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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와 제3세계 ] (Marxism and the Third World)

대부분 제3세계 국가들에게서 맑스주의에 대한 인식은 거의 식민지적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반제국주의 투쟁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제국주의는 그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규정하였으며, 제3세계와 제3세계에 관한 맑스주의적 사상과 실천에 그 나름의 독특한 각인을 새겼다. 그 중심 문제들은 중심부 자본이 전자본주의적 사회구조에 미친 영향, 새로운 계급들의 출현,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이러한 사회의 발전과 혁명투쟁의 조건을 기초짓는 계급들 사이의 제휴와 계급 모순의 형태 등이다. 고전적 맑스주의, 특히 맑스와 레닌의 이론은, 실제의 발전이라는 가면을 쓰고 ‘후진 사회’에 도입된 (중심부)자본의 영향을 예견하였다. 그들은 그 자본의 파괴적이고 착취적 특징을 폭로하고 규탄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한 사회에 유입되기만 하면 중심부 유럽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그 자체의 발전논리를 강요하면서 전자본주의적 구조를 파괴하고, 자본 축적과 성장의 원동력을 낳는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었다. 레닌은 《러시아 자본주의 발달사》에서 특수한 실례를 제시하였다. 그 책은 이러한 발전 논리의 견지에서 분석된 하나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하나 이상의 생산양식, 즉 지배적 봉건제 생산양식과 봉건적 국가에 도전하며 발전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존재하는 사회구성체(러시아의 사회구성체)개념을 사용하였다. 러시아 사회주의 주요한 모순은, 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해체로 귀결될, 두 생산양식 사이의 대립이었다. 이러한 제 계급 세력의 제휴는, 러시아에서는 허약한 시민계급보다는 굳건한 노동자계급에 의해서 완수될 시민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임을 나타낸다. 이것은 사회주의 혁명이 실현될 수 있기 전에 시민계급적 민주주의 단계가 완결되어야한다는 의미에서의 2단계 혁명론이다. 레닌은 이것에 관해서는 단호하였으며, 자본주의를 우회하여 1단계 사회주의 혁명에 이를 수 있다는 인민주의자들의 관점을 비판하였다(→인민주의). 더 나아가 시민계급 민주주의 혁명은 사회 구성체에서 전자본주의적 양식의 해체를 수반한다. 이것이 제 3세계 사회에서 발전에 대한 분석이 진행되고 있고, 최근의 논쟁에서 언급되고 있는 관점의 이론적 골격이다.
레닌은 러시아 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마치 비식민지 사회의 자본주의가 중심부 사회의 자본주의와 일치하는 것처럼 식민지 사회에 외삽(外揷)시켰다. 이것은 최근의 논쟁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이다. 레닌은 자본주의의 유입과 함께 세찬 민주화 운동이 러시아에서처럼 ‘아시아의 도처’에서 성장한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와는 다르게 식민지에서 시민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선두에 선 것은 시민계급였으며, 그곳의 시민계급은 여전히 민족의 편에 서 있었다. 이것은 민족운동과 결합되어 있는데, 그것은 시민계급이 자본주의 발전의 필요조건을 완수할 민족 국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이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과제 및 제 계급이ㅡ 제휴의 문제와 관련된 것은 1920년 코민테른 제2차 회의에서였다. 사실 제국주의에 관한 특수한 관계가 자본주의 일반에 관한 초기의 관계를 대치하였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외래의 자본을 의미한다는 개념을 떠나 그 둘 사이의 구조적 차이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에 관한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다. 민족과 식민지 문제에 관한 레닌의 논문은 공산당이 식민지 세계에서 반식민지 (그리고 반봉건)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에 관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는 공산주의 운동은 식민지 국가의 민족적 시민계급과 ‘가장 밀접한’ 동맹을 추구해야 하며 노동자계급의 당은 민족해방운동을 ‘지원’(레닌은 ‘지도’라고 하지 않았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그 논쟁에서 레닌의 입장에 인도 공산주의자인 로이가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는 시민계급 운동과의 동맹을 거부하고 코민테른은 식민지 노동자계급과 농민조직의 창출과 발전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그들의 계급투쟁을 촉진하고 그들을 혁명과 소비에트 공화국의 수립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로이의 논리는 그 당시 식민지에서는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정당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었다는 난점을 회피하고 있다.
1920년에 레닌이 제안한 공식의 근간을 이루는 미해결의 이론적 문제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오늘날에까지 제 3세계의 혁명 투쟁에 관한 맑스주의 운동에서 대립적 입장을 분리하는 기본적 초점이 되고 있다. 역사적 유물론과 레닌의 분석구조는 자본주의 발전과 기존의 지배적 전자본주의적 (봉건적)사회구조 사이의 필연적 모순을 가정하고 있으며, 그것은 전자본주의적 사회구조의 해체를 통해 해소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각의 생산양식에 자리잡은 모든 계급들 사이의 적대적 모순의 존재와 그들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계급투쟁을 가져온다. 그러면 이러한 개념을, 중심부 자본과 토착 봉건제,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전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각각에 위치한 두 계급 사이의 동맹이라는 개념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양자가 동일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자리잡고는 있지만, 식민지의 토착(민족) 시민계급과 중심부 시민계급 사이의 모순에 대한 구조적 설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의 식민지 민족적 시민계급과 다른 한편의 중심부 시민계급 및 봉건적 제 계급 사이의 모순이 식민지에서 민족적 시민계급에 의한 민주주의 혁명의 기초가 되는 구조적 모순을 규정하며 계급 투쟁에서 제휴의 범위를 규정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으로 상정되고 있다.
1920년의 논쟁에 비추어 볼 때, 레닌은 한가지 점에서 자신의 입장을 이제 공식화시켰으며 자신의 최초의 입장, 즉 ‘시민계급 민주주의 운동’을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야 하는) ‘혁명적 해방운동’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것에 의해서 식민지 시민계급은 자신에 대립되는 제국주의와 타협할 수 있으며, 따라서 개량주의적이 되면서 공산주의자들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앞에서 언급된 문제들을 훨씬 더 복잡하게 하였는데, 왜냐하면 여기서는 어떤 조건이 그 성격을 규정하는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공식화는 레닌의 기본적 입장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그는 '모든 민족주의 운동은 시민계급 민주주의 운동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그와 달리 생각하는 것은 공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진보적 민족적 시민계급‘과 그 이후의 ’개량주의적 시민계급‘사이의 구분은 소비에트 이해관계의 긴박성에 따라 식민지 이후의 국가들과의 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소비에트 국가에 의해 사용된 편리한 명칭이 되었다.
1928년 코민테른에 의해서 입안된 식민지 사회에 대한 정책은, 민족적 시민계급에 의해서 지도되던 국민당과의 무조건적 국공합작이 코민테른에 의해서 중국 공산당[CCP]에 강요되었지만, 중국공산당이 장개석에 의해서 패주했던 1926-27년의 반혁명으로 귀결되자, 중국에서의 참패를 배경으로 약간 수정되었다. 1928년의 코민테른 제6차회의에서 동요와 타협의 경향을 띠고 있었던 민족적 시민계급은 더 이상 민족 민주주의 혁명의 지도자로 설명되지 않았다. 그 가능성은 노동자계급 정당의 지도를 상정하고 있었지만 전반적인 정책은 불명료하였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강조되었으며, 그 논재는 또 ‘민족해방투쟁과 함께 토지 혁명이 주요 식민지 국가에서 시민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축을 이룬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것이 모택동주의를 가늠하는 논점이다(→모택동). 그러나 1935년의 제7차 회의에서 코민테른의 노선은 다시 바뀌었다. 그 때 인민전선 정책이 채택되었고 식민지 세계에서의 ‘민족적 시민계급’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었다.
최근에는 전반적으로 새로운 개념이 소련 공산당[CPSU]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으며 공산당들은 그러한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들은 레닌의 이름으로 자본주의의 우회라는 인민주의적 관념을 부활시켜 제3세계에 적용시키고 있다. 오래 전에 확립된 2단계 혁명론이 ‘발전에 이르는 비자본주의적 길’이라는 슬로건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세계에 강력한 사회주의 블록이 존재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고 주장되고 있다. 그것은 위로부터의 혁명에 대한 통계적 개념이며, 혁명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진화적 개념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3세계의 부르주아지는 허약하며 노동계급은 아직 지도적 세력이 되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된다. 하지만 그곳에는 소비에트의 도움으로 노동자, 농민, 도시의 쁘띠 부르주아지, 진보적 지식인, 혁명적 군 장교, (민족)부르주아지 등 모든 민주적 계급의 지도 아래에 있는 ‘민족 민주주의 통일전선’에 의해서 통치되는 ‘민족 민주주의 국가’의 창조 가능성이 존재한다. ‘민족 민주주의 국가’의 주요한 기준은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주의 진영과 협력하는 데 있다. 그 이유와 방법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수행과정에서 이러한 혁명의 일반적 구조는 자본주의의 구조를 초월한다’고 한다. 이 개념은 맑스주의적 계급 국가론에 관한 문제와 계급의 제휴 및 계급 모순의 문제를 만드어 낸다.
이것 뿐만 아니라, 민족적 시민계급의 지도 아래서 민족 민주주의 혁명에 이르는 평화적인 의회주의적 길이라는 개념에 반해 ‘모택동주의의 노선’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적 투쟁으로 나타난다. 모택동주의의 분류는 반드시 중국이라는 국가의 지원을 받거나 그 국가에 의해 조장되는 그러한 운동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것은 중소논쟁의 맥락에서 중국이 채택한 노선에서 확인되어, 중국은 인도와 인도네시아와 같은 특수한 나라의 공산주의자들에게 무장투쟁을 전개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파키스탄과 같은 경우는 해당되지 않았다. 모택동주의 노선은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에 대한 무장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사회주의 혁명에 선행해야 하는 민족 민주주의 혁명의 주요한 추진력인 토지혁명을 더욱 강조하였다.
앞에서 요약된 양자의 입장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전자본주의적 구조의 필연적 해체를 예견한, 레닌이 제시한 이론 구조에 명료하게 나타난 있다. 아프리카와 같은 곳의 소농민 사회(그들은 전자본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 맑스주의자들은 그와 반대로, 자본주의의 발전이 이러한 전자본주의적 농민 사회를 해체시키는 대신 그 사회를 유지시켜서 자신의 필요에 종속시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농민 사회는 산업 생산물시장이며 일정한 시장용 상품의 생산자가 된다. 특히 농민 사회는 대규모의 자본주의적 기업에 고용될 값싼 이주 노동력의 재생자이다. 자본주의가 사회의 내부로부터 발전되지 않고 외부로부터 이식된 제3세계의 사회에서 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해체되는 대신, 전자본주의적 농민 사회의 ‘유지-해체’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산양식 접합 이론’은 현재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역사적 유물론의 중심개념(즉 역사의 중요한 실체인 생산양식 사이의 모순 개념)을 제거시킨, 기능주의적이고 임의적인 것으로서의 접합 개념을 비판하는 그 대안적 개념(Ala-vi 1982)은 전자본주의적 구조는 사실상 제3세계에서 해체되었으며 현존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관점이다. 그것은 토지에 대한 사회적 생산관계가 봉건적이라는 관점을 명백히 거부한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농민 사회는 식민지로 변화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전자본주의적 사회의 방식으로 자신을 더 이상 재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일반화된 상품 생산의 순환에 편입되었으므로, 그 사회는 이전처럼 지역적 자급자족의 토대 위에서 존속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주 노동력의 수출은 또 그 사회의 구조적 변형의 결과이다. 그 사회는 자본에 의해서 포섭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하나의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맑스주의적 자본주의 개념은 생산수단으로부터 생산자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농민 사회의 경우 그 사회의 자본에 의한 포섭(이것이 그 경우라고 인정한다면)은 이러한 분리가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농민은 자신의 생산수단을 지속적으로 소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의 한 변수는 제3세계의 자본주의는 일정한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은 중심부 자본주의와 동일하지 않다는 생산의 통제 개념이다. 중심부에는 자본재와 생산재와 관련하여 노동분업의 ‘통합된’ 형태가 존재하는 반면, 제3세계의 분업 형태는 경제의 그 두 부문의 균형잡힌 발전이 부재하고 수출과 수입에 의존한 채 이완되어 있다. 제3세계와 중심부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제3세계 국가들을 제국주의에 완전히 속박된 것으로 보는 ‘종속’이론과 같은 극단적 입장으로부터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제3세계 국가와 경제의 일정한 자율성을 인정하는 ‘종속적 발전’과 ‘식민지 이후의 국가’ 이론과 같은 여타의 이론에 이르기까지 매우 많은 변형된 이론들이 있다.



[관련자료]
Aguilar, L. E. 1968: Marxism in Latin America.
Alavi, H. A. 1982: 'The Structure of peripheral Capitalism'. In H. Alavi and T. Shanin, eds. Itroduction to Sociology of Developing Societies.
Alavi, H. A. et al. 1982: Capitalism and Colonial Production.
Amin, S.(1976): Unequal Development.
Cardoso, F. H and Faletto, E. 1979: Dependency and Development in America.
Carré d'Encausse, H. and Schram, S. R. 1965(1969): Marxism and Asia.
Kahn J. and LIobera, J. R. 1981: The Anthropolgy of Pre-capitalist Socie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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