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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시대의 미학과 예술론] ()



(1) 사회주의 리얼리즘론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의 발전에 따라서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학이며, 제국주의와 혁명기에서 레닌적 전개를 특히 레닌주의라고 부르는데, 소비에트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차지하는 현대적 의의의 중요성 때문에 마르크스ㆍ레닌주의라는 호칭이 일반화되고 있다. 오늘날의 소비에트 예술론 역시 레닌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그것은 혁명적 민주주의자의 미학 이후의 예술인식론을 유물변증법적으로 이론화시킨 레닌의 현실반영론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천적 사상가로서 레닌이 소비에트의 각 문화영역에 끼친 영향은 극히 심대하여, 혁명기의 최고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고리키(1868~1936)의 창작 및 비평 활동의 강력한 지주가 되었다. 고리키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희구를 반영하고 있던 레닌 이론에서 일찍부터 세계관적 공명을 얻고 혁명적 실천을 통해 레닌의 사상과 깊이 결합했다. 이것은 혁명 후 소비에트 예술론의 방향을 크게 규정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편 이것은 문예이론이 예술론 가운데서 중심을 차지하고 일반예술론은 문예이론에게 지도 받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문예이론의 부연으로서 파악된다는 혁명적 민주주의자의 미학이 지닌 편향을 이어받게 되었다. 이 편향은, 예술의 사상성ㆍ당파성을 강조하고, 또한 예술의 선전적ㆍ교육적 대중매체로서 역할을 완수하는 문예의 뛰어난 요소가 다른 부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역시 예술을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으로 파악하고 “인간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즉 진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 톨스토이(1828~1910) 예술론은 근본적인 세계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방법적인 견해에서 소비에트 예술론에 그대로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런데 혁명 후 예술의 당파성ㆍ사상성을 중시하는 풍조 속에서, 영합적이고 창작력이 미숙한 이류예술가가 사상의 정당성을 과시하려고 한 나머지, 갖가지 사상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내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잘못된 풍조는 또한 프롤레트쿨트〔1917년에 창립된 문화단체로 과거의 문화적 유산을 거부하고 순수하게 프롤레타리아적 문화를 실험적 방법을 통해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 보그다노프(1873~1928)의 일파,1930년 해산]나 라프〔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작가협회의 양자, 프톨레트쿨트와 같은 계열로 도그마적인 프롤레타리아주의의 입장에서 작가를 유물변증법적 세계관과 창작방법에 의해 통제했다. 1925 ~1932〕운동과 결부되어 있다. 그들은 미적 개념 자체를 부르주아적 편견 또는 잔존물이라고 생각하여, 이것을 타도하고 무시하려 했다. 모든 예술유산은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무관한 것이고 여러 예술의 형태ㆍ장르는 모두 착취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산물이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사회에서는 사멸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인간의 미적 감각의 역사적 발전과 그 예술상의 의의를 부정함으로써 마르크스ㆍ레닌주의적 예술관에 적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청산주의적 이론의 영향은 의외로 뿌리가 깊어 오늘날 악명 높은 무갈등이론에까지 영양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그것은 갈등이 계급적ㆍ적대적인 사회구성체의 예술에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비에트에서는 그 사회적 본질상 이미 특정적인 것이 아니라 소멸해가는 것이라고 하는 이론인데, 그 결과 소비에트예술, 특히 드라마의 침체, 무기력을 초래하였다.
1932년 4월 전 소비에트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이름으로 라프와 기타 그와 같은 종류의 문학단체의 해산이 명령되고, 동시에 “사회주의 건설에 참가하려는 의도를 지닌 모든 작가를 단일한 소비에트작가 동맹으로 통일한다.”는 것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동년 10월 고리키를 의장으로 하는 작가동맹조직 위원회 제 1 회 확대회의에서는 앞서 말한 반(反)마르크스 ․ 레닌주의적 예술론이 사라지고 그것을 대신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이 등장했다. 이것은 한편으로 새로운 예술창조에 어떠한 기여도 한 것이 없었던 예술 사회학파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이리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소비에트 예술론의 중심적 과제로 떠올라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또한 이 이론은 국제프롤레타리아트의 기본적인 창작방법으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고리키는 라프적 견해에 대해 “전체 인류의 발전에 의해서 만들어진 문화의 정확한 지식 및 그 가공에 의해서만 프롤레타리아 문화를 건설할 수 있고”, 또한 “이것(프롤레타리아 문학)은 인류가 자본주의사회ㆍ관료사회의 압박 하에서 만들어온 지식 축적의 합법칙적 발전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레닌적 입장을 지키면서 경험론의 자유를 적극 표명했다. 그리고 소비에트작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사회주의적인 인간의 육성이라는 사고 위에서, 작품에서의 행동적인 성격, 그것에 고유한 생활 개조의 파토스를 강조하고, 그것에 어울리는 새로운 창작방법론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제창한 것이다. 고리키에 의하면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의 본질적 내용은 적극적인 휴머니즘이고, 또한 모든 착취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고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한 투쟁이며, 이러한 예술은 사회주의적 경험의 온갖 사실 위에서만 창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관해서는 당초 이것이 제기되었을 때부터 실로 여러 가지 논쟁이 있어, 피크사노프(1878~1969)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헌목록에 의하면, 32년 후반부터 2년가량 기간 동안에만도 이미 400개 이상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총결산하여 1934년 제1회 작가대회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관한 다음과 같은 규정을 채택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소비에트 예술적 문학 및 문예비평의 기본적 방법이며, 현실의 혁명적 발전을 정확하게 역사적 구체성 속에서 묘사할 것을 예술가에게 요구한다. 여기서 예술적 묘사의 진실함과 역사적 구체성이라는 것은 노동자를 사회주의적 정신과 사상으로 개조하고 교육한다는 과제와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규약은 20년 후인 1954 년에 열린 제 2회 작가대회 및 1959년의 제 3회 대회에서도 다소 표현상의 수정을 가한 것 외에는 거의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관한 논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위에서 서술한 일반적 공식에서 보이듯이 고리키 이후 이론으로서 얼마나 발전을 이룩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많은 논의에서 보이듯이 기본적 테제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작가의 세계관, 즉 창작방법론이라고 하는 라프에 대한 비판이며 “창작상의 창의를 발휘하는 가능성 및 형식ㆍ문체ㆍ장르의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완전하게 보증해주는” 예술의 방법으로서 제기된 것인데,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구조에서는 사실상 사회주의적이라는 한정어가 훨씬 주도적인 것이었으며 그것은 현재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점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세계관으로 보는 입장도 상당히 강하다. 이러한 두 가지 해석은 일면 대립적이지만, 어쨌든 실천으로서의 창작에서 표현상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유일하게 올바른 지배적 방법이라고 한다면 이 방법에 따르는 표현양식이나 수단, 구성이나 형상창조의 법칙 등도 또한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라 보고, 이것을 일종의 양식 개념으로서 이해하려고 한 일파가 있었다. 이러한 해석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예술창조에서 표현의 다양화의 가능성을 완전히 보증해주는 것으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교조주의적인 고정화를 초래하고 다양성 대신에 진부한 단일성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런데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한편으로 리얼리즘이라는 말 자체에 담겨있는 역사적인 개념의 규정을 받고 있다. 소비에트에서 리얼리즘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전개하고 있는데, “리얼리즘이란 구체적인 진실함 외에도 전형적 상황에서 전형적 성격표현의 정확함이다.”라는 엥겔스(1820~95)의 견해가 리얼리즘론의 가장 일반적인 기초가 되고 있으며, 이 이론이 소개된 역사적 조건과 함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전형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새로운 소비에트적 현실의 여러 조건들 속에서 생활하는 적극적 주인공, 즉 사회주의적 개성의 전형을 창조하는 것이 작가에게 부과된 가장 중심적인 과제였는데,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번함이 없다.〔1952년 소비에트 공산당 제19회 대회에서 말렌코프(1902~)의 보고에 의해 부정적 형상에 대한 풍자의 중요성이 지적되기는 했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본적인 테제에서 볼 때 그것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가끔 비판적 리얼리즘과 대비적으로 고찰되고 있다. 비판적 리얼리즘은 “사회악을 폭로하고 가정적 전통ㆍ종교적 도그마ㆍ법률적 규정에 속박된 개성의 생활과 모험을 표현하면서도 속박으로부터 출구를 인간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라는 의미에서 단순한 사회비판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적극적인 사회개조로 이끄는 현실적인 힘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조건 하에서도 여러 가지 형태의 모순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비판적 리얼리즘은 그 방법상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며, 사회주의 리얼리즘과의 대립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보다 풍부하게 발전시키는 것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방법에 포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교조화ㆍ도식화를 막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이나 그 전형적 형상의 단일화를 타파하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2) 예술상부구조론 ․ 리얼리즘론

1930년 스탈린 (1879~1953)이 『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의 문제들』(1950)에서 제기한 ‘토대ㆍ상부구조론’은 미학 또는 예술이론의 영역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활발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제 20차 당 대회(1956년 2월)이후의 스탈인 주의 비판과 함께 상부 구조론에서도 스탈린의 정식으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본래의 고전적 정식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여, 주로『철학의 문제들』에서 전개되었던 논쟁도 근래에 이르러 거의 대체적인 결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상부 구조론은 원래 사적 유물론의 기본적인 범주상의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은 과연 미학 또는 예술학의 영역에서는 어떠한 논쟁을 전개해 온 것일까.
우선 용어에 관해 간단히 개념을 규정해 보면, 토대라는 것은 사회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경제구조,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총체이고, 상부구조는 이 토대 위에 서서 토대에 조응 하는 전체, 즉 사회의 정치적ㆍ법률적ㆍ종교적ㆍ예술적ㆍ철학적 ․ 도덕적과 같은 견해와 이들에 조응하는 기관ㆍ제도들이다. 상부 구조론에서 예술에 관한 주요한 문제는 먼저 예술이 상부구조인가 아닌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서 제기되었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상부구조에 속하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예술은 서로 조응하는 사회기구에 의해서,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특정사회의 경제기구에 의해서 조건 지어지는 것이고, 거기에는 어떤 계급의 ‘예술관’이 형상화되어 있다. 그것은 항상 계급투쟁의 무기였고, 또한 사회의 경제기구가 변함에 따라 예술을 포함한 이데올로기의 영역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에 대해 예술은 사회적 의식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상부 구조적인 성격을 갖는 현상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들의 의견에 따르면 ‘예술관’과 ‘예술’이란 것은 아주 많은 공통성을 가지면서도 원칙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며, 사회적 의식형태는 단순히 토대에 조응할 뿐이며 상부 구조적 현상의 영역에는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사회적 의식형태를 상부구조의 이데올로기적 부분, 즉 정치적ㆍ법률적ㆍ예술적ㆍ철학적 등의 견해와 대립시켜 의식의 ‘형태’를 내용, 즉 이데올로기의 그릇처럼 간주하는 것은 일종의 칸트적 직관형식 내지 순수사유형식으로 일탈을 의미한다. 사회계급들의 예술관은 예술작품 속에서 형상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이론이나 과학의 미학으로 이론화된다. 예술이론이나 미학은 다방면에 걸친 인류의 실천을 토대로 하여, 예술창조의 일반적 규정으로서 범주ㆍ개념ㆍ과학적 추상화의 형식으로 표현되며, 미학에서는 예술과 현실의 미적인 것에 관한 이론, 예술의 본질, 예술의 발생이나 발전법칙, 사회적 역할 등의 이해가 이루어진다. 이것은 또한 예술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예술관은 현실반영의 특별한 형태로서 정치적ㆍ법률적ㆍ도덕적 견해 등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과학적으로 추상화된 예술이론이나 미학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예술관과 예술의 두 개념 사이에 원칙적인 차이를 설정하여 전자만을 상부 구조에 덧붙이고 후자를 배제하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고 쓸데없이 혼란만 야기하여 스콜라주의를 낳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서술한 제20차 당 대회 이후의 상부 구조론이 갖는 주요 문제점은 “적대적 사회에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대립적, 혹은 이질적 사상ㆍ제도를 서로 하나의 상부구조로 생각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지배계급의 것만을 당시 사회의 상부구조로 생각할 것인가”에 있다. 스탈린적 정식에 따르면 상부구조는 토대에 의해 생겨나지만, 단순한 토대의 반영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힘이 되어 자기의 토대를 강화ㆍ방어한다. 따라서 놓여 있는 토대에 대해 적대적인 피지배계급의 예술관 등은 당연히 지배계급이 자기의 토대옹호를 위해 만든 상부구조 속에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갈 수도 없다. 이것은 미래 상부구조의 맹아이자 그 이데올로기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적대사회에서 상부구조의 주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논하지 않더라도, 상부구조 전체를 지배계급의 것으로 해소하여 단일한 계급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경제적 토대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계급간의 적대투쟁이 어떻게 하여 상부구조에서 계급간의 적대투쟁으로 반영되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가로막는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 사적 유물론의 변증법을 부정하는 것으로까지 파급된다.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것은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로서 사회 각 계급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예를 들면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를 토대로 한 사회에서만 가능하지만 그 발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갈등이 반영된 데서 비롯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합법칙적 과정이다. 이러한 토대의 모순ㆍ갈등을 반영한 상부구조는 그 자신 속에도 마찬가지로 모순ㆍ갈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상부구조의 토대에 대한 ‘봉사’와 ‘반작용’이 생겨나 토대를 강화하거나 파괴하는 힘으로 각각 작용하게 된다. “상부구조는 그 토대의 붕괴와 함께 해소되고 소멸한다.”라는 스탈린식 정식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거 문화의 청산을 주장한 초기의 프롤레트쿨트의 이론과도 통하는 것이며, 문화유산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방해하는 것이다. 상부구조의 단일한 성격에 대한 부정은 계속해서 역사상 예술이나 철학 등의 개별 요소의 ‘상대적 자율성’, ‘그 발전과정에서 계승성’을 문제로 삼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예술 상부 구조론을 둘러싼 이상과 같은 논쟁은 예술의 역사적 발전의 합법칙성과 예술의 특수성에 관한 연구를 촉진시켰는데, 그것은 다음에 서술할 리얼리즘이론과도 관련되어 있다. 타마신에 따르면, 리얼리즘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이론가 사이에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창작방법, 즉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예술적 방법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의 발전과정, 즉 19~20 세기에서 형성되어온 ‘구체적 역사경향’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네드시삔(1910~)이『예술이론 개설』에서 “예술의 역사는 리얼리즘과 반(反)리얼리즘적 경향의 투쟁의 역사이다.”라고 서술한 것은 전자의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인데, 이 견해는 리얼리즘이론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정식을 비판하여 엘리스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것은 예술에서 현실, 생활의 진실 반영 역사와 리얼리즘 역사를 같은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깊은 관계는 있지만 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문제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며, 이 정식은 철학사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이라는 명제를 기계적으로 예술의 역사에 옮겨는 단순한 유추에 불과하며 예술의 발전에서 다양성의 계기를 말살하는 것이다. 이것은 리얼리즘을 하나의 방법으로 규정하는 데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엘리스베르크의 견해는 리얼리즘은 역사적 경향이라고 보는 입장에 속한다. 이러한 견해를 타마신은 다음과 같이 바라보고 있다. 의식은 외적 세계를 올바르게 반영할 수도, 혹은 거꾸로 왜곡하여 반영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두 가지 가능성이 바로 예술에 나타나는 것이다. 리얼리즘과 반리얼리즘의 투쟁은 예술의 역사 전체에 걸쳐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며, 때로는 그것이 동일한 예술가의 작품 속에서도 보인다. 리얼리즘적 방법은 의식의 산물로서 예술과 물질적 세계의 연관 일반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이 연관은 어떠한 예술에서도 그 인식론적 기초가 되고 있다. 현실인식의 수단으로서의 예술은 현상의 본질을 다면적으로 깊이 있게 해명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해가지만, 이미 해체되어 가고 있는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생활의 진실을 은폐하고 예술을 현실 왜곡의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 이와 반대로 사회가 상승기에 놓여 있을 때는 예술의 인식적 의의가 지배계급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요컨대 예술에서 리얼리즘과 반리얼리즘의 존재는 엘레스베르크가 말하는 것과 같은 유추가 아니라 예술 그 자체의 본질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생활적 진실의 희구, 현상이나 그 과정의 본질을 깊이 다면적으로 해명하려 하는 희구야말로 선진적인 예술발전의 기초임과 동시에 그 방법이라는 의미의 리얼리즘 개념은 그것 이상의 어떠한 것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또한 타마신은 예술의 역사적 발전을 밝혀내고 그 일반적 합법칙성을 규명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은 예술 본질 자체의 복잡함에 기인한다는 것, 그 복잡함은 또한 예술의 상대적 독자성에 기인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나아가 방법으로서의 리얼리즘의 개념에 역사적 상대성 또는 경향성들의 계기를 포함시킬 필요와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여튼 “리얼리즘과 반리얼리즘의 투쟁”이라는 정식에 기초하여 발전 형태들의 특수성을 규명하는 것은 현대 소비에트의 예술이론이나 예술사에 부과된 중요한 과제이며, 그것은 또한 리얼리즘의 최고 형태라고 일컬어지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의 실천 ― 창작 ― 활동에 대한 귀중한 시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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