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 의견바로가기

[정종명(鄭鍾嗚, 1896~?) (여성)] ()

(고려공청 회원, 權友會 중앙집행위원장) 서울의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1906년 배화여자학당에 입학했으나 4년 만에 학자금 사정으로 중퇴했다. 1912년 결혼했으나 2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한때 기독교 전도부인으로 활동했다. 1917년 경제적 자립을 위해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소에 입학하여 재학중 처우 개선을 내걸고 동맹휴학을 주도했다. 1919년 이갑성(李甲成)의 부탁으로 3 ․ 1운동 관계서류를 보관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1920년 정식 간호부가 되어 개인병원에서 일하면서 조선총독부의학교 조산부과를 다녔다. 1년 만에조산부 자격을 취득하여 조산원을 열었다. 1922년 4월 조선여자고학생상조회를 결성하고 간부가 되었다. 1923년 여름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했고 1924년 4월 조선여자고학생상조회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5월 사회주의 여성사상단체 여성동우회 결성에 참여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그해 말경 사상단체 북풍회에 가입했다. 이즈음 북풍회 기관지 「해방운동」기자가 되었고 1925년 4월 조선기자대회에 참석했다. 1926년 4월 사상단체 정우회(正友會) 결성에 참여하고 11월 상무집행위원을 지냈다. 이 무렵 천두상(千斗上)과 결혼했다. 1927년 5월 근우회 창립을 주도하고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1928년 7월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고 1929년 6월 신간회 복대표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조선좌익노조전국평의회조직준비회 상무위원, 조선부녀총동맹 중앙위원) 1930년 8월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가입했고 이 무렵 근우회 해소를 주장했다. 1931년 3월 조공 재건설준비위의 변경체인 조선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조직준비회 결성에 가담하여 중앙상무위원 및 부인부 책임자가 되었다. 같은 달 이 조직 성원들에 의해 개최된 조선적색구원회 발기회에서 서울지역 책임자로 선임되었다. 4월 메이데이를 앞두고 예비검속되었다가 비밀활동이 드러나 구속되었다. 1934년 6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1935년 7월 만기출옥했다. 1945년 12월 조선부녀총동맹 결성대회에 함남 대표로 참석하여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7년 북조선민주여성동맹 간부를 지냈다.
■ 인접어

정인철(鄭寅喆, 생몰년 미상)
정일광(鄭一光, 생몰년 미상)
정일무(鄭-武, 1897~?)
정재달(鄭在達, 1895~?) 田友 趙東鎭 미로노프(Миронв)
정재철(鄭載轍, 1907~?) 鄭載鳳 沈仁燮 金海喆 富永載轍
정종명(鄭鍾嗚, 1896~?) (여성)
정종명(鄭鍾嗚, 1896~?) (여성)
정진무(鄭晉武, 1882~?) 鄭晉文
정창섭(鄭昌燮, 1905~?) 車相允 石如 金一槿
정창세(鄭昌世, 1907~?)
정창세(鄭昌世, 1908~?)

뒤로
■ 의견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모바일버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