를 증언하는 데, 이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엥 대항하는 투쟁의 수단을 찾는 과정에서 고전파 부르조아 이론으로 복귀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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