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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 獨 Schönheit, das Schöne 英 Beauty 佛 Beauté ))

1) 미와 미적(美的)의 의미

‘아름답다’라는 형용사가 일상적으로 입에 오르게 되는 경우 그것의 적용범위는 매우 넓다. 특히 이 말에 해당되는 독일어의 형용사 ‘schön'은 사물ㆍ행위ㆍ사상ㆍ말ㆍ마음씨, 때로는 실험ㆍ증명ㆍ저작 등에까지도 사용된다.󰡐미󰡑라는 것이 이와 같이 광범위한 대상과 영역에서 이야기되는 것은 그리스어, 라틴어 pulcher, beatus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근대 유럽어의󰡐아름답다󰡑란 형용사가 ‘훌륭한’ㆍ‘우아한’ㆍ‘고결한’ㆍ‘돋보이는’과 같은 의미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그러한 성질을 가진 대상에서 비롯되어 나오는 일체의 감각적 또는 정신적 ‘즐거움’을 대상에 따라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보통 ‘아름답다’라는 표현에는 선ㆍ 참됨ㆍ유익함ㆍ쾌적함 등의 여러 가치가 본래 의미의 ‘미’의 가치와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것들은 미의 문제를 한층 깊게 고찰해 갈 때 항상 밀접한 관계를 갖고 나타나게 되는 가치개념이다.
그런데 ‘아름답다’(schön)라는 말이 통속적으로는 본래의 ‘미’ 이외에도 매우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이 말이 미학에서 다루어지는 대상영역을 포괄할 때는 그 의미가 좁아진다. 예를 들면 숭고하고 웅장한 것, 비극적인 것, 희극적인 것 등은 보통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러나 ‘미’와 근본적으로 상통되는 본질ㆍ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미학적 고찰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학에서는 연구해야 할 가치현상의 전 영역을 포괄하기 위하여 ‘미적’(das Ästhetische)이란 개념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원래 그리스어인 (지각하다), (감각적인)에서 유래하는 말인데,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ästhetisch 란 말에서 “단순한 직관에 기초하고, 개념적 사유의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즐거운”이란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가지고 자연과 예술의 미와 숭고를 포괄한 이래, 미학의 중요한 용어로 되었던 것이다. 어원적 의미로 보면 직접체험에서 성립하고 직감적인 가치인 미적 가치를 표시하는 데 적합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적’에 대해 ‘미’(das Schön)는 하위개념이고, 또한 숭고ㆍ우미ㆍ비장ㆍ골계ㆍ유머 등과 동렬에 위치하는 하나의 미적 범주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들 범주 중에서도 조화적 성질이 가장 두드러지고 순수하게 쾌감을 주는 것으로, 미적인 것의 특색을 최고조로 나타내는 전형적인 형태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는 내포적 성질에서는 ‘미적’과 일치하고 있으며, 미학에서는 그 개념을 보통의 의미보다도 확대하여 모든 미적 범주를 총괄하고 있다. 이렇게 넓은 의미의 ‘미’와 ‘미적’은 모두 그 본질상 감각적인 것 외에도 일종의 정신적인 독자적 가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실제로 이 개념이 미적 가치의 담지자인 대상의 측면에 중점을 두어 파악되는 경우와, 미적 가치를 체험하고 창조하는 주체의 작용의 측면에 중점을 두어 파악하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고, 미학의 입장과 학설에 따라 객관적 해석과 주관적 해석이 구별된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형용사의 용법에서 볼 때, ‘아름답다’(schön)는 오직 예술품, 기타의 대상을 형용하고 서술하는 경우에 쓰이며, ‘미적’(ästhetisch)은 오히려 관조나 향수의 작용에 쓰인다.

2) 미의 영역

(1) 미적 현상영역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고, 미(미적인 것) 자체의 성격에 의해 여러 가지 미적 범주로 나누어질 뿐 아니라, 그 소재의 대상적 구별에 따라서 한층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미(das Naturschöne, das Naturästhetische)와 예술미(das Kunstschöne, das Kunstästhetische)의 구별이다. 전자는 자연의 현실적인 사물에서 발견되는 미이며 통속적인 용법으로 비인간적 대상의 미, 예를 들어 풍경의 미와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비해, 미학에서는 예술미에 대립되는 인간ㆍ인간의 일상사ㆍ역사ㆍ사회 등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현실 생활 속에서 체험되는 미를 총칭한다.〔다만 미학상에서도 샤슬러나 E. v.하르트만과 같이 자연미를 좁은 의미로 해석하고, 그 외에 인간미(das menschlich Schöne)또는 역사미(das geschichtlich Schöne)를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이것에 비해 예술미는 예술적 산물에 귀속되는 미인데, 이것은 예술의 본질상 인간이 미적으로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려는 의도에서 자연히 부여한 소재를 가공하고 형성함으로써 성립된다. 자연미와 예술미가 똑 같이 미(美)인 한은 양자가 궁극적으로 합치되고 하나로 귀착되어 통일적 원리 속에 포괄될 수 있는 것이기는 해도, 존재하는 대상의 상이함에 따라서 양자가 구별됨은 대체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
한편 예술은 단순한 자연과는 달리 넓은 의미의 기술에 속하고, 미적 가치가 있는 것을 만드는 기술(미적 기술)이기 때문에, 예술에서 고유미는 일종의 기술미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본래의 예술품 이외의 기술적 공작물〔기계ㆍ도구ㆍ건물ㆍ교량ㆍ도로 등]도 보통 일종의 미적 효과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러한 미를 기술미(das Technisch ― Schöne)로 구별할 수 있다. 이것은 근대 공업적 생산기술의 놀라운 발달과 함께 점차로 주목받기에 이른 것인데, 그 미학적 설명도 일정치는 않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미와 예술미의 중간에 위치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기술적 생산물은 실용적인 공리성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인데, 그것이 하나의 질서와 법칙에 따라 낭비 없이 쓸모 있게 구성되어 기능을 충분히, 그리고 순수하게 발휘한다면 일종의 독자적인 미를 성립시킬 수도 있다. 콘의 설명에 따르면 공작물은 그것의 모든 부분의 합목적적 협력, 힘의 효과적인 이용, 가장 단순화된 수단에 의해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등의 모든 계기가 본래의 공리적 목적을 떠나서, 그 자체가 직관적으로 이해될 때 미로 성립되는 것이다. 귀요는 이와 같은 기술미를 생명체의 미에 비교하였고 우티츠는 기계가 그 구성상 인체와 유사한 기능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기능상의 공감에서 비롯되는 기쁨(Funktionsfreude)을 맛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 미를 설명했다. 이와 같이 기술미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능적ㆍ구성적인 미라는 점에서는 예술미에 가깝지만, 또한 공리적 목적성에 부합되어야 성립하는 것으로서 몰개성적인 법칙성에 복종한다는 점에서는 자연미와 공통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자연미와 예술미는 그 중간에 위치하는 기술미와 함께 무엇보다 감성적 현상에서 성립하는 미이지만, 미의 감각적 구상성을 사상한다면 고대 그리스인과 같이 미란 사물이 성립하는 존재적 근거로서 이데아(idea)적ㆍ누스적인 ‘초감성적인 미’, 즉 미 자체를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고대의 카로카가티아의 개념으로부터 근대의 ‘아름다운 혼’의 개념과 연관되는 도덕미(das Sittlch-Schöne, das Moralisch-Schöne)또는 미적 도덕의 이상도 인격적 존재 최고의 조화적 완성을 의미한다면 인간정신의 초감성적인 미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각적 현상성을 어디까지나 미의 본질적 조건으로 요구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도덕미라는 것은 도덕적 선이 행위의 직관적 형태로 구상화될 때 비로소 본래의 미로 된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최근에는 에어리히의 실존론적 미학과 같이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미와 예술미를 종합하는 인간적인 미를 ‘규범미’로 제시하여 이것이야말로 존재론적인 미라고 하는 주장이 있다.
미의 영역은 예술미 중에서도 특히 예술의 종류에 따라 건축미ㆍ조각미ㆍ회화미ㆍ음악미ㆍ문예미 등으로 구별할 수 있고, 또한 동일한 미적 대상 내지 예술품에서도 형식과 내용의 양면에 각각 대응하여 ‘형식미’(das Formschöne)와 ‘내용미’(das Inhaltschöne)가 구별되기도 한다. 전자는 ‘다양성 속에서의 통일’을 비롯하여 미의 형식법칙에 따라서 전체를 용이하게 파악하기 위해 질서 조화로운 형식에 따라 성립하는 것이고, 후자는 유기적이거나 정신적인 삶의 충실함이 이 내용에 걸맞는 형태로 현상하는 바에 따라 성립하는 것이다. 특히 형식과 내용 자체가 어떻든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 양자의 한 요인이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형식미와 내용미의 사이에 표현미를 자리매길 수도 있다.
(2) 앞서 이야기했던 미의 구별은 결국 미의 소재를 객체의 측면에 두는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미의 다양한 양상을 모두 하나의 초월적 원리 아래 총괄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즉, 미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생명의 충만감’, ‘의미 깊은 형식’, ‘직관적 완전성’, ‘완전무결한 존재’, ‘직관에 나타난 합목적성’, ‘현상에서의 자유’, ‘이념의 감각적 현상화’ 등으로 규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초월적 원리에 의한 미의 규정은 플로티누스적인 범신론에 기초한 미의 단계적 가치부여를 어떤 방식으로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플로티누스에 따르면 일자(一者)인 신성(神性)의 본질은 현상계에 널리 유출되어 여러 가지의 미를 나타나게 한다. 그리하여 존재자가 이러한 신적 근원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미는 감소하고, 최후 어두움의 극한으로 가면 추(醜)의 정문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적 단계를 칼리크라티(Kallikratie)라고 한다. 즉, 관조의 대상이 되는 여러 현상 중에서도 어떤 것은 아름답고, 어떤 것은 추하고, 또 어떤 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중간적인 것이다. 이들 표상을 모두 현실의 전면에 옮겨 놓으면 거기에서 미적 영역의 단계구조가 성립하게 된다. 플로티누스는 이렇게 나누어진 미의 각 단계를 존재성과 진리성의 각 단계에 대응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자연미ㆍ예술미 등 일체의 미는 모두 다 ‘일자’로부터 출발하는 누우스적 원리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에 뒤이어 모든 존재자는 어느 정도씩은 신성을 담고 있고, 현실의 로고스를 열어 보이는 한, 만물 모두가 미적인 것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세계관적 입장이 전개된다. 이것은 범미주의(Panästhetizismus)라고 불린다. 러스킨이 “미는 신의 완전성의 반영”이고, “이 신적 완전성을 현실 속에서 명확히 파악하고 재생산하는 자가 바로 위대한 예술가이다,”라고 했을 때는 바로 이러한 입장에 선 것이다. 칼리크라티가 미를 객체의 성격이라고 보는 데 비해, 범미주의는 미를 주관적 태도 위에 성립한다고 보는 사고방식이다. 양자는 플로티누스적인 체계로부터 동시에 출발하여 상호 보완하는 관계이다. 이 두 개의 입장에서 자연미와 예술미를 연속적으로 통일시킬 수 있지만, 미의 여러 양상들이 갖는 각각의 성격은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고, 미의 본질적 차이에 따른 확고한 질서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3) 미적 가치의 특질

(1) 미의 가치는 주ㆍ객 어느 일면에만 돌릴 수 없으므로, 한편으로는 대상의 형상과 형태에 의존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의 태도와 활동에도 의존한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이 서로에게 미적 가치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며, 또 그것의 높고 낮음을 규정한다. 따라서 미적 규범(ästhetische Normen)으로는 폴켈트와 같이 객관적이고 주관적 조건을 들 수 있다. 결국 미는 대상과 자아 사이의 긴장 관계에서 성립하며, 그 가치는 이 양면적 근거의 통일에 있다. 미학에서 여러 문제가 ‘객관ㆍ주관의 관계’(Objekt-Subjekt-Bez iehung)에서 고찰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미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체험된 대상은 주체의 의식을 초월하여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미적 대상은 인식대상과 달리 ‘즉자적으로 존재하는’(An Sich seiend) 것이 아니고 다만 ‘대자적으로 존재하는’(für uns seiend) 것이다. 그 밖에 다른 측면에서 미적 가치를 체험하는 우리들의 의식은 결코 그 대상으로부터 떨어져서 제멋대로 유동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대상에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의식이다. 일반적으로 의식은 ‘어떤 것에 대한 의식’(Bewußtsein Von etwas)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미의식은 특별히 ‘대상의 의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심리학적인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의식 대신에 미적 가치체험 또는 줄여서 미적 체험이란 말을 사용한다면 미적 체험은 다른 의미에서 ‘지향적’이며, 미적 가치는 의식의 작용과 그 대상과의 떨어질 수 없는 긴밀한 의미에서 파악해 볼 때 한 가지 뜻으로 규정된 상관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것에 불과하다.
(2) 미적 가치는 다른 여러 가치들과 비교해보면 그것의 독자적 성격이 좀 더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a) 그것은 우선 직접적 감각성에서 쾌적(das Angenehme)과 비슷하지만 이것이 전적으로 감각적이고 생리적인 쾌락이며 주관적인 가치밖에 없는 것인데 비해, 미는 객관적 타당성을 요구한다. 또 쾌적한 것은 항상 의욕과 결합하고 대상의 존재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만족을 주지만, 미는 이러한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만족의 대상이다. 쾌적의 판단이 개인의 감정에 근거하고 기분에 따라 변동하는 것인데 비해, 미적 평가는 주관적인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b) 미와 추는 선악과 마찬가지로 호의(Gefallen)와 적의(Mißfallen), 칭찬과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선(das Gute)이 외적 현상에서는 직접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내적ㆍ정신적 가치인데 비해, 미적 가치는 현상에서 직접적으로 파악된다. 윤리적 평가는 행위의 내적 동인인 의지와 도덕적 품성을 문제로 삼지만, 미적 감상은 객체의 순수한 인상 자체로 일관한다. (c) 미는 도덕적 선과 구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생활의 필요에 따른 ‘좋음’, 즉 ‘유용’(das Nützliche)과도 다르다. 유용은 대상이 봉사해야 할 실생활의 목적에 적합할 때 성립되는 가치이지만, 미적 가치는 목적관계로부터 떨어져서 오직 그 자체로서 쾌감을 주는 대상에 속한다. 보통 동일 대상〔예를 들어 어떤 종류의 건물〕에서는 미적 효과와 실용적 효과가 결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적 가치는 본래 소위 내포적 가치(intensiver Wert)이며, 유용성과 같은 결과적 가치(Konsekutiver Wert)와 달리 대상 그 자체의 내적 원리에 따라 평가되는 경우에 성립한다. 합목적성은 그 자체가 직접 현상하여 내포적 가치로 전화하는 경우에만 미가 되는 것이다. (d) 미는 ‘쾌적’ㆍ‘선’ㆍ‘유용’과 달리 일체의 실천적 관심을 완전히 배제한 순수관조 속에 성립한다는 점에서 진(眞, das Wahre)과 공통되지만, 진이 개개의 사실을 보편화하고, 추상화에 기초한 체험의 가치와는 반대로, 어디까지나 개성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기초한 체험의 가치이다. ‘예술적 진(Künstlerische Wahrheit)이란 말도 쓰이지만 이것은 학문상의 진과 같은 개념적 인식의 가치가 아니라 직관적 인식의 가치이다. 또한 일종의 인식가치 자체는 곧 바로 예술미와 동일시될 수 없고, 이것이 다른 여러 조건들과 서로 만나서 이러한 미의 성립을 제약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상 ‘진’이 미와 대립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가끔, 특히 사실주의 경우에서 보이듯이, 다른 방향에서 작품에 미적 가치를 부여하는 형식적 및 내용적 계기와 충돌하고 이것들을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요컨대 미적 가치라는 것은 쾌적한 것이나 유용한 것과는 달리 더욱 높은 보편적ㆍ정신적인 관심에 기초하여 만족을 낳지만, 선과 진에 비하면 한층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가치의 본질적 성격은 주관에서의 미적 효과와 미적 체험의 특수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자기가치감정’의 객관화를 주장한 립스의 감정이입설과 명증체험(明證體驗)에 영역적 편입원리에 따른 오데브레히트의 미적 가치론은 주관에서 직접적으로 미적 가치가 만들어져 나오는 관계를 규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가이거가 주장한 것처럼 미적 가치 자체의 일반적 법칙성을 확립함과 동시에 미적 체험 대상의 일반적 구조를 해명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리하여 미적 가치는 체험의 틀을 넘어 초주관적ㆍ보편적인 근거 ․원리 위에 독자적인 자율적 가치로서 정립된다.

4) 미적 법칙성과 미적 대상성

(1) 칸트가 ‘미의 자기법칙성’(die Sibstgesetzlichkeit des Ästhetischen)을 세우기 위해 ‘순수하게 미적인 태도’로서 취미판단의 네 가지 계기[무관심성, 무개념성, 목적표상 없는 합목적성, 필연성]를 제시한 이래, ‘미적 자율성(die ästhetische Autonomie)이나 ’미적 법칙성‘(die ästhetische Gesetzlichkeit) 에 대한 문제는 신칸트파에 의해 미적 가치의 통일 원리로 받아들여져 더욱더 철저하게 규명되었다.
퀸은 자율성의 개념을 3단계로 구별한다. 제 1단계는 가치의 자율성 또는 독자성, 제 2단계는 영역의 자율성으로 가치의 지기구성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가치의 영역이 객관적으로 타당하게 인식된다는 것은 바로 제 3 단계의 선험적 주관의 자율성을 승인한다는 것이다. 선험적 주관의 자율성이란 객관을 자기 생산하는 것이다. 미의 자율성은 이들 자율성의 3 단계를 통일적으로 구성하는 원리인 직관의 자기법칙성에 기초하고 있다. 또 크리스챤젠(Christiansen)에 따르면 미적 가치는 직접적ㆍ무제약적으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율적인 것이며, 그 법칙성은 인간의 본질적인 근본충동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미적 가치의 자율성은 일정한 주관에 대한 필연적 타당성이지 초주관적 보편타당성은 아니다. 한편 코헨은 미의 자율적 가치를 미적 법칙성의 원리 위에서 자리 매겼다. 코헨에 따르면 예술의 법칙성은 미의식, 즉 ‘순수감정’의 법칙성에 기초한다. 순수감정은 인간성 자체의 자각에 의한, 자연과 인격 또는 조화를 사랑하는 감정으로서 자유 및 의지와는 다르지만, 사유와 의지를 예비조건으로 삼아 그것들의 융화 위에 성립되는 조화적ㆍ전체적 의식이다. 또 미적 대상은 미적 예술적 천재의 순수감정이 개개의 작품에서 실현해야 할 과제로서의 이데(idea)이다.
(2) 코펜은 미적 대상을 미적 법칙성의 순수생산에 따라 자리 매기려고 했지만, 대상의 이러한 ‘관념적 실재성’은 단순히 주관에 의해 제약되지 않는 미적 가치의 성립근거이다. 이리하여 미적 대상성(die ästhetische Gegenständlichkeit)이 문제로 된다.
비터젝에 따르면 아름다운 사물은 감각에 의해 지각되지만 미라는 성질은 지각되지 않는다. 결국 미는 현실적이 아니라 관념적인 실재이다. 또 미는 대상의 개별적 표상에 내포된 미적 성격의 총량이 아니라 총량 이상의 어떤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는 대상적 요소가 아니라 대상 이외(außergegenständlich)의 요소이다. 때문에 미는 대상과 주관이 취하는 특수한 태도 사이의 관계를 바탕으로 삼는다. 비터젝은 미적 대상을 다섯 개의 영역으로 나눈다. (a)미적 대상의 요소인 음ㆍ색 등의 ‘단순한 감각적 대상’(einfacher Empfindungs gege nstand), (b)'형태‘(Gestalt), (c)'합규범적 대상’(normgemäßber Gegenstand), (d)'표출과 기분의 충실‘(das Ausdrucks und Stimmungsvolle), (e)'객관적 의미’(das Objektive)이다. 이들 기초적인 미적 대상에 동반되는 미적 감정은 모두가 직관적 표상에 기초하지만 (c)에서는 합목적적 판단의 감정이, (d)에서는 감정이입이 덧붙여지고, (e)에는 사유판단에 기초한 의사미적인(擬似美的, pseudoästhetiksch) 감정이 함께 한 것이어서 이들 대상을 그대로 미적 대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숭고ㆍ비장 등 미적 가치의 다양한 양상을 이들 미적 대상의 여러 계기들에 대응하는 여러 감정들이 작용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또 하이만은 미적 형상의 직접적인 ‘소여성’(Gegebenheit)을 주장한다. 미적 형상은 직접적으로 체험되고 직접 주어진 감각내용 그 자체의 의미(음악과 회화에서 음 그 자체와 색 그 자체가 가진 의미)밖에 갖지 못하기 때문에 독자적이라는 것이다. 미적 형상을 구성하는 요인은 이론적ㆍ실천적 태도에서 미적 형상의 ‘고립’(Isolierung), 다른 의미를 배제한 독자적 의미의 ‘집중’ (Konzentrierung)과 ‘강조’(Intensivierung)이다.
미적 가치의 성립근거를 주관의 밖에서 찾게 된다면, 베커와 같이 그것을 정신과 자연이라는 두 개의 존재근거 사이의 심각한 긴장관계 위에서 인식하게 된다. 베커는 미의 이러한 존재 성격을 몰락성(Hinfälligkeit)으로 규정했다. 왜냐하면 하나의 심연부터 나누어진 가상성과 현실성이라는 두 적대적 존재원리의 긴장관계가 순간적으로 화해할 때 성립하는 첨예한 미적 존재는 미세한 변화에 의해서도 파괴되기 때문이다.

5) 미의 원리적 통일

그런데 미적 법칙성의 본질이 주관의 생산성에 있고 미적 대상성의 본질이 객관으로부터 소여성에 있다고 한다면, 모든 미는 이 양 면이 서로 대립하는 계기가 미적 체험에서의 융합ㆍ통일에 있기 때문에 일원적 원리로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미와 예술미의 관계를 원리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미학에서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지만, 그들의 양극적 계기의 관계로부터도 해결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한 이제까지의 중요한 학설을 살펴보면 (a) 소박실재론적 입장에서 미는 본래 객관적으로 자연적 대상 안에 있는 것이라고 보면서 예술을 자연미가 있는 사물의 모방ㆍ재현 내지 구성이라고 주장하는 자연미 일원론, (b) 관념론적 입장에서 미의 본질을 이념의 감각적 현시로 보고, 정신으로부터 생긴 미, 즉 예술미를 고급의 완전한 미로 보면서 자연미를 이것에 종속시키는 예술미 일원론[헤겔],(c) 미적 가치의 근거를 주관의 창조적 형성 작용에 두고, 자연미는 순전한 소여성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예술미만이 본래의 미라고 하는 자연미 부정론〔오데브레히트], (d) ‘순수 생산’의 원리에 근거하여 예술적 창조의 미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자연미도 단순한 소여가 아니라 순수 감정의 생산에 의해 성립하는 것으로서 마찬가지의 원리로 이해하려고 하는 자연미ㆍ예술미 ‘동일설〔코헨〕들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미는 자연적 소여성이나 정신적 생산성의 어느 일면에만 귀착시킬 성질의 것이 아니다. 관조하는 주체의 내면에서 예술활동과 동질의 정신적 창조작용이 개시되어 소재적 소여를 형성할 때 소위 자연미도 비로소 체험되는 것이고, 다른 한편 소위 예술미도 표현의 수단 및 대상에서 볼 때 자연이 부여한 소재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자연관조에서와 마찬가지로 정관적 태도를 가지고 현상에 귀의하며, 나아가서는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을 전제로 삼는 것이다. 결국 자연미와 예술미는 모두 다 그 자체 안에 자연적ㆍ소재적 계기와 정신적ㆍ창조적 계기를 함께 가지고 있고, 그것이 종합ㆍ통일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보면 대체로 자연미에는 한쪽의 계기가 우세를 점하고 예술미에서는 다른 한쪽의 계기가 우월하지만, 미적 체험의 기본구조에서 볼 때는 양자가 서로 합치되어 하나가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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