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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학] ()



1) 19 세기 후반 자연과학의 현저한 발전에 따른 학문일반의 경험주의적 ·실증주의적 경향에 상응하여 예술이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의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예술은 곧 미(美)라는 고전주의적 예술관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 예술만을 별도로 다루는 이른바 ‘예술학’을 미학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시도가 일어나게 되었다. 종래 미학이란 학명 하에서도 실질적으로는 이후의 예술학적 내용을 포괄한 문제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취급되어 왔지만, 이때부터 연구 대상이나 연구방법을 달리하는 학문으로서 예술학이 새롭게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는 논의의 중점을 설정하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입장이 존재하는데, 우선 이론적으로 미와 예술의 문제를 구분하여 이후 예술학의 시조로 불리고 있는 사람은 피들러(Konrad Fiedler, 1841~95)이다. 이전 시기의 미학, 그 중에서도 특히 독일관념론의 미학에서는 진정한 미를 예술미에 귀속시키면서 예술은 오로지 미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보고 미와 예술을 동일시하며, 따라서 모든 예술의 문제는 또한 미학상의 문제라고 보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대해 피들러는 수많은 잠언(箴言,Aphorismen )에서 언급했듯이, 미와 예술을 구별하고 미학과 예술이론을 구분하여 고찰한다. 그는 미가 쾌락의 감정과 관계있는데 비해, 예술은 보편적 법칙에 따른 진리의 감각적 인식이고 그 본질은 형상의 구성이며 “미학의 근본문제는 예술철학의 근본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것”이기 때문에 예술의 모든 영역이 미학의 연구 영역이라는 지금까지의 가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예술은 진실로 그것에 의거한 태도를 가지고 임할 때에만 그 모든 내용이 고찰될 수 있는 것으로서, 예술의 고유한 영역이 반드시 설정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예술학’(Kunstwissenschaft)이라는 명칭을 내걸지는 않았다.
원래 예술학이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과학주의의 영향 하에서, 미학의 사변적 · 철학적 방법에 대항한 객관적 · 과학적 방법에 의해 예술이라는 구체적 · 경험적 사실을 엄밀하게 연구한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일종의 방법론적 측면에서의 반성과 함께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그로세(Ernst Grosse,1862~1927)는『예술학연구』Kunstwissenschaftliche
Studien,1900)에서 종래의 예술사적 혹은 예술철학적 연구에 대해 인류학적 ․ 민족학적 방법에 바탕을 둔 예술의 과학적 연구를 제창하고, 예술의 사실적 특수로부터 보편이 도출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주로 원시민족의 예술을 다루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술학의 과제는 (1)예술의 본질, 즉 예술 활동 및 작품을 다른 것으로부터 구별해내는 것이거나, 여러 종류의 예술에 있어 그 구별을 가능하게 하는 각기의 성질에 관한 연구, (2) 예술가와 제재에 관련되어 있는 예술의 동인(動因)들 및 에술의 자연적(풍토적) ․ 문화적 제약들에 관한 연구, (3) 각종 예술이 개인 또는 사회생활에 미치는 효과들에 관한 연구 등이다. 그의 저작에는 이미 이와 같은 방법에 의거한 『예설의 기원』 (Die Anfänge der Kunst,1894)이 있는데, 이것은 예술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고 한다면 자연히 발생의 역사적 및 심리적 사실에 대한 고찰로 향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이에 관해서는 그로세 외에도 바라세크, 히른(Yriö Hirn, 1870~1952) 등도 예술기원론을 계속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미학 자체가 심리학이나 사회학의 관점에 의거한 과학적 방법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다 철저하게 하자면 당연히 막연한 미보다는 명확한 예술을 연구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랑게(konrad Lange, 1855~1921)는 페히너의 ‘아래로부터의 미학’을 계승하여 심리학적 방법으로 『예술의 본질』(Das WEsen der Kunst, 1901,1907)을 연구하였다. 그는 예술의 창작 및 향수의 목적인 미적 쾌감이 의식적 자기기만(bewußte Selbsttäuschung)으로서의 환상(Illusion)에 의존한다고 하는 이른바 환상설을 전개했는데, 이것은 예술론(Kunstlehre)임과 동시에 미학이론이기도 했다. 즉, 미를 자연미와 예술미로 구분함으로써 이 양자를 다루는 미학과 후자만을 문제로 삼는 예술론은 일단 구분되지만, 미적 효과를 일종의 환상으로 귀결시키는 견해에서 본다면, 본래의 미는 대상의 가상적 표현인 예술의 경울 국한되고 자연의 관조는 그 대상을 예술품으로 유추해 보는 한에서만 미적 의의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미학은 결국 예술적 사실을 연구하는 예술론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랑게가 미학= 예술학이라 규정한 것에 대해 데소아(Max Dessoir, 1867~1947)는 슈피쳐a9Hugo Spitzer)의 “예술의 범주와 미의 범주는 절대 일치하지 않는다”라는 예술학적 사상을 더욱 발전시켜, 일반예술학(allgemeine Kunstwissenschaft)이 미학과 별개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미학과 일반예술학』에서 처음으로 미학과 특수 예술학의 관련하에서 일반예술학의 본질과 과제를 분명하게 밝혔다. 그에 의하면 다양한 일반예술현상을 모두 망라하는 이 예술학에는 각종 방법에 의한 각종 예술영역에 대한 연구가 모두 포괄되는 것으로서, 하나의 체계나 하나의 방법에 구속되지 않는다. 개별적 예술에 관해서는 그것의 형식들이나 법칙들을 근본적인 방식으로써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시학 ․ 음악이론 ‥ 미술학 등의 체계적인 특수예술학이 성립하지만, “그러한 것의 전제, 방법 및 목적을 인식론적으로 음미하고 그것의 가장 중요한 성과를 총괄하여 비교하는 데 바로 일반 예술학의 과제가 있다”는 것이고, 이와 함께 예술창작, 예술의 근원, 여러 예술의 구분과 기능을 고찰하는 것도 일반예술학의 과제에 속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데소아 자신은 백과사전적 지식을 피력하고 있지만, 그의 설명은 일반예술학의 필연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결정적 원리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편의적이고 절충적이었다는 한계를 피할 수 없다. 아무튼 그는 앞서 말한 저서와함께 같은 해『미학과 일반예술잡지』(Zeitschrift für Ästhetik und allgemeine Kunstw issenschaft)를 창간하여 일반예술학의 사상을 광범위하게 보급시켰다.(이 잡지는 그 이후 미학과 예술학의 중심적 기관지로서 1943 년까지 계속되었다.)
이처럼 데소아에 의해 어느 정도 체계와 내용이 정리된 일반예술학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심화시키고 그 토대를 확고하게 만들려고 시도한 사람은 우티츠(Emil Utitz, 1883~1956)이다. 그의 『일반예술학 기초』에 의하면 일반예술학은 예술의 일반적 사실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문제영역을 포함하고 미학을 비롯한 문화철학 ․ 심리학 ․ 현상학 ․ 가치론 등의 광범위한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데소아처럼 이것을 단순히 각종 연구성과의 저수지인 것처럼 고찰해서는 안 되며, 통일적 연구태도를 가지고 모든 것을 예술학적 문제로서 고찰하여 그 체계전체를 포괄하는 특성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 확실하게 규정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바로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연구는 시작되고 모든 예술문제의 최종목적이 여기에서 마무리된다. 일반 예술학은 데소아가 지적한 과제를 포괄하는 것이지만, ;예술의 본질에 관한 연구‘를 그 근본문제로 삼고 그 외의 연구는 이것을 배경으로 하여 행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철학적 기초를 필요로 하는 일반예술학은 결국 예술철학이기도 한데, 데소아는 이것을 철학의 통일적 체계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예술의 형성이나 표현의 계기를 강조하고 예술의 본질을, 형성에 의해 감정체험을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규정한다. 작품의 문제는 인간성의 핵심에 가까운 감정체험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며 그 형성의 의미는 어떤가이고, 예술향수는 작품에 일관되고 있는 작가의 인격을 현재적인 감정체험에서 항상 새롭게 체험하는 것이지 미적 향수처럼 현실존재로부터 격리된 가상으로서의 미적 대상을 감정적으로 관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데소아와 우티츠를 중심으로 하여 예술학의 주창과 성립이 이루어지는 한편, 하만처럼 ‘미적’인 것과 ‘예술’이라는 것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논거로 하여 뚜렷하게 예술학적인 『미학』을 설명하는 입장도 나타나 일시적으로 예술학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그 이후 예술학의 이름하에 적극적으로 그 실질적 체계를 확립하려는 시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프랭클 (Paul Frankl,1878~1962)은 셰계를 자아화하는 미적 의미방향을 이론적 의미방향에서 파악하려고 시도하여 독특한 「예술학의 체계」(Das System der Kunstwissenschaft,1938)를 내세웠다. 그 체계는 세계와 자아. 극 사물과 인간, 시공간적으로 규정된 장소와 시간이라는 네 가지 계기를 뽑아내 그에 따라 미학 ․ 예술심리학 ․ 예술지리학 ․ 예술사의 이론을 포괄하는 방대한 것인데, 특히 시각적 형식에 대해서 정밀한 분석을 행하고 있다. 프랭클의 ‘예술학’은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예술철학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현대에서는 일반예술학의 과제였던 예술의 본질이나 예술의 체계문제 등이 명확하게 ‘예술철학’으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뤼쨀러(Einführung in die Philosophie der Kunst, 1934), 얀케(Rudolf Janke, Grundlegung 켜 einer Philos, d, Kunst, 1834), 카인쯔(Fridrich Kainz, 1897~, Einf. in d. Philos.d. Kunst, 1948)가 그 예이다.
결국 예술학을 미학과는 별개로 정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무엇보다 먼저 예술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미학 그 자체의 입장에 근거할 때는 부정적인 견해도 생기는 것이며, 또한 실제로 미와 예술의 양영역에 걸친 연구가 허다하고, 그 하이에 확연한 경계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방법도 마찬가지로 예술의 본질과 가치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과학적 방법을 넘어서는 철학적 방법을 취하지 않으며 안 되기 때문에, ‘과학’으로서 출발한 예술학도 자연히 예술의 ‘철학’으로 이행하게 된다.

2) 예술학의 개념은 또한 , 예술(Kunst)이라는 어휘가 좁은 의미로는 조형예술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조형예술에 관한 보편적, 체계적 연구와 개별적, 역사적 연구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 좁은 의미의 예술학(미술학)은 문예학 · 음악학 · 연극학 등과 함께 일반 예술학, 크게는 미학을 그 상위의 기초학으로서 전제하는 특수 예술학이다 그러나 예술학은 실제로는 광의와 협의의 두 가지 의미가 반드시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형예술의 기본 개념이나 형성원리에 대한 연구가 나아가서는 예술일반의 기본개념이나 형성원리와 접촉하게 되고, 미술학과 일반예술학은 상호 교류하면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넓은 의미에서 일반 예술학의 시조라고 볼 수 있는 피들러가 직접적으로는 조형예술만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들러는 이 범주에서 『예술활동의 기원』을 해명하는데 있어 인간의 의식과 외적 세계의 관계로부터 고찰을 시작했다. 우리는 감각적 현상에 기초하여 실재를 의식하고 이 실재의식을 언어나 개념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이미 실재 그 자체의 포착 및 표현은 아니며, 내면적 삶의 소산이고 사유에 의해 한정된 존재의 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감각적 표상에서 실재의 진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어느 정도 한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상태에 있다. 이러한 감각적 실재의식을 그 고유한 소재 그대로 한정적인 존재형식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은 시각의 영역에서만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에, 눈이 의식에 공급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손에 의해서 실현하는 경우에 예술적 표현활동이 시작된다. 이 표현활동은 순수한 시각작용의 계속적 발전이고, 그렇게 때문에 예술의 의의는 오로지 순수한 가시적 표상의 구성관계 가운데 있다. 따라서 예술작품은 사유나 감정 대상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진정한 미래는 순수가시성(reine Sichtbarkeit)의 본질에 입각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형예술에서 창작활동의 원리적 필연성을 추구하고 있는 피들러는 칸트의 비판주의 방법까지도 가미하고 있는데, 조형예술의 자율적 법칙의 확립을 둘러싼 그의 이론적 성찰의 깊이와 철저함은 다른 누구에게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조형예술을 순수가시성(純粹可視性)에 의한 일종의 인식으로 보면서 가시적 표상의 구성에만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고 표현내용의 예술적 의의를 경시한 것은 형식주의적 편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피들러와 친교를 맺으면서 그 사상의 영향을 받았던 조각가 힐데브란트(Adolf von Hildebrand,1847~1921)의 『조형예술과 형식의 문제』에 이르러서는 한층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에 의하면, 예술가의 과제는 실재하는 형상으로서의 존재형식을 가상으로서 나타나는 작용형식으로 바꿈으로써 공간이나 형상의 표상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표상을 획득하는 데는 순수한 시각에 의한 경우와 눈의 운동에 의한 경우, 그리고 이 양자가 혼합된 경우가 있는데, 예술에 있어서는 대상을 오로지 시각에 의해서만 포착할 수 있도록 원상(遠像, Fernbild)으로서 표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환조(丸彫)도 부조(浮彫)와 같은 방식으로 파악할 때에만 비로소 전체의 통일적 인상을 줄 수가 있다. 또한 콜네리두스는 힐데브란트의 예술적 원칙으로서의 형식이론을 계승 발전시켜 조형예술에서 제기될 수 있는 각 문제에 대해 실례를 들고 설명했다. (Elementargesetze der bildenden Kunst,1908).
앞서 말한 형식주의적 이론은 뵐플린에 의해 미술사관에 도입되어, 종전의 연대기적 ․ 도상학적(圖像學的 )미술사를 벗어나 개개의 작품 속에 일관하는 양식의 발전을 추격하는 소위 ‘인명이 배제된 미술사’를 시도하는 데 그 이론적 배경으로 되었다. 작품 그 자체의 시각적 형식을 역사적 관찰의 중심에 두는 그의 근본사상은 이미 초기 저작에서 나타나기는 했지만 『예술사의 기초개념들』에 이르러서야 구체적이고 총괄적으로 제시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미술양식을 오로지 개인적 기질이나 민족감정, 시대정신의 ‘표출’로서만 이해하는 기존방식을 배제하고 양식의 표현방식 그 자체의 내면적 의의에 주목할 것을 제창한다. 양식에는 설령 두 개의 근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종래의 방법이 갖고 있는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표출’과는 분리된 순수한 시각적 직관형식을 분석하고 그 발전으로서의 양식사를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미술사의 긴급한 임무라는 것이다. 거기서 뵐플린은 우선 르네상스로부터 바로크로의 양식 발전에서 ‘가장 보편적인 표현형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선(線 )적 (liner)-회화적(malerisch), 평면(Flache) - 심오(Tiefe), 폐쇄적 형식(Geschlossene Form) - 개방적 형식(offene Form), 다수성(Vielheit) -단일성(Einheit), 명료성(Klarheit)- 불명료성(unklarheit) 이라는 5대 기본개념을 도출해내고, 이러한 양식개념은 결국 다른 시대에도 타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른바 ‘직관의 범주’에 대해서는 그 이후 각종 비판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미술사를 양식의 역사라고 하는 그의 방법은 자연히 미술사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획기적 의의를 가지며, 이후의 연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미술작품을 형식적 구성이라는 점에서 관찰하고 그 양식발전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는 뵐프린만이 아니라 일찍이 비인학파의 리글(Alois Riegl, 1858~1905)에게서도 나타났다. 그는 『양식의 문제』(Stilfragen,1893)에서 고대로부터 중세 비잔틴 및 사라센에 걸친 장식문양의 형태를 연구하여 그 여러 양식의 역사적 발전 관련을 해명하고, 이어서 그의 주저인 『후기 로마시대의 공예』(Die spätrömische Kunstindustrie, 1901)에서는 고대미술의 발전을 (1)촉각적(taktisch) - 근시적(nahsichtig) ; 고대 이집트 (2) 촉각적 · 시각적 (takisch - optisch) - 정상시적(正常視的,normalsichtig) ; 고전시대 (3) 시각적 (optisch) - 원시적(遠視的, fernsichtig) ; 후기 로마제정시대의 3 단계로 나누고, 그때까지도 고전예술의 쇠퇴 · 야만화로 인해 경시되어 왔던 후기 로마예술이 앞선 시대로부터의 내적 필연성을 갖는 발전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리글이 이러한 양식의 발전을 뵐플린처럼 단순하게 순수시각적 형식의 발전으로 귀착시키지 않고, 그 근저에 예술의지(藝術意志, kunstwollen)라 일컬어지는 일종의 내재적 동인을 상정하고, 나아가 이 예술의지의 성격을 넓은 의미에의 세계관에 기초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점이다. 또한 예술의지의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리글의 미술사관은 한편으로는 예술적 능력(KunstKönnen)을 중시하는 젬퍼(Gottfried Semper, 1803~97)일파의 유물론적 견해에 대립하는데, 예술작품은 사용목적 · 재료 · 기교에 의한 기계적 생산이 아니라, 어떤 일정한 목적을 의식한 예술의지의 성과라고 주장한다.
예술의 양식발전을 형식의 깊은 곳에 내재하는 예술의지나 세계관으로부터 설명하는 것은 동시에 그것을 문화철학 · 심리학 · 민족학 · 사회학 등의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 방면에서도 많은 연구가 속출했다. 예를 들면 보링어(Wilhelm Worringer, 1881~1965)는 『추상과 감정이입』(Abstraktion und Einfühlung, 1908)에서 리글의 예술의지를 규정하는 것으로서, 인간과 외적 세계의 현상간의 행복한 범신론적 친화관계에 기초하는 ‘감정이입 충동’과, 외적 세계의 현상이 야기하는 인간의 내적 불안에 기인한 ‘추상 충동’이라는 두 가지 방향을 들고, 후자에 의해서 종래 등한히 취급해왔던 원시민족이나 동양 여러 민족의 예술양식을 정당하게 평가하려 했다. 뿐만 아니라 『고딕의 형식문제』에서는 민족심리학적 관점에서 원시적 인간 ․ 고전적 인간 ․ 동양적 인간이라는 세가지 근본 유형을 설정하고, 그 위에서 고딕미술의 생명력 없고 경직된 양식을 그 정신적 근거로 해석해 냈다.
그러나 이렇듯 리글이 보여준 양식의 변천과 세계관의 상호관계에 대한 고찰을 정신사적 방향으로 더욱 진행시켜, 미술작품을 그 정신적 내용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그 시대의 철학적 ․ 종교적 세계관에 기초하여 해석하는 미술사의 새로운 국면을 연 사람은 비인학파의 직접 후계자인 드보르작(Max Dvořák, 1874~1921)이다. 그의 주논문『고딕의 조각과 회화에 있어서 이상주의와 자연주의』(Idealismus und Naturalismus in der gotischen Skulptur und Malerei, 1918)는 이상과 현실이 이원적으로 대립하고 기독교 정신주의가 전면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중세 전기 이상주의와, 피안의 세계와 현실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져 전기(前期)의 경직되었던 물질세계가 정신적으로 생기를 띠게 된 후기 자연주의 중간에 고딕미술을 자리매기고 그 본질을 밝혀냈다. 그는 형식적 관찰을 경시하지 않으면서도 매우 예리한 분석력을 보여주었으며, 나아가서는 거기에서 표출된 정신적 의미내용을 이해하는 데 진력하여 “예술은 항상, 무엇보다도 인간성을 지배하는 이념의 표출이고, 그 역사는 종교 ․ 철학 ․ 문예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일반 정신사의 한 부분이다.”라고 주장하여,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의 확립을 시도했다. 드보르작의 영향 아래서 정신사적 입장을 취하는 프레이(Dagobert Frey, 1883~1962)는 『고딕과 르네상스』(Gotik und Renaissance als Grundlagen der Modernen Weltanschauung, 1929)에서 공간적 ․ 시간적 및 시공간적 표상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표상능력의 발전사를 시도하고, 조형예술에 시간 개념을 도입하여 주목할 만한 연구를 행하였다.
이처럼 형식주의적 방법과 정신사적 방법을 양극으로 하는 각종 미술사연구가 나타나고, 역사적 발전을 연속적으로 혹은 율동적 - 대극적으로 파악하여 각종 발전법칙을 설정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져, 일시적으로 미술사의 방법론이 논의의 중심으로 되었다. 즉, 티체(Hans Tietze, 1880~1954,Die Methode der Kunstgeschichte,1913), 하이드리히(Ernst Heidrich, Beiträge z. Geschichte u. Methode d.Kunstgesch,1917), 팀링(Walter Timmling, Kunstgesch, u. Kunstwiss,1923), 헤디케(Rudolf Hedicke Methodenlehre d. Kunstgesch.,.1924), 쾰렌(Ludwig Coellen, 1875~, Über d. Method Kunstgesch.,1924), 크라이스(Der Kunstgesch, Gegenstand, 1928) 등의 방법론적 연구가 속출하여, 예술학의 개념이 가장 좁은 의미에서는 이러한 범주의 연구에 사용하였다. 이러한 방법론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최초로 미술사학의 개념과 본질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실제적인 자료비 판에 이르기까지 그 전반을 체계적으로 상세하게 서술한 티체의 저작과, 선험적 · 논리적 방법에 의해 세계사적인 양식발전 일반적 구조를 설명한 쾰렌 이론일 것이다.
그런데 미술사의 방법론적 기초나 발전법칙 연구는 체계적 미술학의 기본개념을 전제로 한다. 이미 금세기 초 쉬마르조브 (August Schmarsow, 1853~1936)는 그의 주저『예술학의 기본 개념』(Grundbegriffe der Kunstwissenschaft,1905)에서 예술을 “인간과 외적 세계의 창조적 대결”이라고 정의하고, 예술적 활동은 인간신체의 독자적 구조 그 자체에 의해 규제된다는 관점에서, 인체의 수직축 · 수평축 및 전후의 방향으로부터 창작상의 세 가지 주요 형성원리 - 비례, 대칭· 율동 -를 도출해 냈다. 도한 이것과 관련하여 조각, 회화, 건축을 각각 물체조형(Körperbildnerin), 물체와 공간의 현상관계 표현, 공간형성으로서 규정했다. 리글의 연구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그는 거기에서 보인 조형예술의 주요개념이나 전문어의 의미를 인간 정신 · 물리적 구조로부터 연역적으로 설명하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쉬마르조브의 연구방향을 당시 심리학의 성과 위에서 더욱 진전시킨 사람은 불프(Osker Wulff, 1864~1946)인데, 그는 예술창작 근저에 율동적 형성원리를 두고, 리글의 예술의지를 추상적 개념으로 전화하여 사용한 티체의 방법론과 순수경험론적으로 이끌어낸 뵐플린의 기본개념을 비판했다(Kritische Erörterung zur Prinzipienlehre der Kunstwissenschaft, 1917).
이에 대해 빈트(Edgar Wind, 1900~)와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1892~1968)는 논리적 · 선험적으로 이 문제를 토론, 연구하여 예술창작의 근거에 ‘충만’(Fülle)과 ‘형식’ (Form)이라는 존재론적 근본대립(동시에 이것에 조응하는 ‘시간’과 ‘공간’의 방법론적 대립)을 상정하고, 그 시각예술이 특수화한 것으로서 요소적 가치의 대립(시각적과 촉각적), 형상가치의 대립(심오적 평면적), 구성 가치의 대립(교류와 병존)을 도출해내 리글이나 뵐플린의 기본개념을 한층 철학적 · 이론적인 기초 위에서 확립했다. 미술사상 구체적인 예술적 문제도 이러한 양극적 대립으로부터 선험적으로 연역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파노프스키는 개별적 작품 가운데서 이러한 예술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양식의 내면적 의의를 고찰하고 미술사와 미술이론의 관련을 명확하게 해 주었다.
이상이 기본개념 연구의 주요한 방향이며 이외에 뤼쩰러도 조형예술의 기본양식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Grundstile der Kunst, 1934), 그는 조형예술의 세 가지 종류로부터 구축적(構築的 ,tektonisch), 조소적(彫塑的, plastisch), 회화적(繪畵的,malerisch)이라는 세 가지 기본양식을 이끌어내고, 미술의 발전을 이러한 창작방향의 주기적인 융성 · 쇠퇴에 존재하는 ‘양식의 율동’으로서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프레이는 전후 ‘비교미술학’의 방향을 도입한 저서『기초론』에서, 신체감각에 대응하는 적립동인과 운동동인, 공간감각에 대응하는 목표동인과 통로동인(Weg-Motive)이라는 조형예술상의 기본적 동인으로부터 전 세계에 걸친 건축의 지역적 비교연구를 시도하여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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