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논(論) :
코민테른 강령 : 제국주의 시대에는 계급투쟁의 첨예화와 내란의 제 요소의 증대 —— 특히 제국주의적 세계전쟁 후에 있어서——가 의회주의의 파산으로 이끌었다. 여기에서 지배의 ‘새로운’ 방법과 형태가 태어난다. 특수한 역사적 조건 하에 서는 부르주아적・제국주의적 반동의 공세과정이 파시즘 형태를 취한다. 이러한 제 조건은 자본주의적 제 관계가 불안정한 것, 계급에서 탈락된 분자의 숫자가 현저하게 존재 한다는 것, 도시 소부르주아와 지식계급과의 광범한 층이 궁핍화하고 있다는 것, 농촌 소부르주아지가 불만을 품고 있는 것, 끝으로 프롤레타리아적 대중행동의 끊임없는 위험이 있다는 것 등이다. 파시즘은 사상적으로는 ‘거국일치(擧國一致)’와 ‘직업’대표제(원래 지배계급 제그룹의 대표제)라는 가면을 쓴 부르주아지의 직접적 독재 방법이다. (국제 공산당 강령, 1928, 코민테른 제6회 대회 제46차 회의에서 채택, 현대사 자료14, p.222).
스탈린 : 호전적인 부르주아 정치인들 사이에서 바야흐로 파시즘이 최신유행처럼 되고 있는 것은 놀랄 것이 못된다. 내가 말하는 것은 파시즘 일반만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우선 독일형 파시즘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부당하게도 국가사회주의라고 불리운다. 부당하게라고 표현한 것은 아무리 주의 깊게 조사해 보아도 이 속에서는 사회주의 요소란 단 한 원자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에서의 파시즘의 승리를 노동자계급이 나약하다는 증좌이고, 또 파시즘에게 길을 열어주면서 노동자계급을 배신한 사회민주당의 행위의 결과라고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부르주아지가 나약하다는 증좌, 즉 부르주아지가 의회제도와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낡은 방법으로써는 이미 지배할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로 국내정치에서는 테러리스트적 지배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징후로서 —— 그리고 부르주아지가 평화적인 대외정책에 입각해서는 이미 현 정세로부터 활로를 찾을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로 그들이 전쟁 정책을 취해야만 하게 된 징후로써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소련공산당〈볼〉 제17회 대회에 대한 중앙위원회의 활동보고, 1931, 스탈린전집 제13권, P. 319).
트로츠키 : 국가사회주의(파시즘)의 거대한 증가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즉, 심각한 사회적 위기가 소부르주아 대중을 그의 평형상태로부터 돌출하게 한 사실과, 바로 현 정세 하에 인민 대중에게 혁명적 안내자로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혁명정당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공산당이 혁명적 희망의 정당 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대중운동으로서의 파시즘은 반혁명적 절망의 정당인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혁명적 희망을 안고 있을 때는 당연한 일로서 소부르주아지를 비롯하여 항상 증대되어가는 계층까지도 혁명에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점에 있어서 선거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반혁명적 절망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많은 계층까지도 소부르주아지에게 끌릴 정도로 그것은 강대하였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과거에〔이탈리아와 독일에서〕파시즘의 급격한 강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제1차대전 말기와 종전 직후의〕 혁명적 위기가 사라진 다음 고갈되어 버렸거나 혹은 이용되지 않았던 혁명적 정세의 결과 때문이었다. 이 혁명적 위기에는 프롤레타리아의 전위가 소부르주아지와 전계급의 운명을 변혁시키기 때문에 국민의 선두에 나서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것이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에게 이상한 힘을 가져다 준 원인이다. 그런데 오늘날 독일에서의 이런 사태는 혁명적 위기 이후가 아니고 그런 위기의 접근시기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전환과 독일정세, 1930, 트로츠키선집 제7권, pp. 6〜7).
독일 파시즘은 이탈리아 파시즘처럼 노동자계급의 제조직 및 민주주의 조직들에 대한 공격력으로 전환한 그런 소부르주아지에게 업혀서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권력의 자리에 오른 파시즘은 전혀 소부르주아지의 정부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독점자본의 가장 무자비한 독재 정권이다. (국가사회주의란 무엇인가, 1933, 트로츠키선집 제7권, p. 437).
부르주아지는 사회를 완전히 파산에로 이끌었다. 부르주아지는 이미 인민을 위해 빵도 평화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부르주아지가 이 이상 민주적 질서를 이미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부르주아지는 물리적 폭력의 도움을 빌려서 노동자를 깔아뭉개야할 필요성에 몰려 있다. 그러나 경찰의 힘만으로는 노동자나 농민의 불만을 쳐부술 수 없다. 인민을 향하여 군대를 진군 시키는 것, 이것은 대개의 경우 불가능하다. 군대는 분해되기 시작하고 이 분해는 병사의 대부분이 인민 쪽으로 옮겨가는 것에 의해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자본은 이제 마치 어떤 종류의 개(犬)로 하여금 수확물을 향하여 덤벼드는 훈련을 받게 한 것처럼 노동계급을 향해 덤벼드는 훈련을 받게 한 특수무장집단을 창설 할 필요성에 몰려 있는 것이다. 파시즘의 역사적 의미는 민주적 기구로써는 자본에 의한 지도도 지배도 확실히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노동자계급을 압살하고, 노동자의 조직을 파괴하며, 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데 있다. 파시즘은 이의 인적자원을 특히 소부르주아지 속에서 구한다. 소부르주아지는 대자본에 의해 최종적으로 파산당한 것이다. 현재의 사회체제 하에서는 소부르주아지를 구원할 길이 없다. 그들의 불만과 반항과 절망감을 파시스트들은 대자본을 비껴서 노동자에게 향하게 한다. 이것은 파시즘의 최대의 적을 쳐부수는데 이용할 수 있도록 소부르주아지의 뇌수를 비틀어 버리는 일종의 탈구(脫臼)수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대자본은 우선 중간 계급을 파멸시키고, 그다음에 그의 비병(備兵)인 파시스트 데마고그를 써서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려 떨어진 소부르주아지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덤벼들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어디로 가는가?, 1934, 트로츠키선집 제8권, pp. 5〜6).
흐루시초프 : 지금도 제국주의자들은 자유・평등・박애의 슬로우건을 계속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더욱 공공연한 독재로 옮겨가고 있다. 자본주의 제국에서는 반동과 파시즘이 밀려오는 불길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 반동적인 길에 서있는 것이 서독이다. 거기서는 공산당이 금지되고, 민주주의 세력은 박해를 받고 있는 반면 파시스트 및 보복주의자의 조직에는 완전한 자유가 부여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공공연한 독재로의 방향이 결정되어 인민대중의 민주주의 권리와 민주적 획득물이 짓밟히고 있다. 민주주의적 전통으로 단련된 프랑스에 반동의 물결이 밀려 왔다는 것은 모든 민주주의 및 진보의 옹호자에게 불안감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파키스탄 및 태국에서의 군부 쿠데타는 민족독립을 쟁취한 제민족의 민족적 획득물에 공격이 가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반동세력은 기타 일련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날 이탈리아 및 독일에서 파시스트 독재가 수립되었던 시대처럼 지금 독점 부르주아지가 공공연하게 독재경향으로 전화하고 있는 것은 부르주아지가 강력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약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하등 제한을 받지 않는 독재의 제 조건하에 반동세력이 탄압과 공포정치로서 온갖 반정부운동을 억압하고, 자기들에게 필요한 정신으로 대중을 재교육하며, 배외주의의 독소를 대중에게 감염시켜 군사적 모험을 멋대로 감행할 보다 커다란 가능성을 갖게 된다는 것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각국 인민은 경계심을 가지고 항상 반동의 공격과 파시즘의 부활위협에 반격을 가할 준비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기백만의 사람들이 머리에 그리는 파시즘은 히틀러와 뭇솔리니의 이름을 연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파시즘이 인민으로부터 악평 받았던 이전 형태하고는 또 다른 형태로써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강력한 사회주의 진영이 존재하며 노동운동이 반동과 투쟁한 커다란 경험을 가졌고, 노동자계급의 조직성이 높아진 오늘날, 각국인민은 파시즘을 저지 하는데 보다 커다란 가능성을 갖고 있다. 우리는 파시즘에 대항하여 가장 광범한 인 민층을, 진정한 민족적인 민주세력을 모두 결집시킬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점에 있어서는 좁은 종파주의를 철저히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종파주의는 반동과 파시즘에 대한 투쟁에서 대중동원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 민주세력의 통일, 우선 제일먼저 노동자계급의 통일이야 말로 파시즘을 저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벽이다. (1959〜1965년 소련국민경제발전 목표숫자에 대하여, 소련공산당 제21회 대회 제1분책, 합동출판사, 동경, pp. 116〜117).
툴리아치 : 파시즘은 구체적인 특수한 반동의 한 형태이다. 따라서 그 구체성, 특수성이 어떤 점에 있는가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파시즘에 대하여, 1928, 틀리아치선집, p.56).
그것 (파시즘)은 우선 지방 소부르주아 대중의 운동을 포함하고 있었다. 중소부르주아의 일부 대표자가 낡은 지도계급들의 일부에 대해 실시한 정치투쟁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각종 계급 탈락자들(퇴직관리, 실업한 지적 직업인)에게 지도되고 있던 도시 소부르주아지의 일익을 결집시켰다. 전국적 규모의 통일조직을 만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국가의 정규군에 대항하여 승리할 수 있다는 하나의 군사조직이기도 하다. 파시즘은 자본주의적 반동이라는 것 이외에도 이러한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발전도 필연적으로 복잡 하지 않을 수 없다...... 파시즘이라는 현상이 복잡하다는 것은 이 운동이 정밀하게 부르주아지 및 지주가 지향하는 목적에 따라서 진전하는 것을 허용치 않으며, 또 성격이 다른 동기와 충격이 이 운동자체 내부에서 생겨나 거기에 영향을 주었고, 몇몇 시점에서는 이 운동을 지배하려고까지 하였기 때문이다. (동상, P.57).
우선 첫째로, 파시즘은 일정한 발전단계에 도달한 자본주의 제국에 지금까지 존재 하던 반동체제 중 가장 철저한 종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의 종파성은 그의 기초에, 광폭한 테러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많은 노동자・농민을 살해한 것에 있는 것도 아니며, 광범하게 적용된 고문방식의 참혹성이나 재판의 가혹성에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주장은 파시즘이 모든 형태의 대중적 자주조직을 체계적・전면적으로 억압 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동상, P. 59).
그러므로 이렇게 해서 생긴 파시즘의 반동성은 무엇보다 먼저 경제적 필연성의 표현이고 생산관계분야에서 그 뿌리를 더듬어 보지 않으면 안 되는 한 과정의 표현인 것이다. 이탈리아 자본주의의 경향이 다만 반동화 했을 뿐만 아니라(그것만이라면 제국주의 시대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경향이다) 처음에 파시즘을 이용하고, 다음에 파시즘과 일체화하는 방향으로 향한 원인은 바로 이 나라 자본제의 특수구조와 그 자본제가 겪고 있는 위기의 구체적 측면에 있는 것이다. 파시즘이 이탈리아에 출현한 것과 같은 전형적인 형태가 다른 나라에도 성립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그 나라의 자본주의 체제, 그 나라의 생산관계와 계급관계 등을 사전에 면밀히 분석하지 않고는 예견할 수 없다. (동상, P.61).
파시즘은 다만 자본주의적인 반동의 한 형태로서만이 아니고 봉건잔재와 중세왕권제, 종교적 열광주의, 예수회와 종교재판소 등의 기사(騎士)로써의 반동적 특권계급과 특권 귀족계급으로 군림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요컨대 국가의 진보를 방해하고 그 경제생활의 발전을 저지하는 기사(騎士)가 되어 스페인에 출현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파시즘은 대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은폐하기 위해 사회적 데마고그를 쓰고 있다. 그것은 최후단계에 도달한 자본주의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데마고그에 의해 은폐되고 있는 적나라한 폭력의 대표이며 전반적으로 혐오의 표적이 되어 있고 부패와 연결된 사회질서의 대표이기도 하다. (스페인혁명의 특수성, 1936, 틀리아치 선집 1, p.240).
소련공산당 강령 : 권력을 잡은 파시즘-----그것은 금융자본의 가장 반동적인, 가장 배외주의적인, 가장 제국주의적인 분자들의 공공연한 테러 독재이다. 파시즘은 어디서나, 언제나, 노골적인 반공주의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당을 고립시켜 분쇄하고, 프롤레타리아트 세력을 분산시켜 그것을 각개 격파한 다음에 다른 모든 민주적 정당과 단체를 정리하여, 인민을 자본주의 독점체에 순종하는 도구로 삼으려 하기 때문에 반공 슬로우건을 먼저 내세운다. 파시즘은 그의 타격목표를 제일먼 저 노동자계급과 전체 근로자의 이해(利害)를 시종일관 확고히 지키고 있는 공산당에게로 돌린다. (소련공산당 강령, 1961, 프로그레스출판소, 모스크바, 1967, 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