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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culture)

문화는 이 말을 통하여 동시에 이데올로기로 이야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맑스적 고유 개념은 아니다. 결국 이 개념은 대부분의 맑스주의자들에게 특히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그것은 즉 '예술을 위한 예술' 의 개념을 변호하는 경우이든, 아니면 전혀 색다른 사용법으로 인류학에서의 유물론적 접근을 거부하는 경우이든 그러한 반감을 가지게 했다(Sahlins 1976).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학과 그리고 좀더 일반적으로 문화적 문제에 관하여 행해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논의의 대부분은 맑스주의자들에 의한 것이었다. 더욱이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의 전반적 구상 속에는 결정적인 문화적 영역이 있으며,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관한 모든 문제는 이미 몇몇 필자도 지적했듯 "문화주의적" 맑스주의라는 두드러진 사조로 일컬어질 정도로 서구 맑스주의의 중심 문제가 되어 왔다.
이미 우리는 문화라는 용어가 가질 수 있는 극단적 정반대의 두 가지 사용법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그 하나는 미학적 영역, 특히 예술과 미학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의 영역을 지칭한다. 또 다른 하나는, 때때로 의미와 가치 등에 근거한 이상적 방식으로 해석되는, 한 사회의‘삶의 전반적 방식’을 지칭하는 인류학적 용법이다. 결국 이상 두 극단 사이의 어딘가에서 우리는 문화는 객관적 정신 또는 관념의 영역이며, 또 인간 제도의 구체적 표현으로서 나타난다고 한 독일 관념주의 사상에서 거의 완벽하게 표현된 일련의 의미들을 발견한다. 여기서 '문화' 는 교육과 발전의 원초적 의미 즉, 교양(Bildung)을 함축하는데, 때로는 문명과 동일한 것으로, 그러나 때로는 좀 더 심오한 것으로서 이것과 구별되지만, 거의 언제나 긍정적 평가를 제공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다양한 용법들이 관습의 서로 다른 측면의 분리―미학적 산물의 분리된 영역 또는 고유한 논리로서 관념이나 가치의 분리된 영역―를 의미하는 한, 대부분의 맑스주의자들은 당연히 그 스스로를 이러한 용법 가운데 그 어떤 경우와도 동일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맑스주의적 용법이나 비맑스적 용법 모두에게서 문화의 개념은 이러한 차이들을 구별하려는 시도라고 표현할 수 있고, 맑스적 사고에서는 관념, 그리고 실천의 다른 측면이나 조건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유물론적 설명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잘 알려진 맑스의 비교―'가장 서툰 건축가'(적어도 자신의 건축물을 설계하는)와 '가장 훌륭한 꿀벌'(《자본론》, 제Ⅰ권 5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바로 그것이 문화라고 하겠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문화 개념은 의식적 존재로서 의식 개념의 중심에 위치하는데, 의식이란 사태의 현존하는 상태와의 밀접한 관계이며, 더 나아가서는 사태에 내포된 현재 상황을 변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건으로서도 간주된다. 이 말은 맑스주의의 원초적 형식에서 경제적 구조의 반영인 동시에 계급적 투쟁에서의 선전 도구라는 역설적 이중의 문화 개념을 야기한다. 이 점은 한편으로는 인식의 '반영' 이론(인식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단순한 반영에서 나타난다는 이론) 및 사실주의적 미학과, 다른 한편으로는 지적 생산의 도구적 개념 사이의 어딘가에 고려가 풀리지 않는 공존성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 당시의 상황에서 이러한 도구적 태도는 레닌의 문화혁명 개념에서, 그리고 새로운 노동자계급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프롤레트쿨트(Proletkult) 운동에 대한 논박에서 가장 두드러진 주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프롤레트쿨트 운동은 확실히 당파적이지만, 레닌과 트로츠키는 이것을 부적절하고 반생산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에게 사회주의 문화의 출현이란 실로 장기간에 걸친 전망으로 나타났는데, 그 기반은 교양과 교육의 확장과 동시에 시민계급 문화에서 유용한 것(마치 테일러 주의와 같이 작업 조직의 보다 진보된 방법을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처럼)을 취해서 받아들이려고 했던 새로운 사회주의 인텔리겐차의 창출에 의해서만 정착될 수 있는 문제이었다. 문화혁명 개념은 동독에서 채택되었고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1950년대에 채택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1960년대의 문화혁명은 레닌의 반박 내용 이상으로 급진적인 방법으로 부르조아 문화를 공격하였다.
미학적 문제에 대하여 보수주의적임에도 불구하고, 레닌의 문화혁명 개념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토론에 두드러진, 매우 광범위한 문화 개념의 논지를 정착시켰다고 할 수 있다. 소련에서는, 교양으로서의 문화의 초창기에 사용된 미와 가까운 방법으로, '삶의 방식' 의 개념과 연결된다(예를 들어 동독의 헌법은 문화가 아닌 '물리적 문화, 체육 그리고 관광'을 '사회주의 문화의 요소들' 로 포함시킨다).
서구 맑스주의는 일반적으로 루카치와 그람시에서 시작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시작은 문화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져오게 된 그 이후의 전통을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전통은 너무나 풍부한 면이 있기 때문에 그들 양자를 이 분야에서 이루어진 모든 작업의 창시자로까지 보기는 힘들다. 루카치는 독일의 신칸트학파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1920년의 논문 '낡은 문화와 새로운 문화' 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전통에서,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짐멜[Simmel] 로부터 추론된 문화 개념의 맑스주의적 재구성이다. 루카치는 '삶의 직접적인 수단의 관계에서 별로 필요하지 않은 능력과 가치 있는 생산물의 총화(앙상블), 예를 들면 집의 견고성과 보호성과는 대조되는 집의 아름다움' 같이 문명과의 대조로 문화를 정의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문화는 판매를 위한 자본주의적 생산에 의해 파괴되고, 또한 '문화의 사회학적 선결 조건이 그 자체로서 이미 목적이 되는 인간' 인 까닭에 현재로서는 그 모습을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문화는 사회주의의 도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루카치의 후기 작업은 대부분 미학에 관한 것이었다. 게다가 《역사와 계급의식》은 유럽 부르주아의 물화된 사유 형식과는 달리 노동자계급적 세계관의 발전에 관심을 집중시킨 셈이다.
루카치의 초기 저작들은 사상사와 문학 사회학에 관한 골드만의 연구의 토대가 되었고,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그리고 마르쿠제가 주요 구성원이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아도르노는 벤야민과 브레히트와의 의미 있는 교류에도 관계하였다. 아도르노의 미학은 대체로 가장 발달된 것이지만, 그는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와 함께 프로이드의 용법에 상당히 의존하는 광의의 문화 개념을 사용하였다. 특히 마르쿠제가 이루어 놓은 정형화는 극히 전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의 역사적 과정 안에서 정신의 내용을 표현하는…일반적인 문화 개념이 있다. 관념 형성의 재생산의 영역(문화, 좁은 의미에서의 '관념 세계')과 물질적 재생산('문명')이 모두 역사적으로 구별가능하고, 파악 가능한 동일성을 이루는 한, 일반적인 문화 개념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의 사회적 삶의 총체성을 의미한다.(1968, p.94)

이러한 의미에서의 문화는 독립적인 것으로 보여지지 않으며, '그것 자체와의 관계에서' 이해되지 않지만,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구조의 단순한 반영으로 이해되지도 않았다.

비평의 임무는 문화적 현상을 특정한 이익 집단의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현상 안에서 표현되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강력한 이익이 실현되는 일반적인 사회적 경향을 판별하는데 있다. 문화 비평은 사회적 관상학이 되어야만 한다.(같은 책, p.30)

상품의 물신숭배, 그리고(특히 아도르노에 의한) 물화라는 용어로 분석된 그러한 문화는 두 가지 주된 형식으로 나타났다. 그 중의 하나는 마르쿠제가 '긍정적 문화'라고 칭한 것이다. 부르주아 세계에서의 긍정적 문화는, 맑스가 종교란 '억압받는 자의 한숨, 비정한 세계의 양심, 무정한 상황 속의 넋, 그것은 인민의 아편이다'(《헤겔 법철학 비판》서문)라고 한 것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마르쿠제는 :

긍정적 문화는, 그 자신의 발전 과정에서 문명보다 우월한 것이라고 간주되는 가치의 독립적 영역인 정신적 내지 관념적 세계의 문명으로부터 이탈하도록 유도하는 부르주아 시대의 문화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그 결정적인 특징은 보편적으로 강요되고 궁극적으로 좀더 나은, 그리고 보다 가치 있는 세계(무조건적으로 긍정되어야만 하는)에 대한 단언인바, 그 세계는 생존을 위한 일상적인 투쟁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고 더욱이 사실의 어떠한 변형도하지 않은 채 모든 개인 스스로에 의해 '내부로부터' 실현이 가능한 그러한 세계이다(같은 책, p.95).

따라서 문화, 그 중에서도 특히 예술은 모호한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억제된 자유와 행복의 욕구를 고무하지만 그것들을 환상의 영역으로 내던지며 따라서 '반항적인 욕구를 진정시킴'(같은 책, p.121)으로써 현상을 고착시킨다. 아도르노가 후에 논의하듯이, 이 문화 개념은 통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전통적 시민계급 문화가 적어도 어느 정도의 초월성을 견지했다면, 이것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공저한《계몽의 변증법》(1947)에서 분석했던 '문화 산업' 에는 결여되었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미학적’산물이 아닌 인격의 영역에서 상품 원리는 그 극단에까지 이르는데,‘빛나는 하얀 이, 그리고 체취와 정서로부터의 자유 이상의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p.167). 마르쿠제는‘고급 문화’의 붕괴로서 문화의 상품화의 이러한 과정을‘물질적 문화’로 보았고, 이 과정에서 그러한 상품화는 비판적 잠재력을 상실하게된다. 문화는 섹스와 같이 비하된 형식(1964, 3장)으로 보다 접근하기 쉬워진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가장 급진적 비판론이 바로 또 다른 상품으로 귀착되었는바, 마르쿠제의《일차원적 인간》은 상업적인 면에서 상당한 성공작이었다. 참된 새로운 문화를 개발하려는 어떠한 시도도(마르쿠제는 그 가능성에 대하여 아도르노나 호르크하이머보다도 낙관적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린 듯이 보인다.
비판 이론의 제2세대 지도자격인 하버마스는 문화의 문제에 그리 많지 않은 관심을 나타냈지만, 그는 현대 문명의 정당성을 분석하는 데 있어 점차 이 문제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합리화된 사회적 과정이 상식적인 이해로부터 점차적으로 벗어난다는 문화현대성 개념을 개발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이전의 비판 이론가들이 밝힌 것보다 일반적이고 강력한 과정의 분석을 제공할지도 모른다.
문화 비평론의 독일적인 전통에서 볼 때 루카치의 맑스주의적 재구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지극히 분명한 노선이 있다면, 헤게모니보다는 힘에 의한 부르주아 지배가 보다 적은 사회에서의 사회주의적 정치의 문화적 차원을 주제로 한 그람시의 강조가 널리 확산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윌리암스나 알뛰세와 같이 다양한 동시대의 맑스주의자들에게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문화에 대한 초점은 영국에서 가장 분명한데, 이는 윌리암스 [Williams], 사학자 톰슨 [E. Thompson], 호가트 [R.Hoggart] 에 의해 세워진 현대문화연구소의 구성원들의 작어에서 보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방법에 대하여 프랑스 구조주의의 근거에서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상부 구조적 현상에 대하여 비록 상이하게 형성되기는 했지만 동등한 관심을 갖고 있다(Eagleton. 1976 and Johnson, in Barrett et al. 1979). 이것은 프랑스의 부르디외[P.Bourdieu]와 그의 동료들이 중요한 작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상징적이고 문화적 자산의 개념을 교육적 체계와 정치에서는 물론, 좁은 의미에서의 '문화적 소비'에서의 계급 관계의 재생산을 추적하는 데서도 사용한다(Bourdieu and Passeron 1970, Bourdieu 1979). 또한 제국주의는 문화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현상으로 이해되었다. 여기서 선진국의 텔레비전, 책, 잡지, 그리고 통신사의 실제적 독점은 자원의 잘못된 편재를 고무하는 소비 문화에, 그리고 생산의 범위 안에서 서구의 '기업 문화'에 제 3 세계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의 한 측면일 뿐이다(Schiller 1976).
서구의 맑스주의가 이데올로기나 문화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든, 또는 의미와 묘사라는 더욱 광범위한 개념으로 나타난 것이든, 상부구조에 대한 편향된 선입견을 얼마나 지니고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오늘날 생산과 재생산의 상호관계에 대한 의식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또한 맑스주의자가 '자본 K를 갖는 문화'라는 용어로서보다는 오히려 주어진 생산 양식 안에서 문화적 생산과 재생산의 복잡한 메커니즘이라는 말로 문화를 이해해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관련자료]
adorno, Theodor 1955(1967): Prisms. -and Horkheimer, Max1947(1972): Dialectic of Enlightment.
Barret< Michèle et al. eds. 1979: Ideology & Cultural Production.
Bourdieu, Pierre 1979: La Distinction.
-and Passeron, Jean-Claude 1970(1977): Reproduction in Education, Society and Culture.
Eagleton, Terry 1976: Criticism and Ideology.
Freud, Sigmund 1927: The Future of an illusion.
-1930: Civilisation and its Discontents.
Goldman, Lucien 1971(1976): Cultural Creation.
Lukács, Gyorgy 1920(1970): 'The old Culture and the Ne Culture'.
-1923(1971): 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
Marcuse, Herbert 1964(1968): One Dimensional Man.
-1968: Negations: Essay in Critical Theory.
Sahlins, Marshall 1976: Culture and Practical Reason.
Schiller, Herbert 1976: Communication and Cultural Dom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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